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2년(848) 봄에 남아 있던 명왕(名王), 귀신(貴臣) 5백 명 이하만이 실위에 의지했다. 장중무가 정월을 쇠기 위해 실위가 유주를 통과하려고 할 때 오히려 [그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명령해 [특근]알념 등을 유주로 오게 했다. [특근]알념 등이 두려워하며 그 밤에 아내 갈록(葛祿), 아들 특근독사(特勤毒斯) 등 아홉 기와 함께 서쪽으로 도망갔는데, 나머지 백성들도 도망하다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회골 여러 명의 상과 달관, 그리고 노약자들이 크게 울었다. [이에] 실위가 회골의 나머지 백성을 일곱으로 나누어 일곱 개의 실위 부락으로 하여금 각각 하나씩 나누어 갖게 했다. 사흘 밤이 지나 힐알사 상(相) 아파(阿播)가 여러 종족의 병사 7만을 이끌고 서남쪽으로 천덕[군]의 북쪽 경계까지 와서 [특근]알념과 여러 회골의 [백성들을] 거두고 실위를 크게 격파했다. 회골 중에서 실위에 있었던 사람들을 아파가 모두 잡아 고비 북쪽으로 돌아 가버렸다. 그 밖에도 아직 여러 장이 남아서 여러 산 깊은 숲 속에 흩어져 숨어 다른 종족들을 도둑질하고 있다가 모두 서쪽으로 안서[에 있는] 방[특]륵(龐特勒)에게 가고자 했다. [이때] 방[특]륵은 이미 가한을 자칭하고 고비 서쪽의 여러 오아시스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후사는 임금이 약하고 신하들이 강하게 되어 감주(甘州: 치소, 지금 감숙성 장액)에 살았지만 다시 옛날과 같은 번성함을 되찾지 못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들이] 사신을 보내 조정에 들어와 옥과 말과 같은 두 가지 종류와 그 땅에서 생산된 물품을 바치고 교역을 하고 돌아갔다. <구당서 회홀전 끝> [대중 2년(848) 봄에] 남아 있었던 명왕(名王)과 귀신(貴臣) 5백 명도 옮겨가 실위에게 의지했다. [장]중무가 실위를 회유해 가한 등을 잡아오게 하자 알념[가한]이 무서워 아내 갈록(葛祿)과 아들 특륵독사 등 9명의 기병만 데리고 말을 달려 백성들을 버리고 서쪽으로 달아났는데 부락 사람들이 모두 서럽게 울었다. [그 이후에] 실위 일곱 부락이 [남은] 회골을 나누어 예속시켰다. 힐알사가 화를 내며 그 (재)상 아파(阿播)에게 군대 7만 명을 거느리고 실위를 공격해 회골을 모두 잡아서 고비 북쪽으로 돌아갔다. 남은 부락들은 삼림 속에 숨어 [주변에 사는] 여러 다른 종족을 도적질해 스스로 먹고 살다가 점차 방특륵에게 귀부했다. 이때 [방]특륵이 이미 스스로 가한을 칭하고 감주(甘州: 지금 감숙성 장액-甘肅省 張掖)에 거주하면서 고비 서쪽의 여러 오아시스를 차지하고 있었다.(이를 역사에서는 감주회골이라고 하기도 하고, 달리 하서회골이라고도 한다. 몽골 초원의 회골이 9세기 중반 붕괴된 이후 서쪽의 감주 주변으로 이주해 성립된 왕국이다) <신당서 회홀전> 당 선종 대중 2년(848년) 정월 을축일(28일) 이후, 회골(回鶻)의 알념가한(16대 가한)은 해왕 석사량에게 공급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장중무가 해족 무리를 대파하게 되자 회골은 먹을 것을 얻을 곳이 없어 날마다 더욱 줄어들고 흩어져서 이에 이르러서는 남아있는 귀인이하는 500명이 되지 않았고 실위부락에 의탁하고 있었다. 사자가 들어와서 새해를 축하하고 나서 유주를 지나가는데 장중무는 돌아가 알념 등을 잡도록 시켰고 알념은 그 소식을 듣고 밤에 처 알록과 아들 특륵 독사 등 9명의 기병과 더불어 서쪽으로 달아났고, 나머지 무리는 그 뒤를 좆았으나 미치지 못하자 서로 크게 통곡하였다. 실위는 남은 회골의 무리를 나누어 일곱으로 하고, 일곱 성(姓)의 부락이 공동으로 이들을 나누었으며 사흘을 머문후 할힐사가 그 재상인 아번을 파견하여 여러 호족의 병사들을 7만이라고 하면서 인솔하고 가서 회골을 빼앗도록 하니 실위를 대파하고 회골의 나머지 무리를 다 거두어 사막 북쪽으로 돌아갔다. 아직 있던 몇 개의 장은 몰래 산림속에 숨어서 여러 호족을 노략질하고 훔치고 있었으며 그 별부인 방륵(17대 가한)은 예전에 안서에 있었는데 역시 스스로 가한으로 칭하며 감주에 살면서 사막의 서쪽에 있는 여러 성을 총괄하였으나 종족과 부락이 작고 허약하여 때때로 들어와 물건을 바치고 알현하였다. <자치통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