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原典) 분석- 6

상 상 2015. 6. 5. 16:34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원전(原典) 규명(糾明)- 6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의 내용 6송양과의 만남과 겨룸 그리고 송양의 항복

사 료

내 용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 땅이 말갈(靺鞨) 부락에 붙어 있어 침략과 도적질의 해를 당할 것을 염려해서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니, 말갈이 두려워 굴복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은 비류수 가운데로 채소잎이 떠 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사냥하며 찾아가서 비류국(沸流國)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松讓)이 나와 보고는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바다의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서로 만나니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주몽은]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송양이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서 왕노릇하였다. 땅이 좁아서 두 왕을 용납하기에 부족하다. 그대는 도읍한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나의 부하가 되는 것이 어떠한가?”왕은 그 말을 [듣고] 분하게 여겨, 그와 더불어 말다툼하고 또 서로 활을 쏘아 재능을 겨루었는데, 송양이 당해내지 못하였다.

 

2(서기전 36)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 오므로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四方聞之 來附者衆 其地連靺鞨部落 恐侵盜爲害 遂攘斥之 靺鞨畏服 不敢犯焉

王見沸流水中 有菜葉逐流下 知有人在上流者 因以獵往尋 至沸流國 其國王松讓出見曰

寡人僻在海隅 未嘗得見君子 今日邂逅相遇 不亦幸乎 然不識吾子自何而來

答曰 我是天帝子 來都於某所松讓曰 我累世爲王 地小不足容兩主 君立都日淺 爲我附庸可乎

王忿其言 因與之鬪辯 亦相射以校藝 松讓不能抗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來降 以其地爲多勿都 封松讓爲主[주석16] 麗語謂復舊土爲多勿 故以名焉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애달프다 비류왕이여 / 咄哉沸流王

어째서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 何奈不自揆

선인의 후예인 것만 굳이 자긍하고 / 苦矜仙人後

천제의 손자 존귀함을 알지 못하였나 / 未識帝孫貴

한갓 부용국으로 삼으려 하여 / 徒欲爲附庸

말하는 데 삼가거나 겁내지 않네 / 出語不愼葸

그림 사슴의 배꼽도 맞히지 못하고 / 未中畫鹿臍

옥가락지 깨는 것에 놀랐다 / 驚我倒玉指

 

비류왕 송양(松讓)이 나와 사냥하다가 왕의 용모가 비상함을 보고 이끌어 함께 앉아서, “바다 한쪽에 치우쳐 있어 일찍이 군자(君子)를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느 곳에서 왔는가?”하니, 왕이, “과인은 천제의 손자요 서국(西國)의 왕이다. 감히 묻노니 군왕은 누구의 후손인가?”하니, 송양이,“나는 선인(仙人)의 후손인데 여러 대 왕 노릇을 하였다. 지금 지방이 대단히 작아서 나누어 두 왕이 될 수 없고 그대는 나라를 만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부속국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였다. 왕이,“과인은 천제의 뒤를 이었지마는 지금 왕은 신()의 자손도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 칭호하니, 만일 내게 복종하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다.”하였다. 송양은 왕이 여러 번 천제의 손자라 자칭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의심을 품어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 “왕과 활쏘기를 원하노라.”하고, 그린 사슴을 1백 보 안에 놓고 쏘았는데 그 화살이 사슴 배꼽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힘에 겨워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玉指環]를 가져다가 1백 보 밖에 달아매고 쏘았는데

기왓장 부서지듯 깨지니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와서 고각이 변색한 것을 보고 / 來觀鼓角變

감히 내 기물이라 말하지 못하였다 / 不敢稱我器

 

왕이,“국가의 기업이 새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고각(鼓角)의 위의(威儀)가 없어서 비류(沸流)의 사자가 왕래함에 내가 왕의 예로 맞고 보내지 못하니 그 까닭으로 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하였다.

시종하는 신하 부분노(扶芬奴)가 앞에 나와,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의 북을 가져오겠습니다.”하였다. 왕이,“다른 나라의 감추어 둔 물건을 네가 어떻게 가져오려느냐?”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준 물건이니 왜 가져오지 못하겠습니까? 대왕이 부여(扶餘)에서 곤욕을 당할 때에 누가 대왕이 여기에 이르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지금 대왕이 만 번 죽음을 당할 위태한 땅에서 몸을 빼쳐 나와 요좌(遼左)에 이름을 날리니 이것은 천제가 명령하여 하는 것이라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하였다. 이에 부분노 등 세 사람이 비류에 가서 북을 가져오니 비류왕이 사자를 보내어 고하였다. 왕이 비류에서 와서 고각을 볼까 두려워하여 빛깔을 오래된 것처럼 검게 만들어 놓으니 송양(松讓)이 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집 기둥이 묵은 것을 와서 보고 / 來觀屋柱故

말 못하고 도리어 부끄러워했다 / 咋舌還自愧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를 따져 부용국(附庸國)을 삼고자 하니,

왕이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천 년 묵은 것같이 했다.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를 따지지 못하였다.

