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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봉) 4년 2월 임술일,토번의 찬보(군주)가 죽어,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제를 올렸다. |
四年二月壬戌,吐蕃贊普卒,遣使弔祭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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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 원년) 6월 신해일,황제가 대사면령을 천하에 내리고,의봉4년을 조로원년으로 고쳤다. |
六月辛亥,制大赦天下,改儀鳳四年為調露元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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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임오일,이부시랑 배행검이 서쪽으로 돌궐을 토벌하여, 그 10성(姓)의 가한(임금)인 아사나 도지와 별수(別帥:별도의 장수) 이차복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
九月壬午,吏部侍郎裴行儉討西突厥,擒其十姓可汗阿史那都支及別帥李遮匐以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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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0월,선우대도호부의 돌궐(족) 아사덕 온부와 봉직,
2개의 부(部)가 잇따라 모반을 일으켜,아사나 니숙복를 가한으로 세우니,24개 주 수령이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 선우대도호 장사 소사업을 보내고,장군 화대지와 이경가 등이 토벌하였다. 돌궐과 싸움을 하였으나,적에게 패배를 당하였다. (소)사업을 계주로 유배 보냈다. 임자일,장군 조회순에게 병사를 인솔하고 긍주로 가서 정형을 지키라고,최헌에게 강주로 가서 용문을 지키라고 명하여,돌궐에 대비하게 하였다. 계해일,토번(에 있는) 문성공주가 그 대신 론새조방을 보내 와서 부고를 알리고,화친을 청하였으나,불허 하였다. 낭장 송령문을 토번에 사신으로 보내,찬보(토번의 임금)의 장례에 참석하게 하였다. |
冬十月,單于大都護府突厥阿史德溫傅及奉職二部相率反叛,立阿史那泥熟匐為可汗,二十四州首領並叛。遣單于大都護長史蕭嗣業,將軍花大智、李景嘉等討之。與突厥戰,為賊所敗。嗣業配流桂州。壬子,令將軍曹懷舜率兵往恆州守井陘,崔獻往絳州守龍門,以備突厥。癸亥,吐蕃文成公主遣其大臣論塞調傍來告喪,請和親,不許。遣郎將宋令文使吐蕃,會贊普之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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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갑진일,배행검을 정양도 대총관으로 삼아,영주도독 주도무 등 병사 18만과,아울러 서군 정무정、동군 이문간 등,총 30만으로 돌궐을 토벌하였다. |
十一月甲辰,裴行儉為定襄道大總管,與營州都督周道務等兵十八萬,并西軍程務挺、東軍李文暕等,總三十萬以討突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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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2년 2월 임자일,곽왕 원궤가 문무백관을 인솔하고,일개월 간의 녹봉을 내기를 청하여 군사를 도와,돌궐을 토벌하였다. |
二年二月壬子,霍王元軌率文武百僚,請出一月俸料助軍,以討突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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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배행검이 돌궐을 흑산에서 대파하고,그 수령 봉직을 사로잡았다. 거짓 가한 (아사나)니숙복이 그의 부하에게 살해 당해,머리를 보내고 투항하였다. |
三月,裴行儉大破突厥於黑山,擒其首領奉職。偽可汗泥熟匐為其部下所殺,傳首來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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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7월,토번이 하원에 침구하여,양비천에 주둔하였다. 하서 진무대사 이경현과 토번 장군 찬파가 황중에서 싸웠으나,아군(관군)이 패배하였다. 그때 좌무위장군 흑치상지가 온 힘을 다하여 싸워,토번군을 대파해,마침내 하원군 경략대사에 발탁되어;이경현에게 선주(鄯州)를 진압하라고 명하고,지원하였다. 이달에,돌궐의 나머지 무리가 운주를 포위하여,중랑장 정무정이 격파하였다. |
秋七月,吐蕃寇河源,屯于良非川。河西鎮撫大使李敬玄與吐蕃將贊婆戰于湟中,官軍敗績。時左武衞將軍黑齒常之力戰,大破蕃軍,遂擢為河源軍經略大使;令李敬玄鎮鄯州,為之援。是月,突厥餘眾圍雲州,中郎將程務挺擊破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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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륭원년) 8월 을축일,조로2년을 영륭원년으로 고치고,사면령을 천하에 내리며,큰 잔치 3일을 하사하였다. |
八月乙丑,改調露二年為永隆元年,赦天下,大酺三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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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륭) 2년 봄 정월,돌궐이 원(주)와 경(주) 등의 주(州)를 침구하였다. 계사일,예부상서 배행검을 정양도 대총관으로 삼고 파견하여,군사를 거느리고 돌궐의 온부 부락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
二年春正月,突厥寇原、慶等州。癸巳,遣禮部尚書裴行儉為定襄道大總管,率師討突厥溫傅部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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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병술일,정양도 총관 조회순이 돌궐의 사복념과 횡수에서 싸웠으나,아군(관군)이 대패하였다. (조)회순을 죽이지 않고,영남으로 유배 보냈다. |
