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72,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17, 8. 황소의 난-43)
차례
가.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상)
2. 구당서 토번전(하)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다.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2) 해설
2) 해설 – 23
< 황소의 난을 전후로 한 주요 인물의 행적 >
2. 황소- 1)
875년 6월 원구사람 황소 역시 수천 명 모아 왕선지에 호응⇒ 황소의 난 시작
876년 12월 왕선지와 황소의 분열, 황소 기주 약탈
877년 2월 황소 운주 함락
877년 3월 황소 기주 함락
877년 4월 황소 상양과 군대 합쳐 사아산에 주둔
877년 7월 왕선지와 황소 송주에서 평로, 선무, 충무군을 격파, 평로절도사 송위를 포위. 당 구원군 7천이 와서 왕선지 군을 2천여 명 죽이자 달아났다.
877년 10월 황소 기주와 황주 노략질, 증원유가 깨드렸는데 황소 도주
877년 12월 황소 광성과 복주 함락
878년 2월 황소 박주 공격 실패 상양이 왕선지의 잔여무리 인솔하여 합세하고, 황소를 주군으로 삼고 관속들 임명
878년 2월 황소 기주와 복주 함락, 이후 토벌군에 연패
878년 3월 황소 활주에서부터 송주와 변주 침략
878년 3월 황소 위남과 섭, 양적 공격
878년 3월 왕선지의 남은 무리 왕중은 홍주 함락. 호남 약탈. 별장 조사웅은 선주와 윤주 약탈.
호남의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도장 고걸이 호남관찰사 최근을 축출. 황소 장강 건너 건, 길, 요, 신 등의 주 함락
878년 4월 조사웅이 호주 노략질 하다가 진해절도사 배거에게 패함
878년 6월 왕선지의 나머지 무리가 절서 약탈. 형남절도사 고병을 진해(절서)절도사로
878년 8월 황소 선주 노략질 선흡관찰사 왕응이 이를 막았지만 남릉에서 패배.
황소 선주에서 이기지 못하자 절동을 공격하고 복건의 여러 주를 공격
878년 12월 황소 복주 함락
879년 1월 진해(절서)절도사 고병이 황소를 쳐서 누차 깨뜨리자 황소는 광남으로 갔다
879년 5월 태녕절도사 이계, 정병 5만을 거느리고 담주에 주둔하여 영북으로 통하는 길 막고 황소를 막게 함
879년 5월 황소 천평절도사와 광주(영남동도)절도사를 요구했다 거부됨
879년 9월 황소 광주 공격하여 함락하고 영남도의 여러 주현 약탈
879년 10월 황소 영남 풍토병으로 사졸들이 죽자 무리들이 북쪽으로 가서, 큰 일을 도모하라고 권고하자 황소는 이를 좇았다.
879년 10월 황소의 1차 북진. 계주에서 상강을 따라 형주와 영주를 거쳐 담주에 도착. 담주를 하루만에 함락시키고 강릉 압박.
무리가 50만이라고 불렀다.
879년 10월 10여일 후 황소 강릉 입성
879년 11월 황소 강릉에서 양양으로 갔으나, 산남동도절도사 유거용과 강서초토사 조전정에게형주 형문에서 대패.
879년 11월 황소와 상양 장강 건너 동으로 도주, 유거용과 조전정 추격 중지. 황소의 세력은 다시 떨치게 되었다.
879년 11월 황소 악주 외곽을 함락. 강서, 선흡, 절동의 15개 주 약탈, 무리는 20만 명
880년 3월 고병. 황소군 누차 격파.
880년 4월 장린이 황소군의 우두머리 왕중패를 항복시키고 누차 황소의 군대를 격파하니, 황소는 물러나 강서의 요주로 후퇴하였는데,
별장 상굉이 수만명을 가지고 항복. 장린이 요주를 치니 황소는 달아났다.
880년 5월 고병의 과욕으로 인한 패전과 황소의 승리
880년 6월 황소의 별장, 목주와 무주 함락
880년 6월 황소 선주 함락
880년 7월 황소의 2차 북진: 황소 채석에서 장강을 건너 천장과 육합 포위. 회남절도사 고병. 두려워 감히 군사를 내지 못하고
풍병으로 마비되었다고 하면서 다시는 나가 싸우지 않았다.
880년 9월 천평절도사 조전정 6천 군 황소의 15만 군과 싸워 중과부족으로 물러나 사상에 주둔, 구원군이 없어 패배.
880년 9월 서주 군사 3천. 은수로 파견가다가, 허창에서 난동, 역시 은수로 파견가던 충무군 대장 주급의 습격에 몰살
감화절도사 설능 혼란 중에 피살. 그 소식들은 은수 주둔군 모두 흩어져버림 이렇게 되자 황소는 회수를 건넜고
약탈하지 않고 오직 병력만 늘림
880년 10월 황소 신주 함락. 영, 송, 서, 연 등의 주까지 진격
880년 11월 하동절도사 정종당의 군사를 하수절도사 제갈상과 대주자사 주매에게 주어 남쪽으로 황소를 토벌케 함.
