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16대 고국원왕- 1

상 상 2011. 12. 28. 19:38

0 년 (AD 331) : 고국원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고국원왕(故國原王)<또는 국강상왕(國罡上王)이라고도 하였다.>의 이름은 사유(斯由)<혹은 쇠(釗)라고도 썼다.>이다.

미천왕이 15년에 태자로 삼았고, 32년 봄에 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2 년 (AD 332) : 졸본으로 가서 시조묘에 제사지내고,

[번역문]

2년(332) 봄 2월에 왕은 졸본으로 가서 시조묘에 제사지내고,

백성들 중 노인, 병자들을 두루 위문하고 먹을 것을 주었다.

 

3월에 [왕은] 졸본으로부터 돌아왔다.

 

4 년 (AD 334) : 가을 8월에 평양성을 증축하였다

[번역문]

4년(334) 가을 8월에 평양성을 증축하였다. 겨울 12월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

 

5 년 (AD 335) : 봄 정월에 나라 북쪽에 신성을 쌓았다.

[번역문]

5년(335) 봄 정월에 나라 북쪽에 신성을 쌓았다.

가을 7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해쳤다.

 

6 년 (AD 336) : 봄 3월에 큰 별이 서북쪽으로 흘러갔다.

[번역문]

6년(336) 봄 3월에 큰 별이 서북쪽으로 흘러갔다.

진(晉)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9 년 (AD 339) : 연나라 왕 모용황이 쳐들어 와서

[번역문]

9년(339)에 연나라 왕 [모용]황(皝)이 쳐들어 와서 그 군사들이 신성에까지 미치게 되자, 왕이 맹약을 요구하니 그제야 돌아갔다.

 

10 년 (AD 340) : 세자를 연나라에 보내 조회하였다.

[번역문]

10년(340)에 왕은 세자를 연나라 왕 [모용]황에게 보내 조회(朝會)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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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고국원왕은 ‘고국’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고구려 임금 중애서 두 번째 임금입니다.

 

첫 번째는 고국천왕( 9대 왕, 이름 남무)이었고, 고국원왕이 두 번째로 16대 왕이 됩니다.

세 번째 ‘고국’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임금은 18대 고국양왕입니다.

 

2) 고국원왕 2년(332년) : 졸본으로 가서 시조묘에 제사지낸 것은 몇 번 있었던 일입니다.

졸본은 고구려의 최초 서울이고 시조 동명왕의 묘가 있는 곳이어서 고구려의 왕들이 왕위에 오르면 의례적으로 찾아가 제를 올리는 것

같습니다.

 

3) 고국원왕 4년(334년) 가을 8월에 평양성을 증축합니다.

그 당시 고구려의 서울, 평양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하여 평양성을 증축하고 있습니다.

 

4) 고국원왕 9년 연나라(역사에서는 전연이라고 부름) 모용황이 쳐들와 맹약을 요구하니 모용황이 돌아갑니다.

(이 기록은 자치통감의 기록을 옮겨 쓴 것입니다. 자치통감 번역본을 보면 ‘ 모용황이 고구려를 쳐서 신성에 이르니

고구려왕 고소((高釗: 고국원왕)가 동맹을 맺자고 빌어서 마침내 돌아왔다.’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이어서 주목할 기록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또 그의 아들 모용낙과 모용패에게 우문씨의 별부를 치게 하였다. 모용패는 나이 13세였는데 용감하기가 3군에서 으뜸이었다.’

 

본인은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이 15살때에 부여 군사를 학반령에서 섬멸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보고 의심스러워 하였으나,

‘모용패는 나이 13세였는데 용감하기가 3군에서 으뜸이었다.’는 기록을 보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5) 선비 모용부와 고구려는 미천왕 때(15대 왕) 최비가 고구려, 선비 단씨, 선비 우문씨를 꾀어 모용부(모용외)를 공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실패로 끝난 뒤에, 고구려는 모용부를 치고 모용부는 고구려를 공격하였습니다.

그 중 모용한과 모용인이 쳐들어 왔을 때 미천왕이 맹약을 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쳐들어온 모용황은 미천왕 때 쳐들어왔던 모용외의 아들로 전연을 세운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고구려와 모용부 사이에 맹약(조약)을 맺습니다.

 

6) 고국원왕 기록은 3회에 걸쳐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