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159(수나라때, 수서 고려전 분석-1)

상 상 2013. 9. 30. 18:01

차 례

1. 수서 본기

2. 수서 고려전

3. 자치통감(수기2,5,6 등)

4. 수서 본기분석

5. 수서 고려전분석

6.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

7.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

 

5. 수서 고려전 분석-1

수서 고려전 분석은 수서 본기와 다른 점과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짚어서 분석해 보자...

 

수서 고려전 중에서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를 기술한 부분은

수문제 때와 수양제 때의 기사로 다음과 같이 구성이 되어 있다.

 

1) 수문제 때의 기사

(1) 개황 초 기사

(2) 개황 17년(597년) 기사

(3) 개황18년 기사

 

2) 수양제 때의 기사

(1) 대업 7년(611년) 기사

(2) 대업 9년(613년) 기사

(3) 대업 10년(614년) 기사

 

하나씩 살펴보자......

 

1) 수문제 때의 기사

 

(1) 개황 초 기사

개황 초에는,입조하는 사신이 빈번하게 있었다. 진나라를 평정한 후에 이르러,탕이 크게 두려워하여,군사를 훈련시키고 곡식을 저축하여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 「진나라를 평정한 후에」이하의 문장은 수서 고조(문제) 본기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 기사로 고구려는 수나라가 고구려로 쳐들어 올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비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이 기사로 고구려는 수나라와 대립하여 전쟁을 하는 사이이지 종속국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2) 개황17년(597년) 기사 중에서...

수문제가 한 말을 보면

①「말갈을 못견디게 괴롭히고 거란을 견고하게 가두었소. 여러 번국이 머리를 조아려 나에게 신첩 노릇을 하는게 [무엇이 나쁘다고 그처럼] 착한 사람이 의리를 사모하는 것을 분개하여 어찌 해치는 뜻이 (그렇게)심하오?」

⇒ 이것은 고구려와 수나라가 말갈과 거란을 두고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수나라가 말갈과 거란을 끌어들여 자기들의 신첩(臣妾) 노릇을 하였는데

고구려가 말갈과 거란을 힘으로 굴복시켜 고구려의 세력 안으로 끌어들이니

수문제가 고구려 왕에게 그 행위를 중지해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②「왕은 사자를 빈 객관에 앉혀 놓고 엄하게 막아 지키며, 눈과 귀를 막아 영영 듣고 보지도 못하게 하였소」

⇒ 고구려가 수나라의 사신을 엄하게 감시 감독하고 있음을 수문제가 증언하고 있다.

수나라의 사신이 함부로 행동하거나 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음을 수문제가 증언하고 있다.

이것으로 고구려와 수나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서로 수평적이고 대등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고구려와 수나라 관계에서 감히 상하관계 주종관계라는 말을 꺼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③「기마병을 보내어 변경 사람을 살해하고, 여러 차례 간계를 부려 그릇되고 바르지 않은 말을 지어 내었으니, 마음에는 따르는 바가 없었소」

⇒ 고구려가 수나라를 마음대로 공격하였음을 알 수 있고, 고구려가 수나라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다.

즉, 고구려는 수나라의 종속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수양제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④ 원이 표문을 올려 사례함과 아울러 상서(祥瑞)를 축하하면서 왕으로 봉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고조는 원을 우선 책봉하여 왕으로 삼았다.

⇒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3) 개황18년(589년) 기사

원이 말갈의 무리 만여 기병을 거느리고 요서에 침구하였는데 영주총관 위충이 치니 달아났다. 고조가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한왕 (양)량(諒)을 원수(元帥)로 삼고 수군과 육군을 총동원하여 고려를 치도록 명하는 한편, 조서를 내려 그 작위를 폐지하였다. 이때 군량 수송이 이어지지 않아 육군(六軍)의 먹을 것이 모자라고, 또 군사가 임유관을 나가서는 전염병마저 만나 군대가 (기세를) 떨치지 못하였다. (군대가) 요수에 이르자, 원(영양왕)도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황상에게 표문을 올려 칭하기를,‘요동 분토(糞土)의 신, 원’운운하였다. 황상은 군대를 철수하고, 처음과 같이 대우하니, 원도 해마다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이 기사를 보면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는 고구려가 먼저 공격을 하였음을 알수 있다.

즉, 고구려의 선공(先攻)과 수나라의 대응이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라는 것이다.

또한 이 기사로 위에 나오는 ④번 기사가 거짓임을 알수 있다.

 

④ 원이 표문을 올려 사례함과 아울러 상서(祥瑞)를 축하하면서 왕으로 봉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고조는 원을 우선 책봉하여 왕으로 삼았다.

어떻게 거짓임을 알 수 있는가?

 

말과 행동이 다를 때 말과 행동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가? 행동이 진실이다.

위 ④와 같이 고구려 임금이 왕으로 봉해줄 것을 청하고, 그 청에 따라 수문제(고조)가 고구려 임금을 왕으로 책봉해 주는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는 말(문장)과

고구려 임금(원)이 말갈의 무리 만여 기병을 거느리고 요서에 침구하여 수나라가 수군과 육군(30만)을 총동원하여 고려를 치도록 했다는 행동(문장)을 보일 정도로 사이가 나빴나는 증거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가?

 

행동이 진실이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가 좋았다면 고구려가 수나라를 먼저 공격할 리가 없다.

고구려가 수나라를 먼저 공격한 것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사이가 나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구려 임금이 왕으로 봉해줄 것을 청하고, 그 청에 따라 수문제(고조)가 고구려 임금을 왕으로 책봉해 주는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는 말은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위에 있는 ④번의 기사는 누군가(당태종?) 나중에 거짓말을 끼워 넣은 것(가필)으로 보인다.

 

한편, 수서 본기를 보면

 

고구려가 만여명을 동원하여 본격적으로 수나라를 치니 수문제(고조)가 분개하여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10에 8~9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 수서 고려전을 보면 육군(六軍)의 식량이 부족하고 전염병 때문에 수나라 군대가 풀이 죽었는데도 수나라 군대가 요수에 이르자 고구려 왕이 두려워 했다는 얘기나 사죄하고‘요동 더러운 땅의 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30만 대군이 천리(里)를 굶으면서 행군하였는데 그러한 다 굶어죽기 일보직전의 반 송장 군대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왕이 어디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천리를 넘는 길을 전염병에 시달린 병들어 죽기 직전의 산 송장 군대에게 사죄하는 경우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는 법이고 뻥을 쳐도 한도가 있는 법이다.

 

굶고 병들어 죽기 일보 직전의 군대는 툭 치기만 해도 쓰러지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 굶고 병들어 죽기 직전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했다거나 사죄하면서‘요동 더러운 땅의 신’운운

했다는 얘기는 참으로 해도 너무한 거짓말이고 뻥을 쳐도 너무 뻥을 친 것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 봐도,

수서 본기에 『한왕 (양)량 군대가 전염병을 만나 되돌아왔는데,죽은 자가 10에 8, 9였다』는 것을 보아

위에 있는 『(군대가) 요수에 이르자, 원(영양왕)도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황상에게 표문을 올려 칭하기를,‘요동 분토(糞土)의 신, 원’운운하였다』는 명백한 거짓말임에 틀림이 없다.

 

적이 두려워하여 사죄를 받고 승리해서 돌아간 군대가 어떻게 죽은 자가 10에 8~9가 되는가?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은 가필을 한 것이기 때문인데 이는 수서가 완성되고 난 뒤 나중에 어떤 놈(당태종?)이 거짓말을 끼워넣은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수서 고려전은 믿을게 못된다는 것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