880년 11월 낙양에서 보고하기를 황소가 여주 경계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880년 11월 황소 낙양 함락(11월17일)
880년 12월 3일 황소 동관 함락, 황소 화주 입성
880년 12월 5일 황소 장안 입성
880년 12월 9일 당 희종 장안 탈출
880년 12월 11일 황소, 장안내 당 종실들 전부 도륙
880년 12월 13일 황소, 황제 즉위. 국호 대제(齊) 연호 금통. 백관 임명
880년 12월 14일? [제]장수 탕산사람 주온이 동위교에 주둔하자, 황소가 주온을 시켜 제길상을 유혹,
대북행영초토사 제갈상이 항소에게 항복. 황소는 제길상을 하양절도사로 삼았는데 제길상이 치소로 가자
당의 하양절도사 나원고가 군사를 발동하여 그를 막았지만 사졸들은 갑옷 을 버리고 제길상을 영접함.
880년 12월18일 당 희종이 홍원 도착.
881년 1월22일 당 희종 흥원 출발 녹두관 거쳐 면주 도착
881년 1월28일 당 희종 성도 도착
881년 1월? 당 희종 고병에게 황소를 토벌 재촉 고병 군사 출동하지 않았다.
881년 3월6일 서천절도사 진경선이 좌황두군사 이연을 파견 황소를 공격케 함(3月6日)
881년 3월13일 황소가 상양과 왕파(왕번)를 파견하여 무리 5만을 인솔하고, 봉상을 치도록 하였는데
봉상절도사 정전이 용미피에서 대파, 참수 2만여급
881년 3월 이극용의 재등장- 이우금이 자기 형의 부자(이국창 이극용 부자)를 사면하여 황소군을 치게 해달라고 진경사(감군-환관)에게
건의하여 이극용이 사면받고, 달단의 여러 부족 1만 명을 인솔하여 대주로 왔다.
881년 3월 제갈상이 하양에서 다시 당에 귀부하니 하양절도사로 삼았다.
881년 3월 봉상절도사 정전이 전국 번진에 격문을 보내 군사들을 합쳐 황소군을 토벌하자 고 하니, 이에 호응하여,
황소군은 두려워 장안 서쪽을 넘보지 못했다.
881년 4월 황소가 그의 장수 왕매를 빈녕절도사로 삼으니 빈주(邠州) 통새진장 주매가 군사를 일으켜 그를 주살하고 황소를 토벌하였다.
이때 봉상행군사마 당홍부는 위수(渭水) 북쪽에, 하중유후 왕중영은 사원에, 의무절도사 왕처존은 위교에,
하수절도사 탁발사공은 무공에, 봉상절도사 정전은 주질에 주둔하여 장안을 압박하였다.
881년 4월 5일 1차 장안 탈환전- 황소가 동쪽으로 도주하니, 경원절도사 정종초가 먼저 장안 연추문에 들어갔는데 이어서
당흥부가 도착하였고, 왕처존은 밤에 장안에 입성하고 약탈
881년 4월 황소군은 패상에서 장안 습격, 시가전 벌여 정종초와 당홍부를 죽이고 당 연합 군을 대파, 당군 8~9할이 죽고,
왕처존은 나머지 무리를 거두어 도주. ※ 당군은 노략질한 무거운 짐을 지고 도주하지 못해 대패한 것이다.
881년 4월10일 황소 장안 재입성, 당군 도운 백성들 도살.
881년 4월 13일 하수절도사 탁발사공과·부연절도사 이효창이 황소군과 토교에서 싸웠으나 패함
881년 5월12일 회남절도사 고병 황소 토벌한다며 8만군과 배 2천척 발동했다가 출발 않함
881년 5월 18일? 충무절도의 감군 양복광이 충무의 군사 8천으로 8도군을 만들어
주온(주전충)과 싸워 등주에서 이기고 남교까지 진격했다가 돌아왔다.
881년 5월 소의절도사 고심과 하중절도사 왕중영이 화주를 공격하여 이겼다.
881년 6월 빈녕절도부사 주매 흥평에서 황소의 장수 왕파에게 포위되자 봉천과 용미피로 후퇴
881년 6월 서천의 황두군사 이연이 1만명을 거느리고 공함이 5천명을 거느리고 흥평에 2개 영채를 만들고 황소와 싸워 누차 승리.
881년 7월 부연절도사 이효창과 권 하주절도사 탁발사공이 동위교에 주둔하니, 황소는 주온(주전충)을 보내 이를 막았다.
881년 8월 무녕(감화)절도사 지상이 아장 시부와 진번을 파견하여 장안에 있는 황소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낙양에 이르러 돌아와 하음을 도륙하고, 정주를 약탈하고 동쪽으로 가서 팽성에 이르자 지상이 후하게 상을 주었는데.
절도사 지상을 위협하여 내쫒고, 시부가 스스로 지류무가 되었으며, 조정으로 돌아가는 지상을 칠리정에서 죽였다.
당 조정은 시부를 무녕(감화)유후로 삼았으며, 시부는 숙주자사에 제수된 진번을 죽였다.
881년 8월 소의절도사 고심은 황소의 장수 이상과 석교에서 싸웠는데 패하여 이상이 화주 를 재점령하자 황소는 이상을 화주자사로 삼았다.
881년 9월 부연절도사 이효창과 하수절도사 탁발사공이 동위교에서, 사양 및 주온(주전충) 과 싸웠으나 패주
881년 9월6일 회남절도사 고병, 진해절도사 주보 대립
881년 11월1일 황소군의 맹해와 주온(주전충)이 부평에서 하수절도사 탁발사공과 부연절도사 이효창을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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