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51,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6, 8. 황소의 난-22)

상 상 2017. 8. 16. 20:35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51,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6, 8. 황소의 난-22)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2) 해설

 

2) 해설 - 2

 

< 876>

 

이렇게 도둑들이 일어나자 복건, 강서, 호남의 관찰사와 자사들에게 사졸들을 훈련시키게 하고 전국의 향촌에 각기 활과 칼 북과 방패를 비치하고, 여러 도적들에 대비케 하였다.

(1)

 

또한 도둑들이 창궐하자 선무와 감화절도, 사주방어사에게 비밀스럽게 명령하여, 조운 선대를 방위케 하고 바치는 전(: )과 쌀이 평안한지 상황을 보고하게 하였다.(4)

 

한편 왕영의 난에 대해서 당 조정은 암주자사였던 고걸을 연해수군도지병마사에 충임하여,

절서에서 반란한 낭산진알사 왕영을 토벌케 하였다.(7)

 

왕선지 사망 허위보고(8767)

평로절도사 송위가 왕선지를 기주성 아래에서 대파하니, 왕선지는 달아났다. 그러나 송위는

왕선지가 죽었다고 보고하고 여러 도의 군사를 돌려보내며 자신은 청주로 돌아왔다.(7)

그러나 3일 후 주현에서 왕선지가 살았다고 보고하였다.

이때 군사는 처음으로 쉬고 있었는데, 다시 군사들을 발동하니 군사들은 분하고 원망하여

난을 일으킬 생각을 하였다.(7)

 

그런데 왕선지가 양적과 겹성을 함락시키니, 당은 충무절도사 최안잠에게 치게 하였다(8)

또한 당 조정은 소의절도사 조상으로 하여금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의성군과 함께 낙양을 방어하게 하고, 산남동도절도사 이복에게는 군사 2천을 선발하여 여주와 등주의 길목을 지키게 하였는데 왕선지가 전진하여 여주를 압박하니, 빈녕절도사 이간과 봉상절도사 형호도에게 보병1천과 기병 5백으로 섬주와 동관을 지키게 하였다.(8)

 

이에 왕선지가 여주를 함락시켰다(92)

그런데 이때 낙양에 대지진이 일어나 백성들 성밖으로 도주하니(92) 당 조정이 왕선지와 그의 무리 상군장에게 사면령을 내리고 관직을 제수하여 불러 타이르게 하였다(911). 그러나 왕선지는 양무를 함락시키고 정주를 공격하였으나 소의감군판관 뇌은부가 중모에서 왕선지를 깨뜨려 달아나게 하였다.(9)

 

그러자 왕선지는 남쪽으로 당주와·등주를 공격하였다(10)

이어서 왕선지는 영주와 복주를 함락시켰다(11)

 

 

한편 왕영의 난은....

 

절서의 반란군 왕영이 온주자사 노식을 통해 항복을 청하니, 궁궐까지 오라고 명을 내렸으나 미적거리면서 오지않고 망해진사(望海鎭使)를 시켜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왕영을 우솔부솔로 삼고 그가 노략질한 재물은 주게 하였다.(11)

 

다시 왕선지는.......

 

왕선지가 신주, 광주, 려주, 수주, 서주, 기주를 공격하니(12)

회남절도사 유업이 군사를 더 보태달라고 하자 감화절도사 설능에게 병사 수천을 선발하여

그를 도우라고 하였다. 또한 정전의 계책에 따라 충무절도사 최안잠을 행영도통으로 삼고 이전을 초토사로 삼아서 송위를 대신하게 하고 장자면을 부사로 삼아 증원유를 대신하게 하였다(12)

 

그런데 여기서 왕선지와 황소가 갈라진다.

 

 

왕선지와 황소의 분열(87612)

 

왕선지가 기주를 공격하니 기주자사 배악이 성문을 열어 왕선지와 황소가 들어가니 왕선지에게는 관직을 주고 황소에게는 관직을 주지 않으니 황소가 화를 내고 왕선지를 구타하여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그 무리들이 난동을 부렸다. 왕선지는 무리들이 화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여 관직을 받지 않고 기주를 크게 노략질하니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반쯤은 얻어맞고 반쯤은 죽었으며 그들의 집을 불태웠다.

이에 군대를 나누어 3천명은 왕선지와 상군장를 좆게하고 2천여 명은 황소를 좆게하여

각기 길을 나누어 갔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