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25대 평원왕 본기- 3)

상 상 2012. 2. 4. 20:10

23 년 (AD 581) : 봄 2월 그믐에 별이 비오듯 떨어졌다.

[번역문]

23년(581) 봄 2월 그믐에 별이 비오듯 떨어졌다. 가을 7월에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쳤다.

겨울 10월에 백성들이 굶주렸으므로 왕은 [나라 안을] 두루 돌며 위무하고 구제하였다.

12월에 사신을 수(隋)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고조(高祖)가 왕에게 대장군 요동군공을 주었다.

 

24 년 (AD 582) : 봄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24년(582) 봄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1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25 년 (AD 583) : 봄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25년(583) 봄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2월에 명령을 내려 급하지 않은 일을 줄이게 하고, 사신을 군(郡)·읍(邑)으로 보내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였다.

여름 4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26 년 (AD 584) : 봄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26년(584) 봄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여름 4월에 수나라 문제(文帝)가 대흥전(大興殿)에서 우리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27 년 (AD 585) : 12월에 사신을 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27년(585) 겨울 12월에 사신을 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28 년 (AD 586) : 도읍을 장안성으로 옮겼다.

[번역문]

28년(586)에 도읍을 장안성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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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평원왕 때에는 중국 화북지방 나라들과의 외교관계가 빠르게 변화합니다.

먼저 고구려는 북제와 친선관계를 유지하다가(평원왕 15년, 573년까지),  북주와 외교관계를 맺고(평원왕 19년, 577년),

북주를 이은 수문제 양견이 수나라를 건국하니(평원왕 23년, 581년), 수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습니다.

 

2) 고구려가 서울을 장안성으로 옮깁니다.

장안성은 24대 양원왕 8년(552년)에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한번 고구려가 서울(수도)을 옮긴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졸본(시조 주몽때, 고구려 최초의 서울)

② 국내(2대 유리왕때)

③ 환도(10대 산상왕)

④ 평양(11대 동천왕)

⑤ 환도(16대 고국원왕)

⑥ 황성(평양 동쪽: 16대 고국원왕)

⑦ 평양(20대 장수왕)

⑧ 장안성(25대 평원왕)

 

3) 고구려는 수나라와 외교관계를 갖는 한편 진나라도 외교관계를 갖습니다.

이런 것은 고구려가 힘이 없으면 안되는 일이며 어느 나라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즉, 고구려는 자주적이며 강력한 힘이 있는 나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조공 이야기는 늘 그렇듯이 별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간 메꾸기식의 별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중국사서에서 그대로 베껴썼기 때문에 김부식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