 

동명왕이 서쪽으로 순수할 때 / 東明西狩時

우연히 눈빛 고라니를 얻었다 큰 사슴을 고라니라 한다. / 偶獲雪色麂

해원 위에 거꾸로 달아매고 / 倒懸蟹原上

감히 스스로 저주하기를 / 敢自呪而謂

하늘이 비류에 비를 내려 / 天不雨沸流

그 도성과 변방을 표몰시키지 않으면 / 漂沒其都鄙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 我固不汝放

너는 내 분함을 풀어다오 / 汝可助我懫

사슴의 우는 소리 심히 슬퍼 / 鹿鳴聲甚哀

위로 천제의 귀에 사무쳤다 / 上徹天之耳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 霖雨注七日

주룩주룩 회수 사수를 넘쳐나듯 / 霈若傾淮泗

송양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 松讓甚憂懼

흐름을 따라 부질없이 갈대 밧줄을 가로 뻗쳤다 / 沿流謾橫葦

백성들이 다투어 와서 밧줄을 잡아당겨 / 士民競來攀

서로 쳐다보며 땀을 흘리었다 / 流汗相眙

동명왕이 곧 채찍을 들어 / 東明卽以鞭

물을 그으니 곧 멈추었다 / 畫水水停沸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 / 松讓擧國降

이 뒤로는 우리를 헐뜯지 못하였다 / 是後莫予訾

 

서쪽을 순행하다가 사슴 한 마리를 얻었는데 해원에 거꾸로 달아매고 저주하기를,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시키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이 곤란을 면하려거든 네가 하늘에 호소하라.”하였다. 그 사슴이 슬피 울어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니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송양의 도읍을 표몰시켰다, 왕이 갈대 밧줄로 흐르는 물을 횡단하고 오리 말을 타고 백성들은 모두 그 밧줄을 잡아당겼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을 긋자 물이 곧 줄어들었다.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한다.

 

咄哉沸流王何奈不自揆苦矜仙人後未識帝孫貴徒欲爲附庸出語不愼葸未中畫鹿臍驚我倒玉指沸流王松讓出獵見王容貌非常引而與坐曰僻在海隅未曾得見君子今日邂逅何其幸乎君是何人從何而至王曰寡人天帝之孫西國之王也敢問君王繼誰之後讓曰予是仙人之後累世爲王今地方至小不可分爲兩王君造國日淺爲我附庸可乎王曰寡人繼天之後今主非神之胄强號爲王若不歸我天必殛之松讓以王累稱天孫內自懷疑欲試其才乃曰願與王射矣以畫鹿置百步內射之其矢不入鹿臍猶如倒手王使人以玉指環懸於百步之外射之破如瓦解松讓大驚云云來觀鼓角變不敢稱我器王曰以國業新造未有鼓角威儀沸流使者往來我不能以王禮迎送所以輕我也從臣扶芬奴進曰臣爲大王取沸流鼓角王曰他國藏物汝何取乎對曰此天之與物何爲不取乎夫大王困於扶余誰謂大王能至於此今大王奮身於萬死之危揚名於遼左此天帝命而爲之何事不成於是扶芬奴等三人往沸流取鼓而來沸流王遣使告曰云云王恐來觀鼓角色暗如故松讓不敢爭而去來觀屋柱故咋舌還自愧松讓欲以立都先後爲附庸王造宮室以朽木爲柱故如千歲松讓來見竟不敢爭立都先後東明西狩時偶獲雪色麂大鹿曰麂 倒懸蟹原上敢自呪而謂天不雨沸流漂沒其都鄙我固不汝放汝可助我懫鹿鳴聲甚哀上徹天之耳霖雨注七日霈若傾淮泗松讓甚憂懼沿流謾橫葦士民競來攀流汗相眙東明卽以鞭畫水水停沸松讓擧國降是後莫予訾西狩獲白鹿倒懸於蟹原呪曰天若不雨而漂沒沸流王都者我固不汝放矣欲免斯難汝能訴天其鹿哀鳴聲徹于天霖雨七日漂沒松讓都王以葦索橫流乘鴨馬百姓皆執其索朱蒙以鞭畫水水卽減六月松讓擧國來降云云

단군고기

(檀君古記)

