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의 진실(3) 계속해서 구당서 회홀전을 보면 대력 6년(771) 정월에 홍려시(鴻臚寺)에 있었던 회흘[사람]이 마음대로 방(坊: 주택 구역)의 저자(시장)로 나가 백성의 자녀들을 잡아갔는데, 담당 관리가 [그를] 되찾아 돌아오려고 하자 [회흘이] 화를 내며 [관리를] 구타하고 3백 명의 기병을 이끌고 금광문(함광문)과 주작문을 범하기도 했다. 이 날 황성의 여러 대문들은 모두 닫고 황제가 중사(中使: 환관) 유청담을 시켜 [회흘을] 위무하게 하자 멈추었다. |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회홀이 당나라의 종속국이라거나 당나라의 지배통치 하에 있었기는 커녕 회홀이 당나라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대력] 7년(772) 7월에 회흘이 홍려시를 나아가 방의 저자에서 난동을 부려 장안령(長安令: 장안 시장) 소열을 함광문이 있는 거리에서 쫓아냈고, [소]열이 타던 말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소]열은 몸만 빠져 도망 왔고 관리들도 제지할 수 없었다. <구당서 회홀전> |
이러한 모습도 회홀이 당나라의 종속국이라거나 당나라의 지배 통치 하에 있었기는 커녕 당나라에서 회홀이 매우 우월한 지위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회홀은 당나라의 속국이거나 당나라의 지배 통치를 받는 나라가 아니다. 다시말해서, 책봉은 당나라의 속국이거나 당나라의 지배 통치 제도가 아니다. 이렇게 회홀이 당나라의 서울 장안에서 난동을 부리자 당나라는 회홀을 보내고 있다. 계속해서 구당서 회홀전을 보면, [대력] 8년(773) 11월에 회흘 140명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데, 재물이 천여 대의 수레나 되었다. 회흘이 [자신들의] 공적을 믿고 건원 년간(758~759) 이후 여러 번 사신을 보내 말과 비단을 바꾸었고, 매년 와서 거래를 하는데 말 한 필에 비단 44필을 바꾸었고 거래되는 말이 수만 필에 이르렀다. 그 사자가 홍려시에 계속 머물면서 돌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회흘은 비단을 얻어도 만족하지 않았으며 우리도 산 말이 쓸모가 없어 조정에서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이때 [황제가] 특별히 조칙을 내려 후사해 보내 넓은 은혜를 보여주면서 또한 [그들로 하여금] 부끄러워하게 하고자 했다. 이달에 회흘이 사자 적심(赤心)을 시켜 말 1만 필을 이끌고 와 거래하기를 원했는데, (당)대종이 말 값이 조부(租賦)에서 나오니 백성들에게 가중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관리에게 수입을 따져 6천 필만 거래하게 했다. |
이렇게 되어 있는데 회홀은 쓸모없는 말을 팔면서 그 대가로 당에서 말 한필 당 비단 44필을 주었고 거래되는 말이 수만 필에 이르렀다니 당에서는 적어도 비단 100만 필을 주었다는 것이니 회홀의 횡포가 매우 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당 조정은 몹시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이는 회홀이 당나라에 대해 매우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 회홀을 당나라에서 책봉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봉이란 당나라의 종속국이나 지배 통치가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구당서를 계속보면 [대력] 10년(775) 9월 회흘이 대낮에 동시(東市)에서 사람을 죽이자 시장 사람들이 [그를] 잡아 만년현(萬年縣: 장안 동북)[의 옥사]에 잡아두었다. 그 수령 적심이 [이 소식을] 듣고 홍려시에서 말을 달려 [만년]현의 옥사로 들어가 죄인을 빼앗아 나가며 옥을 지키던 관리를 상하게 했다. |
이러한 모습 역시 회홀이 당나라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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