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년 (AD 590) : 영양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영양왕(嬰陽王)<[영양(嬰陽)은] 또는 평양(平陽)이라고도 하였다.>은 이름이 원(元)<또는 대원(大元)이라고도 하였다.>이고
평원왕의 맏아들이다. 풍채가 뛰어났다.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여겼다.
평원왕이 재위 7년에 태자로 삼았고, 32년에 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다.
수나라 문제가 사신을 보내 왕을 상개부의동삼사(上開府儀同三司)로 삼고, 요동군공의 작위를 이어받게 하였으며, 의복 한 벌을
주었다.
2 년 (AD 591) :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사은하고
[번역문]
2년(591) 봄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표(表)를 올려 사은하고 왕을 봉해 주기를 청하니, 황제가 이것을 허락하였다.
3월에 [수나라 황제가] 고구려왕으로 책봉하고 수레와 의복을 주었다. 여름 5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사은하였다.
3 년 (AD 592) :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3년(592) 봄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8 년 (AD 597) : 5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8년(597) 여름 5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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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고구려의 임금 중에서‘영’자가 앞에 붙는 왕은 두 분인데 지금 여기에 나오는 영양왕(26대)과 다음 임금인 영류왕(27대)입니다
2) 영양왕이 왕위에 오르자 수 문제는 의례적인 축하사절을 보냅니다.
3) 고구려도 답례사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4) 영양왕 때에는 수나라와 본격적인 전쟁을 하는데 서로 사신을 보내 적정을 탐색합니다.
이때 사신을 주고 받는 것과 조공은 적정 탐색입니다.
그것은‘북사 열전 고구려전’을 보면
“항상 의심하여 [수-隋나라의] 사정을 비밀리 염탐하곤 하였소.”이렇게 씌여있고,
‘수서 동이열전 고구려전’을 보면
“왕은 오로지 불신감에 젖어 언제나 시의(猜疑-새암, 시샘하여 의심함)하여 사인(使人-사신)을 보낼 때마다 소식(消息)을 밀탐하여
가니, 순수한 신하의 도리가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소?”
이렇게 씌여 있으니 사신을 보내는 것이 적정 탐색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5) 오늘서부터 올리는 삼국사기 영양왕 본기는 수서 열전 고구려전의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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