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년 (AD 34) : 서울에 땅이 갈라져 샘물이 솟았다.
[번역문]
11년(서기 34) 서울[京都]에 땅이 갈라져 샘물이 솟았다. 6월에 홍수가 났다.
13 년 (AD 36) : 가을 8월에 낙랑이 북쪽 변경을 침범
[번역문]
13년(서기 36) 가을 8월에 낙랑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타산성(朶山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14 년 (AD 37) : 고구려 왕 무휼(無恤)이 낙랑을 습격
[번역문]
14년(서기 37) 고구려 왕 무휼(無恤)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와서 투항하였으므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17 년 (AD 40) : 가을 9월에 화려현과 불내현
[번역문]
17년(서기 40) 가을 9월에 화려현(華麗縣)과 불내현(不耐縣) 두 현의 사람들이 함께 모의하여 기병을 이끌고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맥국(貊國)의 우두머리가 곡하(曲河)의 서쪽에서 군사로써 막아 물리쳤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우호를 맺었다.
19 년 (AD 42) : 가을 8월에 맥국의 우두머리가 사냥
[번역문]
19년(서기 42) 가을 8월에 맥국의 우두머리가 사냥하여 얻은 새와 짐승을 바쳤다.
31 년 (AD 54) : 봄 2월에 살별이 자궁(紫宮) [별자리]에
[번역문]
31년(서기 54) 봄 2월에 살별이 자궁(紫宮) [별자리]에 나타났다.
33 년 (AD 56) : 여름 4월에 용이 금성(金城)의 우물에서
[번역문]
33년(서기 56) 여름 4월에 용이 금성(金城)의 우물에서 나타났는데, 조금 있다가 폭우가 서북쪽에서부터 몰려왔다.
5월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34 년 (AD 57) : 가을 9월에 왕이 병환이 들자 신료들에게
[번역문]
34년(서기 57) 가을 9월에 왕이 병환이 들자 신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탈해는 그 신분이 임금의 친척이고 지위가 재상의 자리에 있으며 여러 번 공명(功名)을 드러내었다.
짐(朕)의 두 아들은 재주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내가 죽은 후에 그로 하여금 왕위에 오르게 할 것이니, 나의 유훈을 잊지 말라!"
겨울 10월에 왕이 죽어 사릉원(蛇陵園) 안에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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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saki?kind=b
2. 해설과 분석
1) 13년(AD 36), 14년(AD 37)조에 나오는 낙랑은 낙랑국임.
14년조를 보면 무휼이 낙랑을... 멸망사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 => 여기서도 낙랑을 가리켜 그 나라라고 지칭함으로서
낙랑이 낙랑국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낙랑국 사람 5천명이 와서 투항하니 유리 임금(이사금)은 그 사람들을 6부에 나누어 살게 하고 있다.
2) 유리와 탈해는 제2대 임금인 남해 차차웅의 아들(유리)과 사위(탈해)였다.
유리가 이사금에 오를 때에도 탈해가 양보해서 임금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
따라서 유리 이사금(임금)이 유훈으로 탈해를 임금(이사금)에 오르게 하고 있다.
3) 우리나라는 이와같이 아름다운 능력에 의한 양위의 전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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