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수말당초의 중국 상황(이밀, 왕세충, 두건덕, 이세민의 관계)-2

상 상 2014. 5. 21. 17:19

수말당초의 중국 상황(이밀, 왕세충, 두건덕, 이세민의 관계)-2

 

1. 상황 요약

2. 상황 분석 및 해설

3. 자치통감 기록

 

2. 상황 분석 및 해설-1)

수말당초(수나라 말기, 당나라 초기)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617: 수나라 공제 의녕 원년

2월 적양의 와강채에 투신한 이밀이 흥낙창을 빼앗고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게 한다.

이어서 낙구창을 점거하자 인재와 도적들이 모여 무리가 수십만에 이르고 동도(낙양)마저 위협한다.

(와강채에 있었던 적양의 군대를 와강군이라고 한다. 나중에는 이밀이 차지함)

 

4월 이밀이 회낙창마저 점거하자 동도(낙양)을 지키고 있던 월왕 양동이 수양제에게 이밀 토벌을 주청한다.

 

5월 월왕 양동이 회낙창에서 이밀을 패퇴시기니 이밀은 낙구창으로 도망갔다. 태원 유수로 있던 이연은 전국적으로 반란이 일어나고 특히 동도(낙양)에서 이밀이 큰 세력을 떨치자 자기도 반란에 참가한다.

 

6월 이밀이 동도 군사들을 대패시키고 다시 회낙창을 빼앗았다.

 

7월 이밀이 동도를 지키고 있는 월왕 양동과 일전일퇴를 벌이자 수양제는 드디어 왕세충을 파견하여 월왕

양동과 함께 이밀을 치도록 한다.

같은 달 5일에 이연이 드디어 장안을 점령하려고 태원을 떠난다.

가는 도중에 군사력이 약하자 돌궐의 시필가한에게 군사력 지원을 구원한다.

그와 동시에 이밀에게는 이밀을 주군으로 떠받들겠다고 하며 자기는 이밀에게 이밀의 당공으로 책봉받고

싶다고 하면서 이밀을 안심시키며 계속 남하한다.

 

9월 서세적(이세적)이 이밀에게 여양창을 얻자고 하여 이를 얻어 창고를 열고 백성들에게 멋대로 먹게하니

10여일 만에 정예의 병사 20여만을 얻었다. 이로써 와강군이 최강군이 된다.

그 달에 드디어 왕세충 등이 부하를 인솔하고 동도(낙양)에 도착한다.

그러자 월왕 양동이 유장공, 방옥으로 하려금 왕세충과 합하여 10여만을 이끌고 낙구에서 이밀을 치도록 하였는데 이밀이 낙구에서 이기고 왕세충이 패하였다.

 

동도(낙양)에서 이러고 있는 사이에 이연이 황하를 건넌다.

그 뒤를 이어 이연이 영풍창(섬서성 동관현 북쪽)에 이르러 창고를 열어 굶구린 백성을 구제하니

관리와 백성 그리고 도적들이 귀부하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았다.

이렇게 되니 여기서 군사를 크게 모았다. (19만명)

 

104일 이연이 장안에 도착하였다 그때 군사는 20여 만이었다.

그리고 그달 14일 장안성을 포위하고, 27일 장안성을 공격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동도(낙양)쪽에서는 이밀과 왕세충이 일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119일 드디어 이연이 장안을 점령한다. 이연은 장안을 지키고 있던 수양제의 손자 양유를 황제로 세운다.

이때에도 동도(낙양)에서는 이밀과 왕세충이 일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2) 618: 당고조 무덕 원년

3월 이연이 장안을 점령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문화급이 주동이 된 황제의 친위대 효과군은 수양제를 시해하고진왕 양호를 황제로 세우며, 관중(장안)을 향하여 떠난다.

 

4월 수양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연이 양유를 밀어내고 황제로 즉위한다. 당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5월 수양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동도(낙양)에서 왕세충과 동도유수 원문도가 월왕 양동을 황제로

세운다.(양동은 연호를 황태라고 썼기 때문에 양동을 황태주라고 부른다)

한편 동도(낙양)에서는 우문화급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떨고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수양제와 함께 강도에 있던 양호를 황제로 세웠는데 동도에서 제멋대로 또하나의 황제를 세웠기 때문이다.

 

6월 우문화급이 활대에 도착하여 여향에서 이밀과 싸웠는데 뜻밖에도 당시 최강이었던 황제의 친위대인 효과군을 거느린 우문화급이 패하여 달아났다. 여기서 이밀은 동도(낙양)와 싸운 날짜도 오래되고 동쪽으로 우문화급을 막았으나 동도(낙양)에서 그들의 뒤를 칠까 두려워 황태주에게 항복을 신청하고 우문화급을 토벌하여 속죄함을 받게 해달라고 청한다.

이에 황태주 양동이 이밀에게 태위 상서령 동남도 대행대 행군원수 위국공의 벼슬을 주며, 먼저 우문화급을 평정하고 그 다음에 조정에 들어와 정치를 보필하라고 한다.

 

7월 이밀은 서쪽에 대한 염려가 없어지자 모든 정예의 병사를 가지고 동쪽으로 가서 우문화급을 공격하였다. 이밀은 우문화급의 군사들이 군량이 다하였다는 것을 알고 거짓으로 화해하자고 하였더니 우문화급이 기뻐하고 그의 군사들이 멋대로 먹게 하면서 이밀이 그들을 먹여주기를 바랬다. 마침 이밀의 밑에 있는 사람이 죄를 짓고 도망하여 우문화급에게 가서 그 사정을 다 말하니 우문화급이 크게 화를내고 영제거를 건너서 이밀과 동산 아래에서 싸웠다.

 

이밀이 떠도는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혼절하자 오직 진숙보만이 그를 보위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진숙보가 군사를 수습하고 싸워서 우문화급이 물러났다.

 

그런데 우문화급은 급군에 들어가 군량을 구한 뒤, 동군의 관리와 백성들을 고문하고 노략질 하여 쌀과 곡식을 책임지게 하였다. 이렇게 되자 왕궤 등이 감당하지 못하고 이밀에게 항복하였다. 동군의 무리들도 이밀에게 항복하였다.

 

이렇게 되니 우문화급은 무리 2만으로 북쪽 위현으로 갔다.

이때 동도에서 대기근이 들어 쌀값이 폭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