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73,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18, 8. 황소의 난-44)

상 상 2017. 12. 13. 21:11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73,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18, 8. 황소의 난-44)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2) 해설

 

 

2) 해설 24

 

 

< 황소의 난을 전후로 한 주요 인물의 행적 >

 

 

2. 황소- 2)

 

88218일 고병을 도통(군 사령관)과 관직에서 파직함

8821월 황소는 주온(주전충)을 동주자사로 삼아 동주를 빼앗도록 하였다

8822월 동주자사 미성이 하중으로 달아나고 주온(주전충)이 그곳을 점거하였다(2)

                       주온(주전충)이 하중(河中)을 노략질 하니 하중절도사 왕중영이 그를 쳐서 패배시 켰다.

8824월 회남절도의 요망한 방사 여용지. 절도사 고병 속여 전횡, '좌우막야' 2만군 만들어 농단

8824월 제도행영도통 왕탁이 서천과 동천, 흥원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영감사에 주둔하 고, 경원군은 장안 서쪽에,

            의무군과 하중군은 위수 북쪽에, 빈녕과 봉상군은 흥평에, 보대와 정난군은 위교에, 충무군은 무공에 주둔하여,

            당군이 사방에서 모였다. 황소의 세력은 동주와 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장안성 안에서 쌀 1말 값이 30민이었다.

8825월 회남절도사 고병 당의 병권과 이권에서 해임되자, 당 조정에 공부(조세)를 끊음

8825월 황소가 흥평을 공격하니, 빈녕과 봉상군이 봉천으로 후퇴

8827월 황소군 상양이 의군채를 공격하였는데, 폭설로 황소군 동사자 2~3.

8827월 회남절도사 고병이 마음대로 도적 손단을 선흡관찰사로 삼음

882813일 번진들 간의 전쟁 시작. 절동관찰사 유한굉이 동생 유한유와 신약을 파견하여 서릉에 군영을 두고 절서를 도모하니

                  항주자사 동창이 도지병마사 전류를 파견하여 이를 막게 하였는데 전류 는 절강(浙江)을 건너 그들을 대파하여 거의 다 죽이니

                 유한유와 신약은 모두 달아났다.

882917일 주온(주전충)의 배신. 황소가 임명한 동주방어사 주온(주전충)은 황소의 군사세력이 날로 위축되는 것을 보고

                   그들이 곧 망할 것을 알고 동주()들어 하중절도사 왕중영에 투항하니, 당은 주온을 동화절도사로 삼았다.

88210월 황소의 세력이 강하자 이극용을 부름.

88211월 이극용이 사타 17천군을 거느리고 남과 석 거쳐 하중으로 남하

88211월 황소군 이상의 옛 화주 군사들이 황사업을 쫓아내고 화음진사 왕우를 주군으로 삼아, 화주를 들어 하중절도사 왕중영에 투항하니

                왕우를 화주자사로 삼았다.

88212월 하동절도사 정종당이 이극용에 붙었던, 남주자사 탕군을 붙잡아 참수. 혼주와 대주의 유후인 이극용을 안문절도사로 삼았다.

88212월 이극용이 4만 군사를 거느리고 하중에 도착하여 동생 이극수를 파견하여 황하를 건너 황소군을 시험하게 하였다.

               이극용의 군대가 도착하자 황소의 군대는 이를 꺼려 황소가 승려 10여명을 파견 하여 이극용에게 화의를 요구하였으나

               이극용은 이를 거절하고 군사를 이끌고 하양에서 황하를 건너 동주에 진을 쳤다.

88312일 이극용의 장수 이존정이 황소의 동생 황규를 사원에서 패배시키고 이극용이 사원에 주둔. 이극용을 동북면행영도통으로 삼았다.

883216일 이극용이 건갱으로 나가 진을 치고 하중, 의무, 충무 군과 합류하고, 양전피에서, 상양(항소군의 재상)15만 군을 대파,

                   시체가 30리에 널림

8832월 황소의 장수 왕번과 황규는 화주를 습격하여 재점거. 하양절도사 제갈상. 위박군에 점령되었던 하양 탈환

883227일 이극용이 화주 포위하니 황사업과 황규가 굳게 지켜 이극용은 기병을 나누어 위수 북쪽에 주둔.

88336일 황소의 군사들은 자주패하고 먹을 것도 없어지니 속으로 도망갈 계책을 세워 군사 3만으로 남전으로 가는 길을 꽉잡고

                   상양을 파견하여 화주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이극용과 왕중영이 영구에서 이를 격파.

                   이극용은 위교에 진을 치고 그의 장수 설지훈과 강군립으로 하여금 장안으로 들어가 불지르고

                   적들의 목을 베어 돌아오게 하니 황소군은 크게 놀랐다.

883327일 이극용 등이 화주를 뽑으니 황규가 성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88344일 이극용이 충무장수 방종과 하중 장수 백지천 등과 더불어. 위수 남쪽에서

황소군을 하루에 세 번 연파, 의성과 의무군이 합세하자 황소군 도주

88345일 이극용. 장안 진입, 이극용이 장안으로 들어가니 황소는 패하여 궁실을 불태우고 도주

                   ⇒ 24개월 만에 장안 탈환

                   황소군은 죽은 사람과 항복한 사람이 아주 많았으며 토벌군은 장안을 사납게 약탈하여, 도적과 다를것이 없었다.

                   황소는 남전으로부터 상산으로 도주하였는데, 길에다 보물버려, 당군이 이를 빼앗느라 추격안함.   