비류왕(沸流王) 송양(松讓)이 사냥하러 나왔다가, 왕의 얼굴이 비상함을 보고, 인도하여 함께 앉아서 말하기를, “궁벽한 바다의 모퉁이에 있어서 일찍이 그대 같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어찌 다행하지 아니하리오.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과인은 천제(天帝)의 손자로서 서국(西國)의 왕입니다. 감히 묻노니, 군왕은 누구의 뒤를 이었습니까.”하매, 송양이 대답하기를, “나는 본디 선인(仙人)의 자손이라, 여러 대로 왕이 되었노라. 이제 땅이 작으니, 나누어서 두 임금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대는 나라를 세운 지 며칠 안 되니, 나에게 부속(附屬)함이 마땅하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하느님의 뒤를 이었고, 지금 왕은 신()의 맏자손이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 하니, 만일 나에게 귀부(歸附)하지 아니하면, 하느님이 반드시 죽일 것이오.” 하였다. 송양이 왕으로서 늘 하느님의 자손이라 칭하였는데, 속으로 의심을 품고서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왕과 더불어 활쏘기를 원합니다.”하고, 사슴을 그리어 1백 보() 안에 놓고 쏘니, 그 화살이 들어가지도 아니하였는데, 사슴의 배꼽이 손을 거꾸로 놓은 것같이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玉指環]1백 보() 밖에 달아 놓게 하고 쏘매, 와해(瓦解)되듯이 부수어지니,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왕이 말하기를, “국업(國業)을 새로 세웠기 때문에 고각(鼓角)이 위의(威儀)가 없어서, 비류(沸流)의 사자(使者)가 왕래할 때에, 내가 왕의 예()로써 영송(迎送)할 수 없으므로, 나를 가벼이 여기게 된다.” 하니, 종신(從臣) 부분노(扶芬奴)가 나아와 아뢰기를,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의 고각을 가져오겠나이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남의 나라의 장물(藏物)을 네가 어찌 가져온다 하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이는 하늘이 주는 물건이온데, 어찌 가져오지 못하오리까. 무릇 대왕이 부여(扶餘)에서 고생하실때, 누가 대왕께서 능히 이곳에 이를 것이라 하였겠습니까. 이제 대왕께서 만사(萬死)에서 분신(奮身)하시어 요좌(遼左)에 양명(揚名)하셨으니, 이는 천제(天帝)께서 명하여 하셨음이온데, 무슨 일인들 이루어지지 아니하오리까.” 하고, 부분노 3인이 비류에 가서 고각(鼓角)을 가지고 왔다. 비류왕이 사신을 보내어 고하매, 왕이 와서 볼까 염려하여, 고각의 색()을 어둡게 하여 헌 것같이 해 놓으니, 송양이 와 보고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로써 부속(附屬)을 삼으려고 하매, 왕이 궁실(宮室)을 짓기를, 썩은 재목으로 기둥을 해서 천년이나 묵은 것같이 하니,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로써 다투지 못하였다. 왕이 서쪽으로 사냥가서 흰 사슴을 잡아 해원(蟹原)에 거꾸로 매달고 저주하기를,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서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漂沒)시키지 아니하면, 내가 결코 너를 놓아주지 아니하리라. 이 난경(難境)을 면하려거든 네가 능히 하늘에 호소하라.” 하니, 그 사슴이 슬피 울매, 그 소리가 하늘에 닿아서, 장맛비가 7일 동안 내리어 송양의 도읍을 표몰시켰다. 왕이 갈대새끼[葦索]를 횡류(橫流)시키고 압마(鴨馬)를 타니, 백성들이 모두 그 새끼를 잡은지라, 왕이 채찍으로 물을 그으니, 물이 곧 줄어들매, 송양이 온 나라를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沸流王松讓出獵, 見王容貌非常, 引而與坐曰: “僻在海隅, 未曾得見君子, 今日邂逅, 何其幸乎! 君是何人, 從何而至?” 王曰: “寡人, 天帝之孫, 西國之王也敢問君王繼誰之後?” 讓曰: “予是仙人之後, 累世爲王今地方至小, 不可分爲兩君造國日淺, 爲我附庸可乎?” 王曰: “寡人繼天之後, 今王非神之冑, 强號爲王, 若不歸我, 天必殛之松讓以王屢稱天孫, 內自懷疑, 欲試其才, 乃曰: “願與王射矣以畫鹿, 置百步內射之, 其矢不入鹿臍, 猶如倒手王使人以玉指環懸於百步之外, 射之, 破如瓦解, 松讓大驚王曰: “以國業新造, 未有鼓角威儀沸流使者往來, 我不能以王禮迎送, 所以輕我也從臣扶芬奴進曰: “臣爲大王, 取沸流鼓角王曰: “他國藏物, 汝何取乎!” 對曰: “此天之與物, 何爲不取乎! 夫大王困於扶餘, 誰謂大王能至於此! 今大王奮身於萬死, 揚名於遼左, 此天帝命而爲之, 何事不成!” 於是, 扶芬奴三人往沸流, 取鼓而來沸流王遣使告之, 王恐來觀, 鼓角色暗如故, 松讓不敢爭而去松讓欲以立都先後爲附庸, 王造宮室, 以朽木爲柱, 故如千歲松讓來見, 竟不敢爭立都先後王西狩, 獲白鹿, 倒懸於蟹原, 呪曰: “天若不雨, 而漂沒沸流王都者, 我固不汝放矣欲免斯難, 汝能訴天其鹿哀鳴, 聲徹于天, 霖雨七日, 漂沒松讓都王以葦索橫流, 乘鴨馬, 百姓皆執其索, 王以鞭畫水, 水卽減, 松讓擧國來降

위서

고구려전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음.

