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굿 캅, 배드 캅, 중국 캅

상 상 2017. 12. 12. 17:03

[중앙일보] 입력 2017.12.12 01:43 | 종합 38면 지면보기

 

왜 중국엔 타조처럼 머리 모래에 파묻나

당당하게 사드보복따지고 캐물어라

 

.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6월 중순 대북특사 파견, 9월 한·미 정상회담주장이 대두된 적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선 한·미 정상회담을 고집했다. 이어 선발대로 워싱턴에 온 인물이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문 특보는 북한이 도발을 멈추면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중국의 쌍중단(雙中斷)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의도된 발언이었다. 공식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걸 문 특보가 정상회담 전 미국에서 터뜨리며 배드 캅(bad cop·악역)을 맡았고, 열흘 후 대통령은 이를 원만하게 수습하며 굿 캅(good cop)이 됐다. 성공한 전략이었다.


문 대통령 방중(13)을 앞둔 요즘 그때와 너무나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굿 캅, 배드 캅 역할분담은 없고 모두가 중국 눈치를 살피는 중국 캅이 돼 있다.


정권 실세라는 이해찬 의원. 그는 지난 7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쌍중단에서 입장이 같고 쌍궤병행(雙軌竝行)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궤병행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의 병행을 뜻한다. 여기서 짚어볼 것은 두 가지.


첫째, 우리의 대북 정책과 맞느냐다. 먼저 쌍중단.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불법이다. ·미 방어훈련은 적법이다. 동렬에서 을 할 수 없다. 그게 우리 입장이다. 다음은 쌍궤병행. 북한이 ICBM을 쏴대는데 어서 오세요하며 한반도 평화 협상을 논할 순 없다. 게다가 평화협정은 주한미군 철수와 맞물려 있다. ·미 동맹의 근간을 뒤흔드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개인 의견이라 축소 해석하며 쉬쉬한다. 정부의 방침과 다른데 정부의 누구도 이 의원에게 경고나 주의를 줬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니, 멀쩡히 대통령 방중에 동행까지 한다. 희한한 일이다.


둘째, 전략의 문제다. 우린 사드 보복으로 20조원 이상 피해를 당했다. 그러곤 사과 한 줄 없이 ‘3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방중을 앞두곤 누구라도 중국은 한국에 유감을 표해야 한다거나 대북 원유공급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쌍중단·쌍궤병행 논의는 어림도 없다고 외치는 배드 캅이 있어야 마땅했다. 그래야 뭐라도 얻어낼 명분이 생기고, 호구로 얕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 청와대, 외교부 모두 중국 캅만 되려 했다. 미국에는 큰소리 땅땅 치던 이들이 중국을 향해선 말 그대로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파묻었다.

 

그러니 중국이 오만하게 공동성명에 중국의 사드 반대 입장을 박자고 나섰던 게다. 피해자가 따질 사드 보복은 사라지고, 가해자의 사드 반대만 남은 주객전도, 적반하장이다. 혼란의 대한제국 시절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위해 주먹 한번 휘두르지 못하지 않았느냐고 조롱했다. “우정이란 스스로를 지킬 힘을 지닌 상대끼리나 맺을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굴욕이었다. 112년 지난 지금 트럼프도 아마 똑같은 생각을 할 게다. 모두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


이 모든 부담은 문 대통령의 몫이 됐다. 6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우린 촛불로 탄생한 정권이란 말을 반복했다. 국민 여론을 최대한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사드 배치 연기도 그런 논리로 버텼다. 그렇다면 이번에 시 주석에게도 이렇게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우리 국민이 사드 보복으로 입은 타격을 아는가. 중국의 입장을 묻고 싶다. ‘촛불 정부의 지도자로서 나도 꼭 들어야만 하겠다.”


이게 나라냐?’로 대통령이 됐으니, 이젠 이게 나라다!’를 보여줄 차례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