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4.10.30 17:16:05| 최종수정2014.10.30 19:08:30
진한 조문國 유물 추정
조문국은 기원을 전후해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학미리 일대를 중심으로 성립했던 진한 소국 중 하나다. 조문국은 영남 일원에서 소백산맥의 관문인 계립령과 죽령으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대 군사 요충지였다.
마찬가지로 진한의 작은 정치 체제에 불과했던 경주의 사로국은 이곳을 장악해 소백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진출하고 북방 유민과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교두보를 확보해 신라로 발전하는 일대 전기를 마련한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는 "벌휴이사금 2년(185년)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좌우 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정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간 조문국이 2세기에 신라 영역에 포함됐다고 인식돼왔지만 그 이후에도 300년 이상 신라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상당한 독자적 국가로서 지위를 유지했음을 입증하는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돼 주목된다.
경북 의성군의 의뢰로 조문국 사적지인 금성면 대리리 금성산 고분군을 발굴한 매장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성림문화재연구원은 5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무덤에서 금동관모를 비롯한 1000여 점의 유물을 수습했다고 30일 밝혔다.
시신을 묻는 공간인 주곽과 부장품 창고인 부곽으로 구성된 봉토분 4기에서 이 금동관모(모자의 일종)를 비롯해 금동관식(관장식), 은제관식, 은제과대(허리띠), 굵은 고리 귀고리인 태환이식과 가는 고리 귀고리인 세환이식, 유리로 만든 목걸이, 은으로 만든 삼각형 고리 큰칼인 규두대도, 둥근 손잡이 고리 안에 이파리 세 개를 형상화한 삼엽문 환두대도, 금동제 행엽(은행잎 모양의 말 장식), 금동제 안교(안장) 등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금동관모는 경주를 제외한 신라권역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다. 관모 윗부분 봉 모양의 장식은 발굴한 전례가 없는 새로운 형식이다. 특히 이 같은 금동관모와 관식, 환두대도 등 최상위 신분을 상징하는 위세품이 특정 지역에서 한꺼번에 출토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의성 지역이 신라 중앙과의 관계에서 독자적 정치 체제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대형 봉토분에서 순장자를 묻은 공간도 함께 발견됐다. 이들 순장자 무덤에서도 고급 유물이 다수 출토돼 무덤 주인공은 상당한 세력을 확보한 사람이었음을 뒷받침했다.
의성군은 이번 발굴 조사 성과를 토대로 봉토분 9기를 복원ㆍ정비하고 이 지역 의성조문국박물관과 연계한 역사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배한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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