북사

고구려전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음.

 

 

내용 6송양과의 만남과 겨룸 그리고 송양의 항복의 비교, 분석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와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삼국사기와 동국이상국집의 비교.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 땅이 말갈(靺鞨) 부락에 붙어 있어 침략과 도적질의 해를 당할 것을 염려해서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니, 말갈이 두려워 굴복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은 비류수 가운데로 채소잎이 떠 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사냥하며 찾아가서 비류국(沸流國)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松讓)이 나와 보고는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바다의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서로 만나니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주몽은]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송양이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서 왕노릇하였다. 땅이 좁아서 두 왕을 용납하기에 부족하다. 그대는 도읍한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나의 부하가 되는 것이 어떠한가?”

 

왕은 그 말을 [듣고] 분하게 여겨, 그와 더불어 말다툼하고 또 서로 활을 쏘아 재능을 겨루었는데, 송양이 당해내지 못하였다.

 

2(서기전 36)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 오므로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애달프다 비류왕이여 / 咄哉沸流王

어째서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 何奈不自揆

선인의 후예인 것만 굳이 자긍하고 / 苦矜仙人後

천제의 손자 존귀함을 알지 못하였나 / 未識帝孫貴

한갓 부용국으로 삼으려 하여 / 徒欲爲附庸

말하는 데 삼가거나 겁내지 않네 / 出語不愼葸

그림 사슴의 배꼽도 맞히지 못하고 / 未中畫鹿臍

옥가락지 깨는 것에 놀랐다 / 驚我倒玉指

 

비류왕 송양(松讓)이 나와 사냥하다가 왕의 용모가 비상함을 보고 이끌어 함께 앉아서, “바다 한쪽에 치우쳐 있어 일찍이 군자(君子)를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느 곳에서 왔는가?”하니, 왕이, “과인은 천제의 손자요 서국(西國)의 왕이다. 감히 묻노니 군왕은 누구의 후손인가?”하니, 송양이,“나는 선인(仙人)의 후손인데 여러 대 왕 노릇을 하였다. 지금 지방이 대단히 작아서 나누어 두 왕이 될 수 없고 그대는 나라를 만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부속국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였다. 왕이,“과인은 천제의 뒤를 이었지마는 지금 왕은 신()의 자손도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 칭호하니, 만일 내게 복종하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다.”하였다. 송양은 왕이 여러 번 천제의 손자라 자칭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의심을 품어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

왕과 활쏘기를 원하노라.”하고, 그린 사슴을 1백 보 안에 놓고 쏘았는데

그 화살이 사슴 배꼽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힘에 겨워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玉指環]를 가져다가 1백 보 밖에 달아매고 쏘았는데

기왓장 부서지듯 깨지니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와서 고각이 변색한 것을 보고 / 來觀鼓角變

감히 내 기물이라 말하지 못하였다 / 不敢稱我器

 

왕이,“국가의 기업이 새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고각(鼓角)의 위의(威儀)가 없어서 비류(沸流)의 사자가 왕래함에 내가 왕의 예로 맞고 보내지 못하니

그 까닭으로 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하였다.

시종하는 신하 부분노(扶芬奴)가 앞에 나와,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의 북을 가져오겠습니다.”하였다. 왕이,“다른 나라의 감추어 둔 물건을 네가 어떻게 가져오려느냐?”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준 물건이니 왜 가져오지 못하겠습니까? 대왕이 부여(扶餘)에서 곤욕을 당할 때에 누가 대왕이 여기에 이르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지금 대왕이 만 번 죽음을 당할 위태한 땅에서 몸을 빼쳐 나와 요좌(遼左)에 이름을 날리니 이것은 천제가 명령하여 하는 것이라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하였다.

이에 부분노 등 세 사람이 비류에 가서 북을 가져오니 비류왕이 사자를 보내어 고하였다. 왕이 비류에서 와서 고각을 볼까 두려워하여 빛깔을 오래된 것처럼 검게 만들어 놓으니 송양(松讓)이 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집 기둥이 묵은 것을 와서 보고 / 來觀屋柱故

말 못하고 도리어 부끄러워했다 / 咋舌還自愧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를 따져 부용국(附庸國)을 삼고자 하니, 왕이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천 년 묵은 것같이 했다.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를 따지지 못하였다.

