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봉의 진실(33)

상 상 2017. 1. 11. 17:38

책봉의 진실(33)

 

위의 사료를 보면 841년부터 843년까지 회홀의 상황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자치통감을 중심으로 그 핵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841

(개삽)가한의 아장 가까이 있던 13개의 부락은 오개 특륵을 가한으로 삼고 남쪽으로 착자산에 들어갔다.- 회홀의 15대 오개가한 즉위

 

힐알사가 회골을 격파할 때 태화공주를 사로잡았으나 달간 10명을 시켜 공주를 당나라에 돌려보냈는데 오개가한이 도중에 달간 등을 모두 죽이고 태화공주를 인질로 삼아 천덕군의 경계에 주둔하였다.

 

태화공주는 가한이 이미 세워졌으니 책명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오개가한도 진무성

태화공주와 자신의 거주지로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오개가한의 요청에 당 무종은 식량 2만 곡은 주었으나 진무성은 허락하지 않았다.

 

842

태화공주의 요구에 당 무종은 책명 사신을 보냈으나 서서히 가도록 하여 사실상 책봉할 마음이 없었으며 실제로 책명 사신 묘진은 오개가한이 변경을 자주 침입하고 시끄럽게 한다는 핑계로 끝내 오개가한에게 가지 않았고 따라서 책봉도 하지 않았다.

 

회홀이 세갈래로 나뉘어 흩어졌었는데 그 두 번째 갈래인 올몰사, 적심, 복고, 나힐철 무리에서 내분이 일어나 올몰사가 적심과 복고를 죽이고 나힐철은 동쪽으로 달아났다.

이에 올몰사가 당(진무절도사)에 투항하였다. 그리고 동쪽으로 간 나힐철은 유주를 넘보다가 노룡절도사 장중무에게 패하여 달아났다가 오개가한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이때 오개가한의 무리는 10만이라고 불리고, 아장을 대동군 북쪽 여문산에 두었다.

 

오개가한이 다시 군사와 천덕성을 빌려달라고 하였는데 당 무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오개가한이 대동천 들어와 노략질하고 싸우다가 운주 성문에 도착하니 자사 장헌절이 성문을 닫고 지켰다.

 

한편, 올몰사 등이 당 조정에 오자 모두 이씨 성을 내려 올몰사를 이사충, 아력지를 이사정, 습물철을 이사의, 오라사를 이사례, 그리고 애사물을 이홍순이라고 하고 귀의군부절도사에 배수 했다.

 

하동절도사 유면에게 초무회골사를 겸하도록 하고, 유주절도사 장중무를 동면초무회골사로 삼고, 이사충(올몰사)를 하서당항도장과 회골 서남면초토사로 삼았는데, 이사충은 글필(契苾), 사타(沙陀), 토욕혼 출신의 6천 기병과 세력을 합쳐서 회골을 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유면과 장중무는 혹한으로 군사를 나가게 할수 없으므로 새해 초까지 기다리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진무절도사 이충순만이 홀로 이사충과 함께 전진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충순이 주문을 올려서 회골을 공격하여 이를 깨뜨렸다고 하였다.

 

843

또한 회홀이 이홍순에게 패배를 했다. []면과 천덕행영부사 석웅이 용감한 기병과 사타, 계필 등의 여러 다른 족속을 정돈해 밤에 운주를 나가 마읍까지 말을 달려갔다가 안중새에서 회골과 만나 싸워 회골을 대패시켰다. 오개가한이 바야흐로 진무성을 압박하며 힘차게 말을 몰아 들어왔다가 밤에 성벽에 판 구멍에 숨어 있었던 정예 병사가 튀어 나오자 오개가한이 놀라 물러나 갔고, 석웅이 북쪽으로 쫓아 살호산까지 가자 오개가한은 부상을 입고 도망했다. 풍주자사 석웅이 태화공주를 만나 공주를 모시고 돌아오자 특근 이하 백성 수만 명이 항복을 했고, 짐수레와 물자, 그리고 내려준 조서 등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 오개가한이 나머지를 거두어 흑거자(黑車子)에게로 가서 의지하자 황제가 조칙을 내려 이홍순, 하청조에게 끝까지 쫓게 했다. 이홍순이 흑거자를 많은 재물로 유혹해 오개가한을 죽일 것을 도모했다. 이전에 오개가한을 따라 망명한 사람들이 궤멸되어 군대를 조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