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20

상 상 2014. 9. 5. 17:43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20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2)

고구려 신라(동쪽)

토번 돌궐(서쪽 및 북쪽)

671

문무왕 11(671) 봄 정월에 이찬 예원(禮元)을 중시로 삼았다.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침공하여 웅진 남쪽에서 싸웠는데, 당주(幢主) 부과(夫果)가 죽었다. 말갈 군사가 쳐들어와 설구성을 포위하였다가 이기지 못하고 장차 물러가려 하자, 군사를 내어 쳐서 300여 명을 목베어 죽였다.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구원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대아찬 진공(眞功아찬 △△△△ 등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옹포(甕浦)를 지키게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6월에 장군 죽지(竹旨) 등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백제 가림성(加林城)의 벼를 짓밟게 하였다. 마침내 당나라 군사와 석성(石城)에서 싸워 53백 명을 목베고 백제 장군 두 명과 당나라 과의(果毅) 여섯 명을 사로잡았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가을 726일에 당나라 총관 설인귀가 임윤법사(琳潤法師)를 시켜 편지를 보내왔다.

-----(중략)----(내용: 당을 배반하지 말라)

(문무)대왕이 답서에서 일러 말하였다.

----(중략)-----(내용: 배반하지 않았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설인귀의 편지와 문무왕의 답서는 여기에 있기는 분량이 좀 많고 핵심 파악에 방해가 되므로 아래에 따로 복사해 놓았음>

 

7월 고간이 안시성에서 (고구려의)남은 무리를 깨뜨렸다(삼국사기 고구려 부흥운동)

 

9월에 당나라 장군 고간(高侃) 등이 번방의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평양에 도착하여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대방(帶方)을 침입하였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겨울 106일에 당나라 조운선 70여 척을 공격하여 낭장(郞將) 겸이대후(鉗耳大侯)와 병사 100여 명을 사로잡았는데,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672

문무왕 12(672) 봄 정월에 (문무)왕이 장수를 보내 백제 고성성(古省城)을 공격하여 이겼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함형)3년 정월 신축일요주의 오랑캐들이 변경을 침구하여태자우위부솔 양적수를 요주도 행군총관으로 삼아 정벌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2월에 백제의 가림성(加林城)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가을 7월에 당나라 장수 고간이 군사 1만 명, 이근행이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일시에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진영을 설치하고 주둔하였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8월에 당나라 군사가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을 공격하여 이기고, 군사를 백수성으로부터 500보쯤 떨어진 곳까지 전진시켜 군영을 설치하였다. 우리 군사와 고구려 군사가 (당나라 군사를)맞아 싸워 수천 명을 목베었다. 고간 등이 후퇴하자 석문(石門)까지 뒤쫓아가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패하여 대아찬 효천, 사찬 의문· 산세(山世), 아찬 능신·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양신(良臣) 등이 죽었다. 한산주의 주장성(晝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였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9, 왕은 지난번 백제가 당나라에 가서 호소하고 군사를 청하여 우리를 쳤을 때, 사정이 급박하여 황제께 아뢰지 못하고 군사를 내어 쳤었다. 이 때문에 당 조정으로부터 죄를 얻게 되었으므로 마침내 급찬 원천(原川)과 나마 변산(邊山)을 보내 붙잡아 두었던 [당나라] 병선낭장 겸이대후, 내주사마 왕예, 본열주장사(本烈州長史) 왕익, 웅주도독부 사마 예군(禰軍), 증산사마 법총과 군사 170명을 돌려 보냈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표()를 올려 죄를 빌었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표의 내용은 아래에 따로 있음>

 

12월 고간이 고구려의 남은 무리와 백수산(白水山)에서 싸워 그들을 깨뜨렸다.

신라가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무리를 구원하였으나, 고간이 쳐서 이기고 2천 명을 사로잡았다.(삼국사기 고구려 부흥운동)

 

함형3년 이 겨울에좌감문대장군 고간이 신라의 무리에게 횡수에서 대패하였다.

(구당서 고종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