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평양 패수고(平壤浿水考: 단재 신채호) - 14

상 상 2011. 7. 11. 21:15

사기(史記)에 한무제가 위씨(위만~위우거)를 멸하고 4군을 두었다 했는데

어찌하여 한서 지리지에는 현도 낙랑만 있고 진번 임둔이 없느냐.

 

 

낙랑이 25현이나 되는데 현도는 어찌된 까닭으로 겨우 3현이냐.

 

후한서 군국지에는 어찌하여 한서 지리지보다 낙랑의 1현이 더하고 동이 이하 7현이 없느냐.

 

 

진서에는 어찌하여 현도가 없고 대방과 낙랑 양 군이 있느냐.

 

 

 

후한서와 삼국지의 동이열전의

“소제가 진번 임둔을 파하고 낙랑 현도에 병합하였다(昭帝罷眞番臨屯以幷樂浪玄菟)”가

그 제1의 답안일지며,

 

 

“현도가 다시 고구려로 옮겨가자 단대령 동쪽의 옥저와 예맥은 모두 낙랑에 소속되었다

(玄菟復徙居句驪自單大領已東沃沮濊貊悉屬樂浪)”가 그 제2의 답안일지며,

 

 

“다시 영동의 7개현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두었다. 광무제 건무 6년에 동부도위를 페지하여 마침내 영동지역을 포기하였다

(復分嶺東七縣置東部都尉光武建武六年省東部都尉遂棄嶺東地)”가 그 제3의 답안일지며,

 

 

“건안 연중에 공손도가 둔유현 이남 황무지를 나누어 대방군을 만들었다

(建安中公孫康分屯有以南荒地爲帶方郡)“가 그 제4의 답안일 것이다.

 

그러나,

후한서 제기(帝紀) 광무제 23년에

“고구려 잠지락의 대가인 대승이 낙랑으로 찾아와 내속되기를 청하였다

(句麗蠶支落大加戴升詣樂浪內屬)”라고 하였는데,

 

잠지(蠶支)는 곧 잠대(蠶臺)요, 잠대는 한나라 낙랑의 현 이름(縣名) 이어늘

이제 잠대가 낙랑에 속함을 구하다 함은

마치 (경기도에 속하는) '양평군'이 경기도에 속하려 청한다는 것처럼

말도않되는 우스운 이야기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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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평양패수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