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12, 당나라때-36 (10. 신당서 고조본기①)

상 상 2014. 3. 17. 17:34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12, 당나라때-36 (10. 신당서 고조본기①)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상)

4. 구당서 태종본기(하)

5. 구당서 고종본기(상)

6. 구당서 고종본기(하)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0. 신당서 권1 고조본기①

원문 출처: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 원문에 들어가는 방법: 위 홈페이지/ 免費使用/ 史/ 正史/ 新唐書/ 本紀/ 卷一

번 역 문

원 문

 

고조 신요대성대광효황제의 이름은 연,자는 숙덕,성은 이씨로,농서 성기 사람이다. 그 7대조(世祖)는 고인데,진나라(사마의의 진나라) 말기를 당하여,진(秦)과 양(涼) 지역을 근거지로 스스로 왕이 되었는데,이가 바로 양(涼)나라 무소왕이다. 고는 흠을 낳았는데,흠은 저거몽손에게 소멸되었다. 흠은 중이를 낳았는데,(북)위의 홍농태수이다. 중이는 희를 낳았는데,금문진장으로,무천(진)에 주둔하였으므로,가족이 (무천진에) 머물렀다. 희는 천사를 낳았는데,당주(幢主)가 되었다. 천사는 호를 낳았는데,서위(우문태가 세운 나라) 시절,대야씨의 성을 하사 받았으며,관직은 태위에 이르렀는데,이필 등 8인(人)과 더불어 서위를 대신한 (북)주를 보필하는데 공이 있어,모두 주국(柱國)이 되었으므로,「팔주국의 가문(八柱國家」이라고 불렀다. (북)주, 민제가 (서)위에게 선양을 받을 때,호는 이미 죽어서,이에 그 공을 추가로 기록하여,당국공에 봉하고,시호를 양이라고 하였다. 양공은 병을 낳았는데,세습하여 당공에 봉해졌으며,(북)주의 안주총관、주국대장군(을 지내고),죽어,시호를 인(仁)이라고 하였다.

高祖神堯大聖大光孝皇帝諱淵,字叔德,姓李氏,隴西成紀人也。其七世祖暠,當晉末,據秦、涼以自王,是為涼武昭王。暠生歆,歆為沮渠蒙遜所滅。歆生重耳,魏弘農太守。重耳生熙,金門鎮將,戍于武川,因留家焉。熙生天賜,為幢主。天賜生虎,西魏時,賜姓大野氏,官至太尉,與李弼等八人佐周代魏有功,皆為柱國,號「八柱國家」。周閔帝受魏禪,虎已卒,乃追錄其功,封唐國公,謚曰襄。襄公生昞,襲封唐公,周安州總管、柱國大將軍,卒,謚曰仁。

 

인공(仁公)이 고조를 장안에서 낳으니,몸에 젖꼭지가 3개 있었는데,성품이 너그럽고 어질었으며,세습하여 당공에 봉해졌다. 수문제의 독고황후가,고조의 작은 이모이었는데,이런 연고로 (수)문제와 고조는 서로 친밀히 사랑하였다.

(수)문제가 (북)주의 국상(國相)이 되었을때,다시 고조에게 성 이씨를 주고,천우비신(황제의 신변을 지키는 관직)으로 삼았으며,수나라 초(주)、농(주) 2주의 자사를 하게 하였다.

仁公生高祖於長安,體有三乳,性寬仁,襲封唐公。隋文帝獨孤皇后,高祖之從母也,以故文帝與高祖相親愛。文帝相周,復高祖姓李氏,以為千牛備身,事隋譙、隴二州刺史。

 

대업 연간(605~618년)에,기주자사와 형양, 누번 2군 태수를 역임하였고,소환 되어서 전내소감、위위소경이 되었다. (수)양제가 요동(고구려)을 정벌할 때 ,고조를 보내 회원진까지 양식 운반을 감독하게 하였다.

大業中,歷岐州刺史、滎陽樓煩二郡太守,召為殿內少監、衞尉少卿。煬帝征遼東,遣高祖督運糧於懷遠鎮。

617

(대업)13년,태원유수의 벼슬을 받아,고양의 역산 비적 견적을 서하에서 쳐서,깨뜨렸다. 이때에,(수)양제가 남쪽 강도(江都)로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자,(온) 천하에서 도둑들이 일어났다. 고조의 아들 (이)세민도 수나라가 반드시 망할 줄 알고,몰래 호걸들과 결연하고,망명(자 들을) 불러들여,진양(현)령 유문정과 대사를 일으키기로 모의하였다. 계략이 이미 결정되었으나,고조는 아직 모르고 있었는데,정황을 알리고자 하자,두려워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조가 태원에 머물러 지키며,겸 진양궁감(晉陽宮監)이 되고,친했던 사람 배적이 부감이 되었는데,세민이 몰래 (배)적과 모의하여,(배)적이 진양궁의 궁녀를 보내 몰래 고조를 모시게 하였다. 고조가 (배)적을 방문하여 술을 마시고,술을 즐겨 술기운이 오르자,(배)적이 구체적으로 대사(大事)를 알리니,고조가 크게 놀랐다. (배)적이 말하였다.:「바로 궁녀(宮人)로 하여금 공을 받들게 한 것은,일이 발각되면 마땅히 주살되니,이것이 당신이 한 일입니다.」세민 역시 들어와 그 일을 아뢰니,고조가 처음에는 불허하였으나,세민을 잡아 관에 보내려고 하자,그치고 허락하며,말하였다.:「내가 너를 사랑하는데,어찌 너를 간사하게 고발할 수 있느냐?」그래서 발각이 없었다. 그러나 (고조의) 소재(지)에 도적이 더욱 많아지고,돌궐이 여러번 변경을 침범하였으나,고조의 병사가 나가도 공이 없자,(수)양제는 사자를 보내 고조를 잡아 강도(江都: 수양제가 있는 곳)에 이르게 하니,고조가 크게 두려워 하였다. 세민이 말하였다:「일이 급하게 되었으니,거사를 해야 합니다!」조금 후에 (수양)제가 다시 사자를 빨리 달리게 하여 고조를 사면하여 (체포를) 정지시켰으나,그 거사는 이미 수행되었다.

十三年,拜太原留守,擊高陽歷山飛賊甄翟兒于西河,破之。是時,煬帝南遊江都,天下盜起。高祖子世民知隋必亡,陰結豪傑,招納亡命,與晉陽令劉文靜謀舉大事。計已決,而高祖未之知,欲以情告,懼不見聽。高祖留守太原,領晉陽宮監,而所善客裴寂為副監,世民陰與寂謀,寂因選晉陽宮人私侍高祖。高祖過寂飲酒,酒酣從容,寂具以大事告之,高祖大驚。寂曰:「正為宮人奉公,事發當誅,為此爾。」世民因亦入白其事,高祖初陽不許,欲執世民送官,已而許之,曰:「吾愛汝,豈忍告汝邪?」然未有以發。而所在盜賊益多,突厥數犯邊,高祖兵出無功,煬帝遣使者執高祖詣江都,高祖大懼。世民曰:「事急矣,可舉事!」已而煬帝復馳使者赦止高祖,其事遂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