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56,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01, 8. 황소의 난-27)
차례
가.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상)
2. 구당서 토번전(하)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다.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2) 해설
2) 해설 - 7
◎ 진해절도사 고병을 회남절도사로(879년 10월)
이에 당에서는 진해절도사 고병을 회남절도사로, 경원절도사 주보를 진해절도사로, 이동시켜 황소에 대비하였다.(10월)
◎ 황소의 1차 북진(879년 10월 21일)
황소가 영남에 있었는데 풍토병으로 사졸들이 3~4할 죽자 그 무리들이 북쪽으로 가서
큰 일을 도모하라고 권고하자 황소는 이를 좇았다.
계주에서 뗏목 수십개 만들어 홍수를 타고 상강을 따라 형주(衡州)와 영주(永州)를 거쳐
담주에 도착하여(10월21일) 담주를 하루만에 함락시키니 행영부도통 이계는 도주하였으며 황소의 부하장수 상양은 강릉을 압박하니 무리가 50만이라고 불렀다.
형남절도사 왕탁은 강릉에 1만 군사 밖에 없어, 유한굉을 남기고, 양양으로 갔다.
남은 장수 유한굉은 강릉을 약탈하고 불질러, 백성들은 산골짜기로 도주하였으나,
큰 눈이 와 얼은 시체가 들에 가득찼다.
10여일 후 황소가 강릉에 입성하였고, 유한굉은 북쪽으로 가 떼도적이 되었다
◎ 황소 양양에서 대패(879년 11월)
황소는 강릉에서 양양으로 갔으나, 산남동도절도사 유거용과 강서초토사 조전정에게,
형주(荊州) 형문에서 대패하니, 포로와 전사 7 ~8할 이었다.(11월)
◎ 황소의 2차 남하(879년 11월)
황소와 상양은 무리를 수습하여 장강(양자강)을 건너 동으로 달아났는데, 유거용과 조전정은 추격을 중지하여 황소의 세력은 다시 떨치게 되었다.
황소는 악주 외곽을 함락하고, 돌아다니며 강서의 요, 신과 선흡의 지, 선, 흡과 절동의
항 등 15개 주를 약탈하니, 그 무리는 20만 명에 이르렀다.(11월)
< 880년 >
한편 이극용 쪽에서는 .......
사타가 안문관에 들어와서 흔주와 대주를 약탈하였으며(1월) 이어서 사타의 2만여 명이
진양을 압박하고(2월26일), 태곡을 함락시켰다.(2월27일)
이에 여주 방어사 제갈상을 파견하여 하동을 구원케 하였는데 하동절도사 강전규는 소홍진을 파견하여 진성에서 싸웠으나 패하여 돌아와 참수하였다.
그런데 사타는 이미 대북으로 돌아갔다. 이에 하동절도사 강전규는 도교련사 장언구로 하여금 3천 군사로 추격하게 하였으나
군사들이 백정(百井)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진양 돌아와 하동절도사 강전규를 죽이고 장언구를 도우후로 삼았다(2월28일)
이 소식을 들은 당 조정은 사자를 파견하여 “절도사를 죽인 것은 일시적인 것이니 각기 스스로 편안히 하고 다시는 걱정을 하거나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종당을 하동절도사에 충임하여. 하동을 안정시켰다(3월18일)
다시 황소쪽에서는........
◎ 고병. 황소군 누차 격파(880년 3월)
회남절도사 고병이 황소군을 누차 격파하고 제도행영도통 되어 7만 의용군 모집하였다(3월)
그리고 장린이 황소군의 우두머리 왕중패를 항복시키고 누차 황소의 군대를 격파하니 황소는 물러나 강서의 요주로 후퇴하였는데,
별장 상굉이 수만명을 가지고 항복하였다.
장린이 다시 요주를 치니 황소는 달아났다.(4월)
형남의 장수로 떼 도적이 된 유한굉의 무리들이 송주와 연주를 약탈하니,
관동의 여러 군에게 토벌케 하였다.(5월11일)
이때에 고병이 커다란 실수를 하여 황소의 난은 황소쪽으로 기울고 만다.
◎ 고병의 과욕으로 인한 패전과 황소의 승리(880년 5월)
황소가 강서의 신주에 주둔하였는데, 역병으로 사졸들 대부분 죽었다.
장린이 그들을 급히 치니 황소는 금으로 장린에게 뇌물을 먹이고 회남절도사 고병에 투항을
요청하였다. 이때 소의, 감화, 의무 절도 등의 군이 모두 회남에 도착하였는데
회남절도사 고병은 전공을 탐내여 구원군 전부를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자 황소는 고병에게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싸움을 청하니 고병은 장린으로 하여금 치게 하였는데 군사는 패배하고 장린이 죽으니 황소가 다시 떨쳤다.(5월)
그리고 황소의 별장이 절서의 목주와 ·절동의 무주를 함락하였다.(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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