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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
고구려 신라(동쪽) |
토번 돌궐(서쪽 및 북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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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 |
함형4년 윤 5월 정묘일,연산도총관 이근행이 고구려의 반당을 호로하 서쪽에서 깨뜨리니,고려 평양의 남은 무리는 신라로 달아나 들어갔다.(구당서 고종본기)
(평양 함락후) 4년 계유년(673) 여름 윤5월에 연산도 총관 대장군 이근행이 호로하(瓠濾河)에서 우리나라(고구려의 잔여병력) 군사들을 깨뜨리고 수천 명을 사로잡으니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신라로 달아났다.<삼국사기 고구려 부흥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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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7월 1일에 유신이 죽었다. 아찬 대토(大吐)가 모반하여 당에 붙으려 하다가 일이 탄로나 목베여 죽임을 당하고 처와 자식들은 천인(賤人)으로 만들었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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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문무)왕이 대아찬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 당의 군사가 말갈·거란 군사와 함께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왔는데, 무릇 아홉 번 싸워 (신라) 군사가 이겨 2천여 명을 목베었고 당의 군사 중 호로(瓠瀘)와 왕봉(王逢) 두 강에 빠져 죽은 자는 이루 셀 수 없었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겨울에 당나라 군사가 고구려의 우잠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고, 거란·말갈 군사는 대양성(大楊城)과 동자성을 공격하여 멸하였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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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 |
문무왕 14년(674)정월, (문무)왕이 고구려의 배반한 무리를 받아들이고 또 백제의 옛 땅을 차지하고서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니, 당나라 고종이 크게 화를 내어 조서로써 왕의 관작을 깎아 없앴다. 왕의 동생 우효위원외대장군 임해군공 김인문이 당의 서울(장안)에 있어, [그를] 신라 왕으로 삼아 귀국하게 하고 좌서자동중서문하삼품 유인궤를 계림도대총관으로 삼고, 위위경 이필, 우령군대장군 이근행으로 보좌하게 하여 군사를 일으켜 공격해 왔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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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형)5년 봄 2월 임오일,태자좌서자、동중서문하삼품 유인궤를 계림도 대총관으로 삼아서,신라를 토벌하도록 보내고,이에 영위위경 이필과 우령대장군 이근행을 부총관으로 가도록 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상원 원년 2월 임오일,유인궤를 계림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신라를 토벌하였다.
(신당서 고종본기)
함형 5년(674년)에 [신라에서] 고구려의 항거하는 무리들을 받아들여 [옛]백제 땅을 점령하여 지키게 하였다. (당)고종이 노하여 조서로 [법민(法敏)의] 관작을 삭탈하고, 그의 아우 우효위원외대장군 임해군공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삼아 서울(장안)에서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조서로 유인궤를 계림도대총관으로 삼고, 위위경 이필과 우령군대장군 이근행을 부총관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가서 힘을 다하여 치라고 하였다.(신당서 동이열전 신라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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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문무왕이) 서형산 아래에서 군대를 크게 사열하였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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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문무왕이) 의안법사(義安法師)를 대서성(大書省)으로 삼고 안승을 보덕왕으로 봉하였다.<[문무왕] 10년에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봉하였는데 지금 다시 봉한 것이다. 보덕(報德)이란 말이 귀순[歸命]한다는 말과 같은 뜻인지 혹은 땅 이름인지 모르겠다.>
영묘사 앞 길에 나아가 군대를 사열하고, 아찬 설수진(薛秀眞)의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관람하였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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