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본기

삼국사기 신라 제4대 탈해 이사금- 2

상 상 2011. 11. 13. 23:19

2 년 (AD 58) : 정월에 호공을 대보(大輔)로 삼았다

[번역문]

2년(서기 58) 봄 정월에 호공을 대보(大輔)로 삼았다. 2월에 몸소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3 년 (AD 59) : 3월에 왕이 토함산에 올라갔는데, 검은 구름

[번역문]

3년(서기 59) 봄 3월에 왕이 토함산에 올라갔는데, 검은 구름이 덮개[蓋]처럼 하여 왕의 머리 위에 떠서 오래 있다가 흩어졌다.

여름 5월에 왜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사신을 교환하였다. 6월에 살별이 천선(天船) [별자리]에 나타났다.

 

5 년 (AD 61) : 가을 8월에 마한의 장군 맹소(孟召)가

[번역문]

5년(서기 61) 가을 8월에 마한의 장군 맹소(孟召)가 복암성(覆巖城)을 들어 항복해 왔다.

 

7 년 (AD 63) : 겨울 10월에 백제 왕이 땅을 넓혀 낭자곡성

[번역문]

7년(서기 63) 겨울 10월에 백제 왕이 땅을 넓혀 낭자곡성(娘子谷城)에 이르러, 사자를 보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왕은 가지 않았다.

 

8 년 (AD 64) : 가을 8월에 백제가 군사를 보내 와산성을

[번역문]

8년(서기 64) 가을 8월에 백제가 군사를 보내 와산성(蛙山城)을 공격하였다.

겨울 10월에 또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였으므로 왕이 기병 2천 명을 보내 쳐서 쫓아보냈다.

12월에 지진이 일어났고 눈이 내리지 않았다.

 

9 년 (AD 65) : 왕이 밤에 금성 서쪽의 시림 숲에서 닭 우는

[번역문]

9년(서기 65)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의 시림(始林)의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 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기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하고는 거두어서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에 알지(閼智)라 이름하고 금궤짝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라 하였으며,

시림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이름하고 그것을 나라이름으로 삼았다.

 

10 년 (AD 66) : 백제가 와산성을 공격하여

[번역문]

10년(서기 66) 백제가 와산성을 공격하여 빼앗아 200명을 머물러 두고 지키게 했으나, [신라가] 곧 그것을 빼앗았다.

 

11 년 (AD 67) : 봄 정월에 박씨의 귀척(貴戚)으로써

[번역문]

11년(서기 67) 봄 정월에 박씨의 귀척(貴戚)으로써 나라 안의 주·군(州郡)을 나누어 다스리게 했는데,

이름을 주주(州主)·군주(郡主)라 하였다. 2월에 순정(順貞)을 이벌찬으로 삼아 정치의 일을 맡겼다.

 

14 년 (AD 70) : 백제가 침입해 왔다

[번역문]

14년(서기 70) 백제가 침입해 왔다.

 

17 년 (AD 73) : 왜인이 목출도(木出島)에 침입하였다.

[번역문]

17년(서기 73) 왜인이 목출도(木出島)에 침입하였다.

왕이 각간(角干) 우오(羽烏)를 보내 그들을 방어하게 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전사하였다.

 

18 년 (AD 74) : 가을 8월에 백제가 변경을 노략질

[번역문]

18년(서기 74) 가을 8월에 백제가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므로 군사를 보내 그들을 막았다.

 

19 년 (AD 75) : 크게 가물어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번역문]

19년(서기 75) 크게 가물어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 주어서 진휼하였다.

겨울 10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 와산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20 년 (AD 76) : 가을 9월에 군사를 보내 백제를 정벌

[번역문]

20년(서기 76) 가을 9월에 군사를 보내 백제를 정벌하여 와산성을 다시 빼앗고, 백제로부터 와서 살던 사람 2백여 명을 모두 죽였다.

 

21 년 (AD 77) : 가을 8월에 아찬 길문(吉門)이 가야 군사와..

[번역문]

21년(서기 77) 가을 8월에 아찬 길문(吉門)이 가야(加耶) 군사와 황산진(黃山津) 어구에서 싸워 1천여 명을 목베었으므로

길문을 파진찬으로 삼아 공로를 포상하였다.

 

23 년 (AD 79) : 봄 2월에 살별[彗星]이 동쪽에 나타났고

[번역문]

23년(서기 79) 봄 2월에 살별[彗星]이 동쪽에 나타났고, 또 북쪽에도 나타났다가 20일만에 없어졌다.

 

24 년 (AD 80) : 여름 4월에 서울에 큰 바람이 불었고..

[번역문]

24년(서기 80) 여름 4월에 서울에 큰 바람이 불었고, 금성의 동쪽 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가을 8월에 왕이 죽어 성 북쪽의 양정구(壤井丘)에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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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saki?kind=b

 

2. 해설과 분석

 

1) 2년(서기 58)년조를 보면 「호공을 대보(大輔)로 삼았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대보(大輔)’는 신하 중에서 최고위 직위이며, 「탈해를 대보(大輔)로 삼아 군무(軍務)와 국정(國政)을 맡겼다.」는

신라 제2대 남해 임금 7년(서기 10)조의 기록을 보면,

대보라는 직위는 군(軍)과 국정(國政)을 모두 맡는 직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5년(서기61)조에 「마한의 장군 맹소(孟召)가 복암성(覆巖城)을 들어 항복해 왔다.」는 대목은

백제 온조왕 26 년(서기 8)년조 「마한을 습격하여 드디어 그 국읍(國邑)을 병합하였다.」는 기사와

백제 온조왕 본기 27년(서기9)조「 두 성이 항복하자 그 백성들을 한산(漢山) 북쪽으로 옮기니, 마한은 드디어 멸망하였다.」는 기사와

비교됩니다.

 

3) 7년(서기 63)조 「겨울 10월에 백제 왕이 땅을 넓혀 낭자곡성(娘子谷城)에 이르러...」는 신라 본기에 백제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입니다. 여기 나오는 백제왕이란 백제 본기를 보면 제2대 다루왕입니다.

 

4) 9년(서기 65)조에 신라 왕조 김씨의 시조가 나옵니다. 이로써 신라 왕조의 박,석,김 세 성씨가 다 소개 된 것입니다.

 

「알지(閼智)라 이름하고 금궤짝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라 하였으며,

시림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이름하고 그것을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박혁거세 본기를 보면, 나라 이름을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신라의 나라 이름은 서나벌 → 계림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11년(서기 67)조를 보면 「박씨의 귀척(貴戚)으로써 나라 안의 주·군(州郡)을 나누어 다스리게 했는데,

이름을 주주(州主)·군주(郡主)라 하였다.」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라 제4대 탈해 이사금때부터 지방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그 지방조직으로서

주군제(州郡制)를 실시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방 장관을 주주(州主), 군주(郡主)라고 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제3대 임금인 유리 이사금때 중앙 조직으로서‘17등급 관직’을 설치한데 이어

제4대 임금인 탈해 이사금때 지방조직까지 갖춤으로써 중앙과 지방조직까지 갖춘 완벽한 국가를 이루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6) 21년(서기 77)조를 보면 「가을 8월에 아찬 길문(吉門)이 가야(加耶) 군사와 황산진(黃山津) 어구에서 싸워...」라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는 신라 역사에 가야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