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의 진실(2)
2) 회홀의 3대 가한, 영의건공비가가한
구당서 회홀전을 좀더 보면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회홀이 사사명의 난을 평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회홀이 사사명의 난을 평정한 때가 763년 1월이니 책명은 그 이후에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763년 7월 1일에 책명이 있었다. 자치통감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그러면 이때 회홀이 당나라의 속국이었는가? 또는 회홀이 당나라의 지배 통치체제에 속한 나라였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759년 안록산을 죽인 그의 아들 안경서를 구하기 위해 사사명이 15만 군대를 앞세워 당나라 60만 대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것이 759년 3월이다. 그리고, 사사명은 안경서를 죽이며 범양(북경)에 돌아와 연나라 황제를 칭한다.(759년 4월)
그해 9월에 사사명 역시 범양(북경)에서 난을 일으키고 3일만에 낙양을 점령한다. 그리고는 사사명은 당의 전쟁에서 교착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 있을 때 사사명의 난을 평정해 준 것이 회홀이다. 회홀이 2천여 리를 추격해 평주 석성현(하북성 난현)에 이르러 사사명을 죽인 그의 아들 사조의의 머리를 잘라 돌아옴으로써 사사명의 난이 평정되었다.
이러한 말은 사사명의 군대가 당보다 우월하였고 회홀의 군대는 사사명의 군대보다 더 우월였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즉, 회홀의 국력이 당나라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따라서 회홀이 당나라의 속국이라든가 당나라의 지배 통치를 받는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말은 책봉이 속국이라든가 지배 통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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