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07,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52, 7. 남조의 침공-19)

상 상 2017. 3. 31. 16:54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07,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52, 7. 남조의 침공-19)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1) 연표

 

연표3: 비교연표- 1

남조

(신구당서 남만전 중 남조전)

(자치통감 등)

859

때마침 선종(宣宗)이 붕어하여(859),

사자가 가서 죽음을 알렸다. 이때 풍우 또한 죽어서 탄작(坦綽) 추룡(酋龍)이 즉위하였다. 추룡은 조정이 문상하지 않은 것과 또 조서를 이전 왕에게 내린 것에 화가 나서, 거친 음식으로 사자를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마침내 황제를 참칭하고 건극(建極)이라는 연호를 세워 대예국(大禮國)을 자칭하였다. 당 의종(懿宗)은 그 명칭이 현종(玄宗)의 휘()에 가깝다고 하여 조공관계를 끊었다. 이에 남조는 파주(播州)를 함락시켰다.

하동(河東)의 운((() 3개 주()를 대동군(大同軍)에 예속시켰다(8593)

무녕(武寧)절도사 강계영이 병사들 구휼하지 않자 사졸들이 그를 내쫓았다(4).

 

50세 당 선종은 의관 이현백, 도사 우자지, 산인(山人) 왕락의 약을 먹고 등창이 생김(6)

8월에 등창이 심하여 재상과 조정의 인사들은 모두 알현할 수 없었다.

당 선종이 기왕(夔王)을 태자로 세우도록 하고 죽었다.

 

환관 왕종실이 운왕(鄆王) 이온을 황태지로 세우고 이름을 이최로 고쳤다(89)

영호도를 섭총재로 삼았다.(10)

 

당 의종이 즉위하였다(813) -환관 왕종실이 옹립

왕종실을 표기상장군으로 삼았다(820)

 

소업을 형남절도사로 충임하였다(117)

 

구보의 난(85912~8607) 당말민변(唐末民變)

절동(浙東) 도적 구보가 무리 100명으로 상산(象山:절강성 상산)을 함락시키고 관군은 누차 패배하여 명주성(明州: 절강성 영파시)은 낮에도 성문이 닫히니 도적은 나아가 섬현(剡縣:절강성 승주시)을 압박하였다.(85912)

 

절동관찰사 정지덕은 토격부사 유경과 부장 범거식을 파견하여 군사 3백을 거느리고 토벌하도록 하였다.

 

영호도를 하중절도사로 좌천시켰다(1216)

남조(南詔)의 왕 추룡이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대례(大禮)'라고 하였으며,

군대를 보내 파주(播州)를 함락시킴(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