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47, 당나라때-71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상 상 2014. 6. 30. 17:13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47, 당나라때-71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

4. 구당서 태종본기()

5. 구당서 고종본기()

6. 구당서 고종본기()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7. 신구당서 고종 본기 해설

 

신구당서 고종 본기에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당 고종이 태자일 때 철군한 당태종의 악창을 친히 입으로 빨았다.

2) 양진주제수(양나라, -나라, 북주, 북제, 수나라) 5대사(代史) ()를 지어 올렸다.

3) 당 고종시대의 주변국 침략과 고구려 침략.

4) 고구려 임금을 책봉하였다는 기사가 없다.

5) 고구려와 백제가 망했을 때의 호수(戶數) 비교/ 697천호와 76만호

6) 당 고종때 벌써 토번이 당나라를 침략하나 당나라는 연패하며 속수무책이다.

7)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 유민과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 등이다.

 

이러한 7가지 사항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보자.

 

1)당 고종이 태자일 때 철군한 당태종의 악창을 친히 입으로 빨았다.에 대하여:

이에 대해서는 태종본기에서 다루었던 사안으로 당태종이 안시성에서 도주한 것은 심각한 부상을 당해서 철수했다는 증거가 된다.(당태종의 눈이 화살에 맞는 중상을 당했다는 설이 있음)

 

2)양진주제수 5대사(代史) ()를 지어 올렸다.에 대하여:

이것이 우리역사에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구당서 고종 본기에서는 양진주제수 5대사(代史) ()를 지어 올렸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양서, 진서(晋書), 주서, 북제서, 수서에 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전해지는 양진주제수 5대사(代史) 중에서 진서(晋書), 주서, 북제서에는 지()가 없고 수서만 지()가 있다. 그런데 수서 지리지를 보면 요서군이 영주(현 요녕성 조양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그 이전까지의 사서인 위서 지리지 등에서 요서군이 요하(지금의 난하) 서쪽

비여현이라고 기록한 것과 다르다. 다시말해서 요서군은 난하 서쪽인데 당고종 때 수서 지리지를 지으면서 영주(지금의 요녕성 조양시)라고 거짓말로 조작한 것이다.

, 요하는 원래 난하인데 당태종때 지은 수서부터 지금의 요녕성에 있는 요수가 요하라고 사기친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요하 동쪽이 요동이라고 사기를 치며 지금의 심양 등지가 요동으로 예전부터 중국 땅이라고 거짓말 사기를 쳤던 것이다. 이것은 평양 낙랑설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당고종이 평양을 함락함으로서 거짓이 사실이 되고 사기가 진실이 되어 버렸다.

 

이런 것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로 동북공정이 바로 그것이다.

동북공정은 고구려는 물론 한강이북이 중국 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지금 중국이 핵무장을 하고 있어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한반도를 충분히 힘으로 먹어치울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 미래를 위하여 미리 글로 먼저 자기네 땅이라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계기가 생겨 한반도를 먹게 되면 동북공정에서 주장했던 한강이북을 중국 땅이었음을 내보이고 한강이북을 중국 땅으로 편입하려고 할 것이다.

또다시 이러한 거짓말 사기가 사실이 되고 진실이 되는 민족적 비극이 오지 말아야 한다.

그럴려면 우리의 국력을 지금보다 엄청나게 강화해야 한다.

 

3) 당 고종시대의 주변국 침략과 고구려 침략 횟수에 대하여:

이는 당나라의 전성기가 당고종 시대라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주변 국가가 당나라에 조금만 거슬리면 당고종은 즉시 군대를 보내 멸망시키는데 이중에 하로가 가장 강하였다. 당고종은 수차례에 걸쳐 하로를 없애려고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실패하다가 마지막에 하로를 잡은 사람이 바로 소정방이다. 하로를 없애고 군사를 돌린 곳이 바로 고구려이다. 고구려 공격이 뜻대로 되지 않자 백제로 군사를 돌렸고 백제 공격한 장군이 바로 소정방이다. 백제공격을 성공하자 다시 고구려 침략에 나선다. 고구려 침략을 8년동안 계속하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6666월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아들 남생 남건 남산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서

맏형인 남생이 동생인 남건에게 축출되자 남생은 국내성을 근거로 북고구려를 점령하고 그의 아들 헌성을 당나라에 보내 당나라 군대를 불러들였다. 헌성등의 고구려 사람들을 길잡이 삼아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래서 고구려가 망하였다. 고구려의 내분만 없었으면 당나라는 절대로 고구려를 이기지 못하였을 것이다.

