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신채호) - 1

상 상 2011. 7. 21. 16:19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선채호)

 

--- 차 례 ---

 

1. 인용서의 선택

1.1. 인용서의 진위 변별

1.2. 조선 고사(古史)의 잔결(殘缺)

1.3. 중국 사가의 조선에 관한 기록

1.4. 조선인의 기록으로 중국 사책에 초록된 삼국지의 조선 사실

1.5. 삼국지의 조선에 관한 기록 전부를 신용할 수 없는 조건

1.6. 삼한에 관한 기록

 

 

2. 전삼한 삼조선(前 三韓 三朝鮮)의 전말

2.1. 삼한의 소자출(所自出)

2.2. 삼한은 곧 삼조선

2.3. 전삼한(前三韓)의 명칭

2.4. 전삼한 창립자 단군

2.5. 전삼한 강역과 연대

 

 

3. 후삼한 – 삼국지에 보인 나가제(羅 加 濟) 삼국

3.1. 후삼한 고증에 대한 선유의 오류

3.2. 중(中)삼한의 약사

3.3. 후삼한 나가제(羅 加 濟)의 역사

3.4. 후삼한의 호상(互相) 관계

3.5. 후삼한과 병립한 열국

3.6. 후 삼한과 낙랑 대방의 관계

3.7. 후삼한과 북방 제국의 언어

 

 

 

 

 

1. 인용서의 선택

 

1.1. 인용서의 진위 변별

 

 

아직 땅속 발굴이나 고적 탐사나 유물 유적 연구 같은데

지식과 기구가 모두 부족한 우리로서는

우리 옛 역사를 연구하려면

오직 옛 사람이 끼친 서적으로 자료 삼을 뿐인 것은 물론이다.

 

 

서적이라면 우리의 것 뿐만 아니라 인접국의 것도 가능하며,

지난시대의 소위 정사(正史)라는 것보다도 혹 신화, 소설, 요담(妖談), 잡서에서

직접 혹 간접으로 사적 가치를 더 얻는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는 선택할 줄을 안 연후의 일이라,

 

어찌 아무 변별도 없이 조선에 관한 기재만 있으면

산해경이나 죽서기년이나 포박자(抱朴子: 도교 이론서)나 박물지(博物誌: 백과사전)같은 것을

가치를 묻지 않고 인용하며,

 

후세 사람의 위조라고 세상사람 모두가 다 말하는 요전(堯典: 상서-尙書중의 편명)과 우공(禹貢: 상서-尙書중의 편명)의

우이(嵎夷)니 도이(島夷)니 하는 것을 가져다가

4,5천년전 조선사의 한 페이지를 채우려 함은 또한 가소로운 일이 아니냐.

 

 

페리클레스가 속인 기록에 의하여 아테네는 매번 스파르타를 이긴 줄로 알며,

서기전 390년 갈리아 인(人)의 침략 이후에 로마인이 나중에 기록한

로마 옛 사서에 의하여 옛 로마의 연대 사적 등을 믿으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사(古代史)를 논술함에 먼저 인용서의 가치를 성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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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전후 삼한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