 

동명왕이 서쪽으로 순수할 때 / 東明西狩時

우연히 눈빛 고라니를 얻었다 큰 사슴을 고라니라 한다. / 偶獲雪色麂

해원 위에 거꾸로 달아매고 / 倒懸蟹原上

감히 스스로 저주하기를 / 敢自呪而謂

하늘이 비류에 비를 내려 / 天不雨沸流

그 도성과 변방을 표몰시키지 않으면 / 漂沒其都鄙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 我固不汝放

너는 내 분함을 풀어다오 / 汝可助我懫

사슴의 우는 소리 심히 슬퍼 / 鹿鳴聲甚哀

위로 천제의 귀에 사무쳤다 / 上徹天之耳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 霖雨注七日

주룩주룩 회수 사수를 넘쳐나듯 / 霈若傾淮泗

송양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 松讓甚憂懼

흐름을 따라 부질없이 갈대 밧줄을 가로 뻗쳤다 / 沿流謾橫葦

백성들이 다투어 와서 밧줄을 잡아당겨 / 士民競來攀

서로 쳐다보며 땀을 흘리었다 / 流汗相眙

동명왕이 곧 채찍을 들어 / 東明卽以鞭

물을 그으니 곧 멈추었다 / 畫水水停沸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 / 松讓擧國降

이 뒤로는 우리를 헐뜯지 못하였다 / 是後莫予訾

 

서쪽을 순행하다가 사슴 한 마리를 얻었는데 해원에 거꾸로 달아매고 저주하기를,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시키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이 곤란을 면하려거든 네가 하늘에 호소하라.”하였다. 그 사슴이 슬피 울어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니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송양의 도읍을 표몰시켰다, 송양왕이 갈대 밧줄로 흐르는 물을 횡단하고 오리 말을 타고 백성들은 모두 그 밧줄을 잡아당겼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을 긋자 물이 곧 줄어들었다.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한다.

 

 

1) 위에서 보다시피 삼국사기와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직접 비교하기는 쉽지않다.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에는 시와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가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제거하고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와 삼국사기를 비교하면

삼국사기는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를 간추린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삼국사기는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 중에서 신화적인 것은 대폭 생략하고

간추렸음을 알 수 있다.

 

, 삼국사기는 구삼국사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간단하게 썼는데(편집),

신화적 내용은 해모수 이야기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삭제하였다.

 

여기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가 단군고기를 비교해 보자

 

2.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과 단군고기의 비교.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구삼국사-舊三國史, 동명왕 본기)

단군고기(檀君古記)

애달프다 비류왕이여 / 咄哉沸流王

어째서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 何奈不自揆

선인의 후예인 것만 굳이 자긍하고 / 苦矜仙人後

천제의 손자 존귀함을 알지 못하였나 / 未識帝孫貴

한갓 부용국으로 삼으려 하여 / 徒欲爲附庸

말하는 데 삼가거나 겁내지 않네 / 出語不愼葸

그림 사슴의 배꼽도 맞히지 못하고 / 未中畫鹿臍

옥가락지 깨는 것에 놀랐다 / 驚我倒玉指

 

비류왕 송양(松讓)이 나와 사냥하다가 왕의 용모가 비상함을 보고 이끌어 함께 앉아서, “바다 한쪽에 치우쳐 있어 일찍이 군자(君子)를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느 곳에서 왔는가?”하니, 왕이, “과인은 천제의 손자요 서국(西國)의 왕이다. 감히 묻노니 군왕은 누구의 후손인가?”하니, 송양이,“나는 선인(仙人)의 후손인데 여러 대 왕 노릇을 하였다. 지금 지방이 대단히 작아서 나누어 두 왕이 될 수 없고 그대는 나라를 만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부속국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였다. 왕이,“과인은 천제의 뒤를 이었지마는 지금 왕은 신()의 자손도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 칭호하니, 만일 내게 복종하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다.”하였다.

 

 

 

 

 

 

 

송양은 왕이 여러 번 천제의 손자라 자칭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의심을 품어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왕과 활쏘기를 원하노라.”하고, 그린 사슴을 1백 보 안에 놓고 쏘았는데 그 화살이 사슴 배꼽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힘에 겨워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玉指環]를 가져다가 1백 보 밖에 달아매고 쏘았는데 기왓장 부서지듯 깨지니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와서 고각이 변색한 것을 보고 / 來觀鼓角變

감히 내 기물이라 말하지 못하였다 / 不敢稱我器

 

왕이,“국가의 기업이 새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고각(鼓角)의 위의(威儀)가 없어서 비류(沸流)의 사자가 왕래함에 내가 왕의 예로 맞고 보내지 못하니

그 까닭으로 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하였다.

