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5.09.29 19:24:54
`선비`가 몽골고원에서 남하한 후 그곳을 차지한 `유연`은 `돌궐`에 멸망했다. 돌궐은 `흉노`의 후예로 알려진 튀르크족이 세운 나라다. 기원후 552년 영걸 부민카간이 나타나 부족을 통합하고, 유라시아대초원 동서와 남북에 걸쳐 1000만㎢를 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대제국이었지만, 동·서 돌궐로 분열되면서 당나라에 멸망했다.
그러나 끈질긴 독립투쟁 끝에 쿠틀룩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돌궐을 재건해 후돌궐 시대를 열었다. 그 후 빌게카간 시대에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나, 위구르·당 등의 협공을 받아 멸망했다. 동돌궐지역 유목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서돌궐지역의 유목민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셀주크 튀르크`를 건국했다. 계속 서진한 튀르크 일족은 비잔틴제국을 격파하고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룸셀주크`를 건국했다. 후에 이 지역에서 `오스만공국`을 건국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출발이다.
오늘날 터키인들은 아나톨리아 반도에 살고 있으나, 그곳 역사를 자기들 역사라 하지 않는다. 흉노가 자신들의 선조이고, 튀르크 이름으로 세운 최초 국가가 돌궐(괵튀르크)이며, 돌궐 멸망 후 서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그래서 터키 건국연도는 돌궐과 같은 552년이다.
돌궐역사도 한민족사와 끊을 수 없다. 돌궐 건국 초기에는 고구려의 서부국경에서 양국이 격돌하였으나, 수나라 등장과 동·서 돌궐 분열 이후 고구려는 수나라를 격파하고 돌궐과는 우호관계로 급진전한다. 강력한 당나라도 돌궐·고구려 동맹을 깨뜨리지 못했다. 그러나 돌궐이 분열된 틈을 타 멸망시킨 후, 홀로 남은 고구려까지 멸망시키고 만다. 그런데 후돌궐이 건국되어 다시 당과 전쟁에 돌입하는 시기에 고구려 땅에도 후고구려가 건국된다. 바로 `발해`다. 후돌궐시대의 퀼테긴 비문은 고구려를 `코리`란 이름으로 소개한다. 코리아란 이름은 고구려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
터키는 한국동란 발발 직후 참전 결정을 했다.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견했고, 또 전사했다. 터키군 출정식 당시 여단장은 "한국은 우리와 피를 나눈 혈맹국"이라 말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한국인을 형제라 생각했는데, 이는 그들의 역사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조선·만주·몽고·터키 언어는 동어계이며 네 민족은 같은 혈족…"이라 했다. 한민족 고대역사에서 음미해야 할 대목이다.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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