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의 진실(1)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를 잠시 쉬고 책봉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이른바 조공 책봉체제로 중국이 옛날에 주변국가를 통치하고 그 주변국가는 중국에 종속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조공의 진실은 교역임을‘조공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자세하게 설명하였으니 이제는 책봉의 진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책봉(冊封): 책봉(冊封) 중에서 책(冊)이란 죽책(竹冊)이나 옥책(玉冊)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문서이다. 그리고「봉(封)이란 조세를 받아먹는 것이다.」(사기 화식열전)
어찌보면 봉(封)이란 「그 지역을 네가 다스려라」라고 하는 것으로 주나라 시절 봉건제도에서 나온 것이다. 뜻으로 보면 마치 종속관계에 있고 지배 통치체제같이 보인다. 또한 임명같이도 보인다.
정말 그런가?
당나라는 중국을 대표하는 나라이고 중국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나라로 알려졌으니 책봉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줄 것이다. 그래서 책봉의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당나라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 당나라가 책봉을 한 경우에 당나라와 종속관계가 있었고 당나라의 지배 통치체제 속에 속하였는가?
< 회홀의 경우>
1) 2대 가한, 영무위원비가가한 (회홀의 1대 가한인 회인가한은 당나라의 책봉이나 책립이 없었음)
구당서 회홀전 건원 원년(758) 7월 기사를 보면
라고 하고 그의 한참 뒷부분에
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른바 책립이다.
※ 참고 구당서 회홀전에 나오는 영무위원비가가한을 갈륵가한이라고 한 근거: 회인가한(제1대 가한)이 죽자 아들 약갈라 마연철이 서고 명호를 갈륵가한이라 하였다. <자치통감 현종 천보 4재(745년) 정월 갑자일(6일)-이후>
당에서 회홀의 가한을 책립하였으니 회홀은 당의 종속국이거나 당나라의 지배 통치체제 하에 있었던 나라인가?
위에 소개한 구당서 회홀전에 나오는 바로 그 건원 원년(758) 7월 갑오일 기사를 보면
라고 쓰여 있다.
당 숙종의 친딸 영국공주가 나라의 일 때문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시집가고 또한 당 숙종은 그것을 보고 울면서 돌아왔는데 회홀이 당나라의 종속국인가? 회홀이 당나라의 지배 통치 체제 속에 속해 있었는가?
당나라 황제의 친딸이 자국의 사정 때문에 목숨을 바쳐가며 회홀로 시집 가는데 어떻게 회홀이 당나라의 속국인가? 어떻게 회홀이 당나라의 지배통치 하에 있는가? 절대로 아니다. 거꾸로 회홀이 상위국이고 당나라가 하위국이다.
이때는 안록산의 난 때이고 이때 당나라는 안록산에 의해 박살나서 회홀이 군사를 동원하여 장안과 낙양을 되찾아 주었다. 그때가 757년 9월과 10월이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당 숙종은 자기의 둘째 딸을 회홀의 가한(군주)에게 시집을 보내니 어린 딸은 울면서 “나라의 일이 중요하니 죽어도 또한 아무런 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여 「황제도 울면서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회홀이 당나라의 종속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회홀이 당나라의 지배 통치체제 속에 속하였는가?
이러한 사실은 책봉이 종속국임과 지배 통치체제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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