 

 

시종하는 신하 부분노(扶芬奴)가 앞에 나와,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의 북을 가져오겠습니다.”하였다. 왕이,“다른 나라의 감추어 둔 물건을 네가 어떻게 가져오려느냐?”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준 물건이니 왜 가져오지 못하겠습니까? 대왕이 부여(扶餘)에서 곤욕을 당할 때에 누가 대왕이 여기에 이르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지금 대왕이 만 번 죽음을 당할 위태한 땅에서 몸을 빼쳐 나와 요좌(遼左)에 이름을 날리니 이것은 천제가 명령하여 하는 것이라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하였다.

 

 

이에 부분노 등 세 사람이 비류에 가서 북을 가져오니 비류왕이 사자를 보내어 고하였다. 왕이 비류에서 와서 고각을 볼까 두려워하여 빛깔을 오래된 것처럼 검게 만들어 놓으니 송양(松讓)이 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집 기둥이 묵은 것을 와서 보고 / 來觀屋柱故

말 못하고 도리어 부끄러워했다 / 咋舌還自愧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를 따져 부용국(附庸國)을 삼고자 하니, 왕이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천 년 묵은 것같이 했다.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를 따지지 못하였다.

 

동명왕이 서쪽으로 순수할 때 / 東明西狩時

우연히 눈빛 고라니를 얻었다 큰 사슴을 고라니라 한다. / 偶獲雪色麂

해원 위에 거꾸로 달아매고 / 倒懸蟹原上

감히 스스로 저주하기를 / 敢自呪而謂

하늘이 비류에 비를 내려 / 天不雨沸流

그 도성과 변방을 표몰시키지 않으면 / 漂沒其都鄙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 我固不汝放

너는 내 분함을 풀어다오 / 汝可助我懫

사슴의 우는 소리 심히 슬퍼 / 鹿鳴聲甚哀

위로 천제의 귀에 사무쳤다 / 上徹天之耳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 霖雨注七日

주룩주룩 회수 사수를 넘쳐나듯 / 霈若傾淮泗

송양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 松讓甚憂懼

흐름을 따라 부질없이 갈대 밧줄을 가로 뻗쳤다 / 沿流謾橫葦

백성들이 다투어 와서 밧줄을 잡아당겨 / 士民競來攀

서로 쳐다보며 땀을 흘리었다 / 流汗相眙

동명왕이 곧 채찍을 들어 / 東明卽以鞭

물을 그으니 곧 멈추었다 / 畫水水停沸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 / 松讓擧國降

이 뒤로는 우리를 헐뜯지 못하였다 / 是後莫予訾

 

서쪽을 순행하다가 사슴 한 마리를 얻었는데 해원에 거꾸로 달아매고 저주하기를,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시키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이 곤란을 면하려거든 네가 하늘에 호소하라.”하였다. 그 사슴이 슬피 울어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니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송양의 도읍을 표몰시켰다, 송양왕이 갈대 밧줄로 흐르는 물을 횡단하고 오리 말을 타고 백성들은 모두 그 밧줄을 잡아당겼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을 긋자 물이 곧 줄어들었다.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한다.

 

 

 

 

 

 

 

 

 

비류왕(沸流王) 송양(松讓)이 사냥하러 나왔다가, 왕의 얼굴이 비상함을 보고, 인도하여 함께 앉아서 말하기를, “궁벽한 바다의 모퉁이에 있어서 일찍이 그대 같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어찌 다행하지 아니하리오.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과인은 천제(天帝)의 손자로서 서국(西國)의 왕입니다. 감히 묻노니, 군왕은 누구의 뒤를 이었습니까.”하매, 송양이 대답하기를, “나는 본디 선인(仙人)의 자손이라, 여러 대로 왕이 되었노라. 이제 땅이 작으니, 나누어서 두 임금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대는 나라를 세운 지 며칠 안 되니, 나에게 부속(附屬)함이 마땅하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하느님의 뒤를 이었고, 지금 왕은 신()의 맏자손이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 하니, 만일 나에게 귀부(歸附)하지 아니하면, 하느님이 반드시 죽일 것이오.” 하였다.

 

송양이 왕으로서 늘 하느님의 자손이라 칭하였는데, 속으로 의심을 품고서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왕과 더불어 활쏘기를 원합니다.”하고, 사슴을 그리어 1백 보() 안에 놓고 쏘니, 그 화살이 들어가지도 아니하였는데, 사슴의 배꼽이 손을 거꾸로 놓은 것같이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玉指環]1백 보() 밖에 달아 놓게 하고 쏘매, 와해(瓦解)되듯이 부수어지니,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왕이 말하기를, “국업(國業)을 새로 세웠기 때문에 고각(鼓角)이 위의(威儀)가 없어서, 비류(沸流)의 사자(使者)가 왕래할 때에, 내가 왕의 예()로써 영송(迎送)할 수 없으므로, 나를 가벼이 여기게 된다.” 하니,

