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봉의 진실(11)

상 상 2016. 11. 16. 20:30

책봉의 진실(11)

 

그리고 구당서 토번전을 보면

(정원) 8(792) 4월에 토번이 영주(靈州)를 습격하여 백성과 가축을 노략질하고, 수구성(水口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며, 계속 전진하여 주성(州城)을 포위하고 수구(水口) 및 지거(支渠)를 막아 영전(營田)을 파괴했다. 하동(河東), 진무(振武)에 조서를 내려 군대를 나누어 구원하게 하고, 또한 신책6(神策六軍)의 군졸 3천여 명을 나누어 정원, 회원 두 성을 지키게 했는데, 황상이 신무루에 나가 이들을 위로하며 보냈다. 토번이 군대를 이끌어 퇴각했다.

 

6월에 토번 수천 기()가 청석령(靑石嶺)에서 나와 경주(涇州)를 공격하여 둔전병 천여 명을 노략하고 돌아갔고, 연운보(連雲堡)에 이르자, 수착사 당조신이 군대를 보내 나가 싸웠는데, 대장 왕진용이 죽었다.

 

9월에 서천절도사 위고가 토번의 유주(維州)를 공격하여, 대장 논찬열과 수령을 잡아다가 경사(京師: 장안)에 바쳤다.

 

11월에 산남서도절도 엄진이 토번을 방주(芳州) 및 흑수보(黑水堡)에서 격파하고, 쌓아 놓은 재물을 불살랐으며, 아울러 수급과 포로를 바쳤다.

,

라고 되어 있어 792년에는 토번과 당이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구당서 토번전을 보면

(정원) 9(793) 2월에 조서를 내려, 염주(鹽州)에 성을 쌓게 했다. 염주의 주성(州城)은 앞서서 토번에게 훼손되어, 그 이후로 새외(塞外)에 성곽과 보루가 없었다. 이에 영무(靈武)가 고립되어, 서쪽에서 [토번이] 부방(鄜坊)을 핍박하였고, 이에 변경의 근심이 심했기 때문에 [이번에] 성을 쌓게 했으며, 20일 만에 완공되었다. 다시 겸어사대부 흘간수에게 조서를 내려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겸어사중승 두언광(杜彥光)의 군사와 함께 이를 지키게 했다. 이번 노역에 대해, 황상은 장군과 사졸의 수고로움이 클 것이라 여기시고, 도지(度支)에게 명하여 경비를 후하게 책정하도록 했다. 또한 경원, 검남, 산남의 군대에게 조서를 내려 토번에 깊숙이 들어가 공격하여 [토번의] 병력을 분산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성을] 축조할 때, [토번의] 오랑캐가 변경을 침범하는 자가 없었다. 성이 완성되자 주변국에서 모두 치하했다. 이번 달에 서천(西川)의 위고(韋皋)가 토번의 수급과 포로, 병기, 장비, 기장(旗幟), , 말 등을 노획하여 황상에게 바쳤다.

당초 염주에 축성하려 했을 때, 황상이 위고에게 명령하기를 출병하여 토번의 군대를 분산하라 하니, 위고가 대장 동면, 장분을 보내 서산(西山)과 남도(南道)로 나아가, 아화성(俄和城)과 통학군(通鶴軍)을 격파했다. 토번 남도원수(南道元帥) 논망열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지원했으나, 이 또한 격파하여 수천 명을 살상하고, 정렴고성(定廉故城)을 불살랐다. 평정한 영책(營柵)과 보루가 모두 50여 곳이었다.

라고 되어 있어 7932월에는 토번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염주성을 쌓았고,

 

구당서 남조전을 보면,

[덕종 정원] 9(793) 4....(상략) [](서천절도사)가 마침내 순관(巡官) 최좌시에게 명하여 []모심이 도읍한 양저미성(陽苴咩城)에 가게 하였다. [양저미성은] 남쪽으로 태화성과의 거리가 10여 리이고, 동북쪽으로 성도(成都)까지 2400리이며, 동쪽으로 안남(安南)까지는 성도에 이르는 거리와 같고 수로와 육로로 통행할 수 있다. 이때에 토번의 사자 수백 인이 []좌시에 앞서 남조에 있었고, []모심은 더불어 귀화(歸化)를 의논하기 위해 제 종락(種落)을 소집하였으나, 혹이 다 이르지 않아, 감히 공언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은밀히 ()좌시에게 장가(牂牁)의 사신을 칭하게 하여, 장가의 복장을 하고 진입하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좌시가 거부하며 말하기를, “나는 대당(大唐)의 사자인데, 어찌 소이(小夷)의 옷을 입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모심(남조왕)이 어쩔 수 없이 결국 밤에 ()좌시를 맞이하여, 자리를 만들고 등촉(燈燭)을 늘어놓았다. ()좌시가 이에 큰 소리로 조서를 선포하였는데, ()모심이 토번이 알까 두려워하며 돌아보니, 좌우가 [모두] 실색하였다. 그러나 이미 당()에 귀부하는 것으로 일이 결정되고, 조금 지나니, 흐느끼며 울면서 모두 부복하여 명을 받들었다.


라고 되어 있어 7934월에는 당이 남조의 이모심마저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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