                   이극용은 당시 28세로 가장 어렸지만 황소를 격파하고 장안을 수복하는데 공로가 으뜸이었고 군사도 가장 강하여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8835월 황소가 맹해를 선봉에 서게하여 채주를 공격하니 절도사 진권권이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고 진종권은 황소에게 칭신.

              맹해가 진주를 치고 항성에서 진을 쳤는데 진주자사 조주에게 패하여 참수를 당하였다.

               황소는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 모든 무리를 은수(溵水)에 주둔시켰고(5)  

8836월 진주를 포위하며 공격하였다. 조주가 자주 정에의 병사를 이끌고 나와 황소군을 쳐서 깨뜨렸다.

              황소는 더욱 화가 나서 진주의 북쪽에 군영을 세우고 오래 끌 계책을 만들었다.

              이때 황소군은 사람을 약탈하여 양식으로 삼았다.또한 군사를 풀어 하남·········산남동도 당·()

              수십 주를 약탈하였다.

88373일 선무절도사 주전충이 변주(汴州: 개봉시)에 도착. 주전충에게 동북면초토사를 덧붙여 주었다.

8837월 안문절도사 이극용을 하동절도사로 삼았다. 이극용은 낙양에서 유차를 지나 안문에 이르렀다.

883811일 이극용이 진양에 도착하니, 아버지 이국창을 대북절도사로 삼아 대주에 진수하게 하였다.

8831018일 이극용이 하공아를 파견하였으나 맹방립에게 패하니. 동생 이극수를 파견 하여, 노주를 빼앗고

                      자사 이은예를 죽였다. 이후 매년 소의군과 전투

883111일 황소의 봉국방어사 진종권이 허주를 포위함

88312월 진주자사 조주가 구원을 요청하니 주급, 시부, 주전충이 모두 군사를 이끌고 그를 구원하였다.

                선무절도사 주전충은 황소의 무리들을 녹읍에서 싸워 그들을 패배시키고, 2천여급을 참수하며 박주를 점거

8841월 황소의 군대가 아직도 강하여 충무절도사 주급, 감화절도사 시부, 선무절도사 주전충이 하동절도사 이극용에 구원요청

8842월 이극용이 번한(番漢)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천정관을 나갔는데 황하 다리가 완성 되지 않아,

              협과 하중에서 황하를 건너 동쪽으로 진격

8843월 주전충이 황소의 와자채를 뽑았는데, 황소의 장수 이당빈과 왕건유가 주전충에게 항복하였다.

8843월 황소가 진주를 300일간 포위 했으나 진주자사 조주 형제와 무리는 마음이 더욱 굳어 있었다.

              이극용이 마침 허, , , 연의 군사들을 진주에서 만났는데 이때 황소의 장수 상양은 태강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88443일 여러 군사가 나아가 태강을 뽑았다. 황소의 장수 황사업은 서화에 주둔하였는데 여러 군대가 공격하니

                    황사업은 달아났다. 황소가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 군사를 고양리로 물리니 진주의 포위는 마참내 풀렸다.

                    주전충은 황소가 곧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대량(大梁)으로 회군함.  

88453일 큰 비가 내려 황소의 군영은 물위에 떠 있었는데 이극용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에 동북쪽 변주로 향하였고,

                위지를 도륙하였다. 황소군 상양은 정예기병 5천으로 대량을 압박하고 번대에 도착하였는데,

                선무의 장수 주진과 방사고가 그를 쳐서 물리쳤다.

88456일 주전충이 이극용에게 급하다고 알리니 이극용이 충무도감사 전종이와 더불어 허주를 출발하여

88458일 중모 북쪽의 왕만도에서 황소군을 대파하여, 1만여를 죽이니 황소군은 드디어 붕괴되었다.

                  황소의 장수 상양이 감화절도사 시부에게 항복하고, 별장인 이당, 곽존, 갈종주, 장귀패, 장귀후는

                  선무절도사 주전충에 항복 왕만도(王滿渡) 전투(58)

88459일 황소는 변주를 넘어 북으로 가는데 이극용이 쫓아가서 봉구에서 또 깨뜨렸다

884510일 밤에 다시 큰 비가 내리니 황소군은 놀라고 두려워서 동쪽으로 도망하였는데 이극용이 이를 쫓아서 조성과 광성을 지났다.

                    황소가 나머지 무리를 거두니 근 1천 명이었는데 동쪽으로 도망하여 연주로 갔다.  

884511일 이극용이 뒤쫓아가서 원구(冤句)에 이르니 따르는 사람이 부족하여 변주로 돌아가 양식구해 다시 추격하여

                     황소의 어린 아들과 부인 등을 얻음.

884514일 선무절도사 주전충. 변주성의 연회에서, 술취한 하동절도사 이극용이 무시하자, 밤에 습격, 겨우 탈출케 함

                     이극용의 부인 유씨의 설득에 군을 이끌고 떠남 주전충과 이극용, 원수지간 됨

884520일 감화절도사 시부가 그의 장수 이사열을 파견하여 1만군()을 거느리고 황소를 뒤좇았다.

884615일 무녕장수 이사열이 상양과 함께 황소를 뒤쫓아 하구에서 패배시켰다.황소의 무리는 거의 다 없어지고 태산의 낭호곡에 도착.

884617일 황소의 사망- 황소의 난 종결

                    황소의 생질인 임언이 황소와 형제 그리고 처자의 머리를 베어 감화절도사 시부에게 가려고 하였는데

                    사타의 박야군을 만나 이를 빼앗겼고 아울러 임인의 머리를 베어서 시부에게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