 

종신(從臣) 부분노(扶芬奴)가 나아와 아뢰기를,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의 고각을 가져오겠나이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남의 나라의 장물(藏物)을 네가 어찌 가져온다 하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이는 하늘이 주는 물건이온데, 어찌 가져오지 못하오리까. 무릇 대왕이 부여(扶餘)에서 고생하실때, 누가 대왕께서 능히 이곳에 이를 것이라 하였겠습니까. 이제 대왕께서 만사(萬死)에서 분신(奮身)하시어 요좌(遼左)에 양명(揚名)하셨으니, 이는 천제(天帝)께서 명하여 하셨음이온데, 무슨 일인들 이루어지지 아니하오리까.” 하고,

 

부분노 3인이 비류에 가서 고각(鼓角)을 가지고 왔다. 비류왕이 사신을 보내어 고하매, 왕이 와서 볼까 염려하여, 고각의 색()을 어둡게 하여 헌 것같이 해 놓으니, 송양이 와 보고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로써 부속(附屬)을 삼으려고 하매, 왕이 궁실(宮室)을 짓기를, 썩은 재목으로 기둥을 해서 천년이나 묵은 것같이 하니,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로써 다투지 못하였다.

 

 

 

 

 

 

 

 

 

 

 

 

 

 

 

 

 

 

 

 

 

 

왕이 서쪽으로 사냥가서 흰 사슴을 잡아 해원(蟹原)에 거꾸로 매달고 저주하기를,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서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漂沒)시키지 아니하면, 내가 결코 너를 놓아주지 아니하리라. 이 난경(難境)을 면하려거든 네가 능히 하늘에 호소하라.” 하니, 그 사슴이 슬피 울매, 그 소리가 하늘에 닿아서, 장맛비가 7일 동안 내리어 송양의 도읍을 표몰시켰다. 왕이 갈대새끼[葦索]를 횡류(橫流)시키고 압마(鴨馬)를 타니, 백성들이 모두 그 새끼를 잡은지라, 왕이 채찍으로 물을 그으니, 물이 곧 줄어들매, 송양이 온 나라를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1) 위에서 보다시피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에서 시를 제거하고 단군고기를 비교해 보면

완전히 똑같음을 알 수 있다.(번역한 사람이 달라 번역문만 다름)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복잡해 보이는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대신

단군고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삼국사기와 동명왕편을 비교하는 대신, 삼국사기와 단군고기를 비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가 삼국사기에 어떻게 인용되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물론 더욱 확실하게 알아보려면

동국이상국집 동명왕과 단군고기를 함께 보면서 삼국사기와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가 삼국사기에 어떻게 인용되었는지를 아주 확실하게 알아 볼수 있다

2)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와 단군고기가 같다는 점은 동명왕의 기록이 구삼국사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에게 전해진 다른 여러 가지 사료(고기:古記)에도

있을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3) 여기에 나오는 내용 중 유의해서 보아야 할 대목

여기서 주몽과 송양이 다투는 이유는 주몽이 최종적으로 정착한 곳이 비류국이기 때문이다.

위 사료에도 나오듯이 주몽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이 비류수인데 그곳은 바로 비류국이며

그곳에서 송양은 여러 대에 걸쳐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주몽이 새로 와서 왕이라고 하니 송양이 다툼을 벌린 것이다.

또하나, 주몽이 비류국을 빼앗고 그 땅이 옛 땅을 회복하였다는 뜻의 다물도(多勿都)

삼았다는데 이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3. 삼국사기와 단군고기의 비교.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단군고기(檀君古記)

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 땅이 말갈(靺鞨) 부락에 붙어 있어 침략과 도적질의 해를 당할 것을 염려해서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니, 말갈이 두려워 굴복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은 비류수 가운데로 채소잎이 떠 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사냥하며 찾아가서 비류국(沸流國)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松讓)이 나와 보고는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바다의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서로 만나니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주몽은]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송양이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서 왕노릇하였다. 땅이 좁아서 두 왕을 용납하기에 부족하다. 그대는 도읍한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나의 부하가 되는 것이 어떠한가?”

 

 

 

 

 

 

 

 

 

 

 

 

 

 

 

 

 

 

 

 

 

왕은 그 말을 [듣고] 분하게 여겨, 그와 더불어 말다툼하고 또 서로 활을 쏘아 재능을 겨루었는데, 송양이 당해내지 못하였다.