五月丙戌,定襄道總管曹懷舜與突厥史伏念戰於橫水,官軍大敗。懷舜減死,配流嶺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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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7월 이달에,배행검이 돌궐의 사복념 무리를 대파하고,(사)복념은 정무정이 급히 추격하니,마침내 (사복념이) 온부를 잡아 투항하였으며,(배)행검이 이에 돌궐의 나머지 무리를 전부 평정하였다. (배)행검이 (사)복념과 온부를 잡아군대를 거두어 개선하였다. |
閏七月是月,裴行儉大破突厥史伏念之眾,伏念為程務挺急追,遂執溫傅來降,行儉於是盡平突厥餘黨。行儉執伏念、溫傅,振旅凱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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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원년) 겨울 10월 병인일-초하루,일식이 있었다. 을축일,영륭2년을 개요원년으로 고쳤다. 병인일,아사나 복념과 온부 등 54명을 도회지 시장에서 참수하였다. |
冬十月丙寅朔,日有蝕之。乙丑,改永隆二年為開耀元年。丙寅,斬阿史那伏念及溫傅等五十四人於都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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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원년) 2월 계미일,태자의 황손 만월이 태어나,대사면령을 내리며。개요2년을 영순원년으로 고치고,큰 잔치 3일을 하사하였다. |
永淳元年 二月癸未,以太子誕皇孫滿月,大赦。改開耀二年為永淳元年,大酺三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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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병인일,(황제가) 동도(낙양)에 행차하였다. 황태자에게 서울(장안)에 머물러 지키게 하며,유인궤、배염、설원초 등으로 하여금 보좌하도록 명하였다. 황상은 곡식이 귀하니,뒤따르는 병사를 줄였으나,사대부와 서민으로 따라온 자는 길에서 굶어죽어 넘어진 자들이 많았다.
신미일,배행검을 금아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장군 염회단 등 3총관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10개 성(姓)의 가한인 돌궐 아사나 차박을 토벌하였다. (배)행검은 떠나기 전에 죽었다. 안서부도호 왕방익이 (아사나)차박과 인면을 깨뜨리고,서역을 평정하였다. |
四月丙寅,幸東都。皇太子京師留守,命劉仁軌、裴炎、薛元超等輔之。上以穀貴,減扈從兵,士庶從者多殍踣於路。辛未,以裴行儉為金牙道行軍大總管,與將軍閻懷旦等三總管兵分道討十姓突厥阿史那車薄。行儉未行而卒。安西副都護王方翼破車薄、咽麪,西域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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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산동에 홍수가 나서,백성들이 굶주렸다. 토번이 자(주)와 송(주)、익(주) 등의 주(州)를 침구하였다. |
是秋,山東大水,民饑。吐蕃寇柘、松、翼等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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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남천축과 우전이 각각 지방물건을 바쳤다. 돌궐의 나머지 무리 아사나 골독록 등이 잔여 무리를 불러모아,흑사성을 근거지로 삼고,병주 북쪽 변경을 침략하였다. |
十二月,南天竺、于闐各獻方物。突厥餘黨阿史那骨篤祿等招合殘眾,據黑沙城,入寇并州北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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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
(영순)2년 2월 경오일,돌궐이 정주(定州)와 규주 지경을 침구하였다. 기묘일,좌령군위대장군 설인귀가 죽었다. |
二年二月庚午,突厥寇定州、媯州之境。己卯,左領軍衞大將軍薛仁貴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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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경인일,돌궐의 아사나 골독록과 아사덕 원진 등이 선우도호부를 포위하였다. |
三月庚寅,突厥阿史那骨篤祿、阿史德元珍等圍單于都護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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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원년) 12월 기유일,조서로 영순2년을 홍도원년으로 고치도록 명하였다. 사면령을 쓴 글을 선포하려고,황상이 친히 말을 몰아 측천문 누각에 가려고 하였으나,뱃속의 기가 꺼꾸로 치밀어 오르는 증상으로 말에 오를수 없게 되자,마침내 백성을 궁전 앞에 불러 선포하였다. 예를 마치고,황상이 측근 신하에게 물어 이르기를:「서민들이 기뻐하지 아니하는가?」하니 대답하여 이르기를:「백성들이 사면(령의 은혜를) 입었으니,감동하여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하였다. 황상이 이르기를:「창생(세상의 모든 사람)이 비록 기뻐하나,나의 생명은 위급하다. 천지신명이 만약 나의 생명을 2개월을 연장해 준다면,장안으로 돌아가,죽으면 또한 한(恨)이 없겠다.」이날 저녁,황제가 진관전에서 죽으니,연세 56세였다. |
十二月己酉,詔改永淳二年為弘道元年。將宣赦書,上欲親御則天門樓,氣逆不能上馬,遂召百姓於殿前宣之。禮畢,上問侍臣曰:「民庶喜否?」曰:「百姓蒙赦,無不感悅。」上曰:「蒼生雖喜,我命危篤。天地神祇若延吾一兩月之命,得還長安,死亦無恨。」是夕,帝崩於真觀殿,時年五十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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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고종: 현경 5년(660) 10월 병으로 눈이 멀어 무후에게 정치를 위임하면서 이후 정치적으로 허수아비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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