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15

상 상 2011. 7. 12. 12:18

후한서 화제(和帝) 원초(元初) 5년에,

 

“궁이 예맥과 함께 현도에 쳐들어가 화려성을 공격하였다

(宮-고구려 태조대왕의 이름-復與濊貊寇玄菟攻華麗城)”라고 하였으나,

 

‘화려’는 낙랑 동부인 영동(嶺東) 7현의 하나인즉, 광무제 때에 벌써 파기한 현 이어늘

이제 다시 고구려가 침입하는 한(漢)의 현이 됨도 성립되지 않는 말일뿐더러,

 

현도에 쳐들어가 화려성을 공격하였다 함은

낙랑의 속현이 곧 현도의 속현이라는 모순된 말이며,

 

고구려의 국명을 본 떠 고구려현을 둠은 아직 용서하고라도,

 

유리왕(琉璃王) 33년에 태자 무휼이 고구려현을 점령하여 그 땅이 고구려국의 소유가 되었거늘

이 뒤 3백년이 지나도록 고구려 현이 현도의 수부(首府)로 한서지리지나

후한서 군국지에 적힘은 근거없는 망필(妄筆)이다.

 

다시 더 상세히 고찰하면 이따위가 얼마인지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한서의 지리지나 후한서의 군국지나 진서의 지리지에 보인

낙랑 현도 등 군(郡)은 후세 사람의 위증(僞證)이요,

당(唐) 이전 각 사서의 모든 동이열전은 후세 사람의 개찬(改撰: 고쳐 쓴것)이 허다한 것며,

그중 더욱 낙랑 현도 등에 관한 기록은 대개가 위조라 할 것이다.

 

그러면 낙랑 현도의 여러 현은 모두 한꺼번 지워버림이 옳을까?

 

한서 지리지 요동군 번한현(遼東郡番汗縣)의 패수(沛水)가 곧 패수(浿水)임은 이미 상편에 기술하였으며,

삼국지 동이열전에 낙랑전을 빼버림이 유감임은 이미 삼국지 동이열전의 교정에 기술하였거니와

 

혹 삼국지에 본래 낙랑전이 있고 낙랑전 가운데에는 낙랑 속국 20여개가 기재되었던 것을

당 태종 안사고 등이 낙랑전을 지워 없애버리고

그 20여 국을 가져다가 한서 지리지에 끼워넣어 낙랑군 25현을 만들며

 

지리지 가운데 낙랑군의 속현인 번한 험독 등을 요동군에 옮겨넣고,

그 흔적을 숨기기 위하여 번한의 패수(浿水)를 패수(沛水)로 고치고

험독(險瀆)의 주(註) “조선 왕 만의 도읍지(朝鮮王滿都)”를 반박하고,

각 사서의 동이열전 혹 기타에 보인 낙랑의 기사를 혹 삭제 혹 고쳐

 

중국 옛 영토의 범위를 넓히어 동쪽을 침략하려는 모든 장군과 문관들의 적개심을 고무하려 함이었던가.

 

여하간 지리지의 현도의 3현과 낙랑 25현은 거의 조선의 열국이요

당시 요동 낙랑군의 본 현이 아니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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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내용 중

“유리왕(琉璃王) 33년에 태자 무휼이 고구려현을 점령하여 그 땅이 고구려국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씀의 근거:

 

삼국사기 고구려 유리왕 본기,

『33년(서기14) 봄 정월에 왕자 무휼을 태자로 삼아 군무와 국정을 맡겼다.

가을 8월에 왕은 오이와 마리에게 명하여 군사 2만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양맥을 쳐서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진군시켜

한(漢)나라의 고구려현을 공격해서 차지하였는데 그 현은 현도군에 속한다.』

 

(원문) 三十三年 春正月 立王子無恤爲太子 委以軍國之事 秋八月 王命烏伊·摩離 領兵二萬 西伐梁貊 滅其國

進兵襲取漢高句麗縣 縣屬玄菟郡

 

 

2) 이번‘중국사의 지리지와 동이열전에 보인 낙랑’편에서는

 

① 먼저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의 각 지리지에 나오는 낙랑 현도에 관한 기록까지 일일이 검토하신 다음,

 

② 그들 지리지에 나오는 한사군 낙랑 현도 대방에 대한 내용과

낙랑, 현도에 속하는 현이 서로 다름을 지적하시고,

 

③ 그 다른 까닭을 후한서와 삼국지의 동이열전으로 해답으로 찾으신 후

 

④ 그러한 기록이 거짓임을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지 동이열전, 후한서 본기, 삼국사기 본기의 내용을 전부 대조하여 밝혀내셨습니다.

 

⑤ 그럼으로써 한서지리지나 후한서 군국지, 진서 지리지에 나오는 낙랑 현도 등의 군은

후세 사람들의 거짓 증명임과 당나라 이전의 모든 동이열전은 후세 사람이 고쳐 쓴 것으로,

특히 낙랑 현도에 관한 기록은 위조라고 밝혀주셨습니다

 

⑥ 그런 가짜 기록도 그 가짜 기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증거가 되니

거짓이라는 증거로써의 가치가 있음을 말씀해 주신다음

 

“지리지의 현도의 3현과 낙랑 25현은 거의 조선의 열국이고

당시 요동 낙랑군의 본 현이 아니다.”는 것으로 최종결론을 맺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역사학자로써 단재선생의 역량이 엄청난 분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즉,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역사지리와 역사에 대한 단재선생의 박식함과 예리한 논리전개,

날카로운 모순 지적, 엄청난 결론은 역사학자로써의 단재선생이 얼마나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계신지

우리가 확실하게 알게 해 주셨고

우리역사에서 핵심적인 사항인 낙랑의 정체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사서를 읽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같은 것은 그 책들의 본기, 세가, 열전, 기타 내용(지리지 포함)을 전부 다 읽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입니다(내용의 방대함 때문)

 

또,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도 힘들며(번역이 맞느니 틀리느니 하는 다툼을 지금도 있음)

 

거기에 나오는 사실들이 상하 전후좌우로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도 모르는게 태반이고,

 

무엇보다도 그들 사서들의 방대한 양에 비하여 그 속에 있는 우리역사에 대한 내용을 찾기가

백사장에서 바늘찾기와 같음을 볼 때(조선전, 동이열전 제외)

 

이번 편에서 보여주신 단재선생의 역량은 그저 입이 딱 벌어질 뿐입니다

 

 

1. 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평양패수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