 

 

 

 

 

 

 

 

 

 

 

 

 

 

 

 

 

 

 

 

 

 

 

 

 

 

 

 

 

 

 

 

 

 

 

 

 

 

 

 

 

 

 

 

 

 

 

 

2(서기전 36)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 오므로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비류왕(沸流王) 송양(松讓)이 사냥하러 나왔다가, 왕의 얼굴이 비상함을 보고, 인도하여 함께 앉아서 말하기를, “궁벽한 바다의 모퉁이에 있어서 일찍이 그대 같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어찌 다행하지 아니하리오.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과인은 천제(天帝)의 손자로서 서국(西國)의 왕입니다. 감히 묻노니, 군왕은 누구의 뒤를 이었습니까.”하매, 송양이 대답하기를, “나는 본디 선인(仙人)의 자손이라, 여러 대로 왕이 되었노라. 이제 땅이 작으니, 나누어서 두 임금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대는 나라를 세운 지 며칠 안 되니, 나에게 부속(附屬)함이 마땅하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하느님의 뒤를 이었고, 지금 왕은 신()의 맏자손이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 하니, 만일 나에게 귀부(歸附)하지 아니하면, 하느님이 반드시 죽일 것이오.” 하였다.

 

송양이 왕으로서 늘 하느님의 자손이라 칭하였는데, 속으로 의심을 품고서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왕과 더불어 활쏘기를 원합니다.”하고, 사슴을 그리어 1백 보() 안에 놓고 쏘니, 그 화살이 들어가지도 아니하였는데, 사슴의 배꼽이 손을 거꾸로 놓은 것같이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玉指環]1백 보() 밖에 달아 놓게 하고 쏘매, 와해(瓦解)되듯이 부수어지니,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왕이 말하기를, “국업(國業)을 새로 세웠기 때문에 고각(鼓角)이 위의(威儀)가 없어서, 비류(沸流)의 사자(使者)가 왕래할 때에, 내가 왕의 예()로써 영송(迎送)할 수 없으므로, 나를 가벼이 여기게 된다.” 하니,

 

종신(從臣) 부분노(扶芬奴)가 나아와 아뢰기를,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의 고각을 가져오겠나이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남의 나라의 장물(藏物)을 네가 어찌 가져온다 하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이는 하늘이 주는 물건이온데, 어찌 가져오지 못하오리까. 무릇 대왕이 부여(扶餘)에서 고생하실때, 누가 대왕께서 능히 이곳에 이를 것이라 하였겠습니까. 이제 대왕께서 만사(萬死)에서 분신(奮身)하시어 요좌(遼左)에 양명(揚名)하셨으니, 이는 천제(天帝)께서 명하여 하셨음이온데, 무슨 일인들 이루어지지 아니하오리까.” 하고,

 

부분노 3인이 비류에 가서 고각(鼓角)을 가지고 왔다. 비류왕이 사신을 보내어 고하매, 왕이 와서 볼까 염려하여, 고각의 색()을 어둡게 하여 헌 것같이 해 놓으니, 송양이 와 보고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로써 부속(附屬)을 삼으려고 하매, 왕이 궁실(宮室)을 짓기를, 썩은 재목으로 기둥을 해서 천년이나 묵은 것같이 하니,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로써 다투지 못하였다.

 

왕이 서쪽으로 사냥가서 흰 사슴을 잡아 해원(蟹原)에 거꾸로 매달고 저주하기를,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서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漂沒)시키지 아니하면, 내가 결코 너를 놓아주지 아니하리라. 이 난경(難境)을 면하려거든 네가 능히 하늘에 호소하라.” 하니, 그 사슴이 슬피 울매, 그 소리가 하늘에 닿아서, 장맛비가 7일 동안 내리어 송양의 도읍을 표몰시켰다. 왕이 갈대새끼[葦索]를 횡류(橫流)시키고 압마(鴨馬)를 타니, 백성들이 모두 그 새끼를 잡은지라, 왕이 채찍으로 물을 그으니, 물이 곧 줄어들매,

 

 

 

 

송양이 온 나라를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1) 위의 비교표를 보면,

삼국사기가 단군고기(구삼국사 동명왕 본기)를 어떻게 인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더 확실하게 알려면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과 위에 있는 단군고기를 함께 보면서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와 비교해야 한다.

 

2) 위에서 보다시피

이 부분의 삼국사기는 단군고기(구삼국사 동명왕 본기)를 편집한 것이다.

, 삼국사기는 단군고기(구삼국사 동명왕 본기) 중에서 신화적인 내용은 삭제하고

간단하게 간추려서 쓴 것이다.

 

여태까지 삼국사기가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 중에서 신화적인 이야기라고 하여서

구삼국사 동명왕 본기의 내용을 거의 말살하다시피한 예가

첫째, 해모수 등에 관한 기록이고(내용 2. 금와왕과 유화의 만남에서 나옴).

둘째, 여기 나오는 주몽과 송양이 다투는 이야기이다.

 

3) 나머지, 이 부분의 삼국사기에서 처음에 나오는 말갈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와

맨 끝에 나오는 다물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고기(古記)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