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신채호) - 2 1.2. 조선 고사(古史: 옛 역사)의 잔결(殘缺: 완전하지 못함, 모자람) 조선에서 제일 오래된 역사 서적을 신지비사(神誌秘詞)라 한다. 신지(神誌)를 혹은 사람 이름이라 하며, 혹은 책 이름이라 하나, 졸견으로는 신지는 본래 고대의 벼슬 명칭, 삼한사(三韓史)의 신지(臣智) 곧 “신치”니 역대 신치의 신.. 조선사연구초 2011.07.22
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신채호) - 1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선채호) --- 차 례 --- 1. 인용서의 선택 1.1. 인용서의 진위 변별 1.2. 조선 고사(古史)의 잔결(殘缺) 1.3. 중국 사가의 조선에 관한 기록 1.4. 조선인의 기록으로 중국 사책에 초록된 삼국지의 조선 사실 1.5. 삼국지의 조선에 관한 기록 전부를 신용할 수 없는 조건 1.6. 삼한에 .. 조선사연구초 2011.07.21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16(끝) 6. 결론 이상에 말한 바와 같이, 중고(中古)시대의 평양 패수는 남과 북에 나뉘어 있었으니 남쪽에 있는 것은 낙랑국이라, 평양성이라 칭하여 그 위치가 대동강상에 고정되어 있었고 북쪽 있는 것은 낙랑군이라 칭하여 그 군(郡)을 다스리던 곳이 요동부터 요서, 요서부터 상곡까지 이동하였던 바로 그.. 조선사연구초 2011.07.13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15 후한서 화제(和帝) 원초(元初) 5년에, “궁이 예맥과 함께 현도에 쳐들어가 화려성을 공격하였다 (宮-고구려 태조대왕의 이름-復與濊貊寇玄菟攻華麗城)”라고 하였으나, ‘화려’는 낙랑 동부인 영동(嶺東) 7현의 하나인즉, 광무제 때에 벌써 파기한 현 이어늘 이제 다시 고구려가 침입하는 한(漢)의 현.. 조선사연구초 2011.07.12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14 사기(史記)에 한무제가 위씨(위만~위우거)를 멸하고 4군을 두었다 했는데 어찌하여 한서 지리지에는 현도 낙랑만 있고 진번 임둔이 없느냐. 낙랑이 25현이나 되는데 현도는 어찌된 까닭으로 겨우 3현이냐. 후한서 군국지에는 어찌하여 한서 지리지보다 낙랑의 1현이 더하고 동이 이하 7현이 없느냐. 진.. 조선사연구초 2011.07.11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13 정. 중국사 지리지와 동이열전에 보인 낙랑 한서 지리지의 낙랑 25현이 당나라 사람의 위증임은 이미 상편에 약설(略說)하였거니와, 이제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의 지리지와 동이열전에 보인 낙랑과 낙랑에 관계되는 현도, 대방 등을 같이 고찰하면, 한서지리지에 보인 현도 낙랑의 기록이 다음과 .. 조선사연구초 2011.07.10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12 이제 고이왕이 쳐들어간 낙랑으로 말하면 삼국지 동이열전에 “(위나라) 명제가 비밀리에 대방태수 선우사 낙랑태수 유흔을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 두 군을 평정하였다. (眀帝密遣帯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이라 하고, “정시 6년(서기 245년) 낙랑태수 유무 대방태수 궁준이 (단단대)령.. 조선사연구초 2011.07.10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10 을. 낙랑과 평양의 구별 낙랑과 평양이 다 펴라의 가자(假字: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글자)이나 낙랑국이 멸망한 뒤에는 낙랑이라 쓰지 않고 평양이라 써 요동의 낙랑군과 구별한 고로 대무신왕 이후 삼국사기에 쓰인 낙랑은 신라본기 기림 이사금 3년의 낙랑이 지금 평양을 가리킨 것인.. 조선사연구초 2011.07.08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9 갑.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의 구별 왕검성 '펴라'인 고(古)평양 고(古)패수가 한무제의 침공을 당해 4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되었으나 4군의 위치가 시세(時勢)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졌으므로 낙랑군 수부(首府)의 위치는 해성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범위가 요동 밖으로 나오지 못하.. 조선사연구초 2011.07.07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8 일본학자 관야정의 노력에 의하여 성취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의 그 그림에 대한 설명에 용강(龍岡)에서 발굴한 점선비문(黏蟬碑文)을 기재하고 “이제까지 학자들이 다투던 열수는 곧 대동강됨이 옳다.” 하였으나, 이는 곧 한서 지리지의 “列水西至黏蟬入海(열수는 서쪽으로 점선에 이르.. 조선사연구초 2011.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