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의 진실(9)
계속 구당서 회홀전을 보면
라고 되어 있어 새로운 가한(7대 봉성가한)을 책명한 것이 791년 5월 1일이다.
그런데 자치통감을 보면,
라고 되어 있어 봉성가한(충정가한의 아들)의 책명이 791년 2월 12일이다. (봉성가한은 790년 4월에 즉위하였고, 790년 가을에 책명을 청하여 당이 책명한 것은 791년 2월, 혹은 791년 5월이다.)
이러한 회홀의 정변 속에서 당이 회홀의 가한에게 책명한 것이 2번이다. 1) 충정가한: 789년 12월 11일 (자치통감), 790년 6월(구당서 회홀전) 2) 봉성가한: 791년 5월 1일(구당서 회홀전), 791년 2월 12일(자치통감)
이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당나라가 책명하였는지 알아보자.
첫 번째 충정가한은 토번이 북정도호부를 공격하자 토번이 이를 구원하러 나선 이후이며 두 번째 봉성가한은 회홀이 두 번째 북정도호부 전투에서 패한 후이다.
따라서 둘 다 회홀이 당나라와의 동맹 때문에 당나라의 북정도호부를 구원해 주려는 전쟁을 치루고 나서이다. 즉, 회홀이 당나라 대신 토번과 싸운 것이다.
다시말해서 토번이 당나라에게 너희들이 약속한 북정도호부 등 4개 주를 내 놓으라고 하자 당나라가 이를 회피하니 토번이 당나라를 공격하였고, 이에 당이 견디지 못하고 토번에 어린 친딸을 시집보내며 동맹을 맺자 토번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직접 북정도호부를 공격하자 회홀이 구원에 나서며 당나라 대신 회홀이 전쟁을 한 것이다.
이때에도 당나라와 회홀의 관계는 당나라가 도움을 받는 입장이고 회홀은 도움을 준 입장이다. 즉, 회홀이 우위에 있었다.
여기에서도 회홀이 당나라의 종속국이라거나 당나라의 지배통치 하에 있었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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