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이왕이 쳐들어간 낙랑으로 말하면
삼국지 동이열전에 “(위나라) 명제가 비밀리에 대방태수 선우사 낙랑태수 유흔을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 두 군을 평정하였다.
(眀帝密遣帯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이라 하고,
“정시 6년(서기 245년) 낙랑태수 유무 대방태수 궁준이 (단단대)령 동쪽의 예(동예)가 고구려에 복속하였다고 하여
군사를 일으켜 이를 치자 불내후등이 읍을 들어 항복하였다.
(正始六年樂浪太守劉茂帶方太守弓遵以領東濊屬句麗興師伐之不耐侯等擧邑降)”이라 한바
이같이 낙랑이 위나라 장수 유흔과 유무가 서로 계속하여 태수가 된 곳이니,
만일 이 낙랑이 지금 평양일진대 환도(丸都)에서 외적을 피하여 천도한 동천왕이
어찌 9년동안 뿌리를 깊이 박은 위나라 사람의 낙랑에 서울을 옮길 수 있으리요.
그런즉 유흔, 유무, 궁준 등의 근거인 낙랑 대방이
요동의 낙랑 대방인 동시에
고이왕이 쳐들어간 낙랑도 요동의 낙랑이니 이는 대개 백제의 해외 발전의 시작일지며,
분서왕의 쳐들어간 낙랑으로 말하면 양서(梁書) 백제전에 “진나라때 백제는 요서를 차지하고 있었다.(晉世百濟據有遼西)”라 하니
분서왕 원년은 진나라 혜제 원강 8년이요 모용외(慕容廆)와 같은 때이다.
사서에 의거하면 모용외의 요서 낙랑의 건설은 미천왕 14년, 장통의 항복을 받을 때의 일이나,
그 전에 모용준(慕容遵)이 낙랑왕의 칭호를 가진 것을 보면
요서 낙랑의 건설이 이미 오래 되었음을 볼것이다.
그러면 대개 백제가 모용씨(慕容氏)의 요서를 공격하여 저들의 낙랑군 동현(東縣)을 차지함에
낙랑태수가 병력으로 백제를 막기에 부족하므로 드디어 자잭을 보내어 왕을 암살함이니 이것도 백제의 해외발전의 일반이다.
고타소낭(古陁炤娘: 김춘추의 여동생)의 참사로 인한 신라인의 격한 원망이 백제 역사에 미치어
매번 그 훌륭한 공적은 깎아버리고 패망만 기록하였으므로 요동 요서 양 낙랑의 첫 관계가 본기에 빠졌으니,
그러면 신라 고구려의 양 본기에 뿐 아니라 백제 본기에도
낙랑국의 멸망이후 남펴라는 평양이라고 쓰고
북펴라는 낙랑이라고 쓴 강철같은 증거이며,
이로 말미암아 당 태종이 진서(晉書)를 지을 때에
고구려와 백제의 전적(戰蹟)과 강토를 많이 삭제하였음이 명백하다.
자치통감에 호삼성(胡三省)은 모용외의 낙랑을 유성(柳城)에 임시로 설치한 것이라 하고,
문헌통고에 백제의 요서 진평을 당나라 유성과 북평 사이라 하고,
당서 지리지에 유성(柳城)은 동쪽으로 요하(遼河)에 이르기까지 480리, 남쪽으로 바다에 이르기까지 260리,
서쪽으로 북평군에 이르기까지 7백리, 북쪽으로 거란 경계에 이르기까지 50리라 하며,
그리고 북평(北平)은 동쪽으로 유성에 이르기까지 7백리, 서쪽으로 어양에 이르기까지 3백리,
동북쪽으로 유성에 이르기까지 7백리라 하니, 이로써 유성 낙랑의 위치를 상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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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평양패수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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