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의 진실(4)
3) 회홀의 4대 가한(무의성공가한)
그런데도 당나라는 780년 6월 회홀의 가한(군주)를 또다시 책명하고 있다.
구당서 회홀전을 계속 보면,
라고 되어있다.
위에 있는 구당서 회홀전에는 날짜가 없는데, 이때가 780년 6월이다. 그 근거는 구당서 덕종 본기이다.
자치통감을 봐도
라고 되어 있어 780년 6월에 회홀의 새로운 가한을 책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어떤 시기인지 알아보자.
776년에 토번의 고홍 등 4개 절도(節度) 및 돌궐, 토욕혼, 저, 만(蠻), 강, 당항 등 20여만 무리가 당나라에 쳐들어왔는데 검남절도사 최녕이 이를 격퇴하였으며
777년에 토번이 당나라의 방주쪽으로 또 쳐들어왔으며(9월) 778년에는 회홀이 병주와 대주쪽으로 쳐들어 왔고, 토번은 당나라의 영주 염주 경주를 유린하고 돌아간 뒤, 남쪽으로 남조 병사 20만과 연합하여 무주, 부주, 문주, 여주, 아주를 공략하였다.
779년, 당 덕종이 즉위하자 토번과의 전쟁을 중지시키고 사신을 교환하며 평화로 방향을 틀고, 회홀에 대해서도 대종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다시 과거의 우호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홀의 모우가한이 바로 거국적으로 남하해 당나라의 상사를 빌미로 장차 공격을 하고자 했다. 이때 그 나라 재상 돈막하달간이 모우가한을 죽이고 합골돌록 비가가한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779년 당 덕종이 즉위하면서 그동안의 전쟁을 종식하고 토번과 회홀에 우호관계를 맺고자 한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회홀에 우호관계를 구축하려다가 모우가한이 반대하였는데 당나라에 우호적인 돈막하달간이 모우가한을 죽이고 회홀의 합골돌록 비가가한이 되자 그와 우호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것이 합골돌록 비가가한을 무의성공가한으로 책명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볼때 여기서 책봉이란 우호관계 구축 또는 우호관계 표시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책봉이 종속관계나 지배통치 관계 및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