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53,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8, 8. 황소의 난-24)
차례
가.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상) 2. 구당서 토번전(하)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다.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2) 해설
2) 해설 - 4
< 878년 >
그래서 왕선지는 강릉을 습격하고, 외성 함락하였다.(1월1일) 이에 형남절도사 양지온이 산남동도절도사 이복에게 구원을 청하니 이복은 그의 무리 전부와 사타 기병5백으로 구원하여, 형문에서 사타 기병들이 왕선지 군을 격파하니, 왕선지는 강릉을 약탈하고 철수하였다. 강릉에는 30만호가 있었는데, 이때 30~40%가 죽었다
그런데 초토부사 증원유가 왕선지를 신주에서 대파하여. 죽인 사람이 1만이고, 항복시키거나 흩어서 보낸 사람 역시 1만 이었다.(1월6일) 이에 송위를 초토사에서 파작시키고 증원유를 초토사로 장자면을 부사로 삼았다.
◎ 서천절도사 고병을 형남절도사로(878년 1월)
서천절도사 고병을 형남절도사로 삼았다.(1월14일) 남조를 안남과 서천에서 두 번씩 꺾은 고병을 왕선지, 황소의 난을 진압하려는데 쓰자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시대에 또하나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이극용이다.
◎ 이극용의 출현(878년 2월)
진무절도사 이국창(주야적심)의 아들 이극용이 사타부명마사가 되어 울주를 지켰다. 이때 하남의 도둑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자 운주 사타병마사 이진충이 아장 강군립 등과 모의 하기를 “지금 천하는 크게 혼란해 조정의 영이 사방에서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이국창과 이극용을 보필하여 거사하자”고 하였다. 이에 이진충은 이극용에게 군사를 일으켜 단문초를 제거하고 그를 대신하라고 하였다. 이진충이 대동방어사 단문초를 공격하여 잡고 이극용을 불렀다. 이에 이극용이 운주성에 도착하였는데(2월4일) 무리는 1만명이었다. 이극용이 방어유후를 칭하며, 단문초를 죽이고, 당 조정에 대동방어사유후 직위를 요구하였지만 허락하지 않았다.(2월8일)
이즈음에 왕선지가 허망하게 죽는다.
◎ 왕선지의 사망(878년 2월)
초토사 증원유가 보고하기를 “황매(黃梅)에서 왕선지를 대파하여 5만여를 죽였으며 왕선지를 참수하니 나머지 무리들은 흩어졌다”고 하였다.(2월) ⇒ 왕선지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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