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22,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67, 7. 남조의 침공-34)
차례
가.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상) 2. 구당서 토번전(하)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다.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나.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1) 연표 2) 해설(남조의 침공)
2) 남조의 침공(해설)- 3
<863년>
남조가 교지를 함락시키고 안남도호 채습을 죽였다.(863년 1월7일) 남조가 2번의 교지 점령에 죽인 오랑캐가 15만 명이었다.(860,12.3일, 863.1.7일) 남조의 장수 양사진이 2만 군사로 교지를 점거하자 계동의 이족과 요족은 모두 그에게 항복하였다.(1월)
○ 강승훈의 등장 남만이 좌우강을 노략질하고 옹주를 압박하자 영남서도절도사 정우가 스스로 무신(武臣)에게 옹주를 맡겨달라고 하였다. 이에 의무절도사 강승훈에게 영남서도절도사 정우를 대신토록 하고 군사를 뽑아 데려 가도록 하였다.(3월)
강승훈이 장안에 도착하여 그를 영남서도절도사로 삼고 형, 양, 홍, 악, 4도에 군사 1만을 징발하여 그에게 주었다.(4월) 강승훈이 병사가 적다고 거절하니, 마침내 여러 도에서 병사를 크게 일으켜 5만을 보냈다.
○ 안남도호부 철폐 안남도호부가 있던 교지가 함락당함에 따라 당은 안남도호부를 철폐하고, 해문진에 임시 교주(行交州)를 두었다. 송융을 임시 교주자사로 삼고 강승훈은 군의 행영을 관장토록 하였다.(6월) 서천절도사 두종을 봉상절도사에 충임하였다.(윤6월)
다시 해문에 안남도호부를 두고 송융을 경략사로 삼아 산동의 병사 1만명을 징발하여 그곳에 진수하게 하였다.(7月)
영남동도절도사 위주가 남만족이 옹주로 향할 것이니 군사를 용주와 등주에 나누어 주둔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8월)
◎ 남조의 서천(성도) 침공 남조가 서천을 노략질하였다(12월)
< 864 >
남조는 안남을 차지하자 군대를 돌려 수주를 약탈하여 당의 서남지역을 흔들어 놓았다. 서천에서 보고하기를 남조가 수주를 노략질 하였는데 자사 유사진이 그들을 깨뜨리고 1천 여명을 잡았다고 하였다.
용관경략사 장인을 겸구당교주사로 삼고 해문진의 병사를 보태어 2만5천명을 채워 장인으로 하여금 안남을 빼앗도록 하였다.(1월)
강승훈이 옹주에 도착하니 만족의 노략질이 더 치열하였다. 이에따라 충무, 의성, 평로, 선무, 연해, 천평, 선흡, 절서 등의 8개도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강승훈에게 주도록 하였다(3月)
남조는 만족 6만을 인솔하여 옹주로 진격하자 강승훈은 8개 도의 병사 1만을 파견하여 그것을 막았으나 5개 도의 병사 8천명이 모두 죽었고 오직 천평절도의 군사만이 늦게 도착하여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강승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절도부사 이행소가 무리를 이끌고 해자와 목책을 만드니 남조가 포위망을 완성하였다. 천평절도의 소교가 병사 300을 거느리고 밤에 남만의 병영을 불사르고 500여명을 죽이니 남만이 크게 놀라 하루 사이에 포위를 풀고 떠났다. 강승훈이 마침내 군사 수천을 풀어 뒤쫓았는데 죽인 오랑캐가 300을 넘지 않았는데 조정에 남만을 대파하였다고 보고하였다..(3월)
남만을 격파한 공로로 상받은 사람은 모두 강승훈과 가까운 사람들이고 남만의 병영에 불지를 장교는 한 계급도 승진시키지 아니하니 군대 안에서는 원망하고 화를 내었다.(4월)
서천에서 보고하기를 양림(兩林)의 귀주(鬼主.수령)가 남조군을 격파하여 죽이거나 포로로 잡은 것이 아주 많았다고 하였다.(7월)
○ 강승훈의 좌천 영남동도절도사 위주가 강승훈의 행위를 알고 재상에게 편지를 써서 알리니 강승훈을 우무위대장군 분사로 좌천시키고, 장인을 영남서도절도사로 삼고 용관의 4개 주에 별도로 경략사를 두었다.
남조는 옹주가 비고 바닥난 것을 알고 다시 침공하지 않으니 장인은 군대를 전진시켜 안남을 빼앗지 않았다.
○ 고병의 등장 하후자가 고병을 천거하여 장인을 대신하게 하자, 고병을 안남도호 본관경략초토사로 삼고 장인이 거느린 병사를 다 그에게 주었다.(이 기사는 구당서 남조전과 자치통감이 년도가 다른데 자치통감을 채택하여 쓴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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