4) (신구당서 고종 본기에) 고구려 임금을 봉하였다는 기사가 없다.에 대해

막상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 고종 본기나 구당서 동이열전 중에서 고종 기록분에는 고구려 임금을 요동군왕으로 봉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런데 고구려에게 패한 당태종이나 당나라가

건국한 시초인 당고조 때 고구려 임금을 요동군왕으로 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당고조 이연의 본기에 고구려 임금을 요동군왕으로 봉했다는 기록은 당태종이 당고조 이연의 실록을 뜯어고쳤기 때문이고 당태종 본기에는 고구려 임금을 요동군왕에 봉했다는 기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구당서 동이열전 중에서 당태종 기록분에 있는 것은 당태종 실록을 만든 자들이 감히 당태종 본기에는 거짓말을 못하고 구당서 동이열전에 슬그머니 거짓말을 집어넣은 것이기 때문이다.

 

 

5) 고구려와 백제가 망했을 때의 호수(戶數) 비교/ 697천호와 76만호에 대하여:

고구려가 망했을 때 697천호라고 하는데 백제는 망했을 때 76만호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고구려가 백제보다 인구가 적고 국력이 약했다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고 고구려는 망했을 때 전부 항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고구려 부흥운동

671(신미년) 가을 7월에 고간이 안시성에서 남은 무리를 깨뜨렸다.라는 기사가 나오고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13(673)조에 겨울에 당나라 군사가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을 공격하여 항복시켰다라는 등의 기사가 나오는 것이다. , 당나라 군대의 침략 노선인 지금의 요하에서 평양에 이르는 성 중에서도 항복을 하지 않은 성이 있었으며, 그 동쪽인 백두산 쪽은 전부 항복하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고구려의 많은 곳에서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곳이 바탕이 되어 발해가 건국한 것임에 틀림없다.

 

6) 당 고종때 벌써 토번이 당나라를 침략하나 당나라는 연패하며 속수무책이다.에 대하여: 신당서 고종 본기 용삭 3(663) 6월 기사토번이 토욕혼을 공격하여 양주도독 정인태를 청해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구하도록하였다와 고종 본기 인덕 2(665) 기사이 봄에 소륵, 궁월, 토번이 우전을 공격하여 서주도독 최지변과 좌무위장군 조계숙이 구하였다.등의 기사가 나온다. 이것은 당 고종때 벌써 전성기를 지나고 쇠퇴기에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당나라의 쇠퇴는 신당서 북적열전 찬자평(撰者評)에서그러나 극도로 성하면 쇠하는 법이니 그 화가 안으로 옮겨져, 천보(天寶:742~755)이후로는 중국이 깨어지고 상하여, 천자의 군대가 북으로는 황하(黃河)를 건너지 못하고 서쪽으로는 진주(秦州빈주(邠州)에 그치고 말았다. 쇠퇴한 지 백년만에 멸망하고 말았으니, 이 아니 슬픈가!라는 평이 나고 있다.

 

7)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 유민과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에 대하여:

고구려가 망한 후 당나라는 고구려와 신라에 대해 어떻게 하였으며,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간단히 말하면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과 백제의 옛 땅을 전부 차지하고

나아가 신라까지 먹으려다 고구려 유민과 신라 연합군에 의하여 패배당하였다.

그 결과 66812월 평양에 설치하였던 안동도호부를

옛 요동성으로 옮기더니(상원 3, 6762)

다시 신성으로 옮겼다가(의봉 2, 677)

또다시 평주로 옮기고(개원 2, 714),

다시 요서 옛 군의 성에 옮겨 설치하더니(천보 2, 743)

결국 지덕(756~758) 후에 폐지하고 말았다.<근거: 구당서 지리지 안동도호부>

 

이 문제는 우리역사에 중요한 문제이므로 이에 대하여 삼국사기 고구려 부흥운동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으니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을 할때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