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1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63, 7. 남조의 침공-30)

상 상 2017. 4. 26. 18:19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18,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63, 7. 남조의 침공-30)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1) 연표

 

연표3: 비교연표- 12

남조

(신구당서 남만전 중 남조전)

(자치통감 등)

872

 

노룡(盧龍)절도사 장윤신 사망, 그 아들 장간회 노룡유후 승계(872125)

 

병부시랑 우종을 산남동도절도사로 삼았다(217)

노룡유후 장간회. 평주(平州)자사 장공소에 쫒겨나 장안(長安)으로 도망하니,

제위장군으로 삼았다.(3).

 

장공소를 노룡유후로 삼았다.(4

 

산남동도절도사 우종의 벼슬을 깎아내렸는데 이는 위보형의 참소에 의한 것이다(57)

상서죄승 이당, 왕풍 등 여러 사람의 벼슬을 까아내렸는데 이는 우종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다(512~15)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우종을 깎아내려 소주자사로 삼았다.(5)

장공소를 노룡절도사로 삼았다(6)

이장을 선흡절도사로 삼았다(727)

귀의(歸義)절도사 장의조 사망하자 사주(泗州)장사 조의금을 귀의절도사로 삼았다(8)

 

"이후로 잦은 병란으로 당 조정과 단절되고, 회골(위구르)이 감주(甘州) 장액을 함락시키니, 귀의절도(농우도) 대부분은 강(()족에 점거되었다" : 농우도 재상실

진무절도사 이국창(사타족 주야적심). 방자·전횡하여 관리들을 죽였으나 평정할수없어, 대동군(大同軍) 방어사 삼았는데, 부임하지 않았다(12)

873

[함통(咸通)] 14(873)에 탄작이 다시 촉에 침입하였다.

 

배를 연결하여 대도하(大度河)를 건넜는데, 자사 황경복(黃景復)이 이를 공격하여 물리쳤다. [그들] 무리가 대도하를 따라 남하하여, 밤에 상류를 뗏목으로 건넌 군대와 함께 물가의 여러 둔영을 협공하니, ()경복이 패주하여 여주(黎州)로 돌아 왔다. (: 남조)이 뒤를 밟아 추격하다가 오히려 ()경복에게 패하였다.

 

마침 만(남조)[황경복을] 뒤쫓아 오다가 되돌아가 대도하를 공격하였다. [()] ()를 누이고 북소리를 멈추며 청하여 말하기를, “탄작이 천자에게 글을 올려 억울한 일을 아뢰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둔영의 병사들이 이를 믿고 싸우지 않았다. 다리가 완성되어 [남쪽에 있던 만이 대도하(大度河)] 건너와, 여주(黎州)가 함락되었으며. [만이] 마침내 아주(雅州)를 공격하여 정변군(定邊軍)을 치니, 사졸들이 붕궤되어 공주(邛州)로 들어갔다.

 

이 소식으로 성도가 크게 진동하여, 사람들은 도망하여 옥루관(玉壘關)으로 들어갔고 병사들은 성벽으로 올라갔다.

 

탄작이 사자 왕보성(王保城) 40인을 보내 표신(驃信)의 서한을 가지고 가서 절도사 우총(牛叢)에게 전하였는데, 길을 빌려 입조하고자 하니, 촉왕의 옛 궁궐에서 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총이 허락하려 하자, 양경(楊慶)이 간하여 말하기를, “(남조)들은 신의가 없으니, 저들이 예를 낮추고 말을 달콤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속이려는 것입니다. 청하건대, 그 사자를 베고, 두 사람만 남겨 서찰을 돌려보내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우총이 [만의 사자를] 책망하며 남조를 위협하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우총(牛叢)은 오히려 근교의 민가와 누각을 불태우고 군대를 엄중하게 단속하여 굳게 지키는 계책을 썼다.

 

그러자 탄작이 신진(新津)에 이르렀다가 군대를 돌려 검중(黔中)을 침략하였다.

경략사 진광모는 두려워 형남(荊南)으로 달아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조가] 여주(黎州)를 공격하였는데, ()경복(景復)이 이를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당 의종. 불교행사를 사치가 극에 달하게 하다(873329).

남조가 서천과 검남을 노략질하니 검중경략사 진광모가 군사가 적어 성을 버리고 형남으로도주하여 형남절도사 두종이 그를 잡아 가두었다(5)

진광모를 참수하고 그 집안의 재물을 적몰함(62)

 

왕탁을 선무절도사에 충임하였는데 이는 위보형이 그를 배척한 것이다.

 

당 의종의 병환이 아주 위독해지니, 좌군중위(환관) 유행심과 우군중위(환관) 한문약은

나이 어린 보왕 이엄을 세움(716)

이엄을 황태자로 삼았다.(718).

 

41세 의종 사망. 위보형을 섭총재로 하였고 12세 희종 이엄 즉위(719)

 

위보형을 하주(賀州)자사로 좌천시킴(9).

한군웅에게 한윤중이라는 이름을 하사함(9)

 

위보형의 벼슬을 깎아 애주의 장매 현령이 되게 하고 얼마 안있어 자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10)

 

서천절도사 노암을 형남절도사로 옮겼다(117)

소업을 하동절도사에 충임하였다(11)

노암을 다시 깎아 신주자사로 하였다(12)

 

 

* 전령자(原名진령자.?~소마방사~(집권)875~886. 검남서천감군사 ~893) : 환관. 희종정권장악

* 고병(821~안남도호 864~정해 866~868.검남서천 875~형남절서 878~회남절도사 879~887) : 발해. 안남 탈환, 남조 격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