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宣宗: 16대 군주)이 힘써 멀리 떨어져 있는 땅을 위무하기 위해 사자를 보내 영주(靈州)에 가서 [회골의] 추장을 살피자 회골이 이로 인해 사자를 따라 사람을 보내 경사에 왔고, 황제가 이에 올록등리라골몰밀시합구록비가회건가한(嗢祿登里邏汨沒蜜施合俱錄毗伽懷建可汗)이라고 책봉했다. 이후 10여 년이 지나 다시 한 번 토산품을 바쳤다. <신당서 회홀전> 당 선종 대중 10년(856년) 3월 신해일(8일), 조서를 내렸다. “회골은 나라에 공로를 세웠고 대대로 혼인하여 신하라고 칭하고 공물을 바쳐서 북쪽의 변경에 경계하는 일이 없게 하였다. 회창(당무종의 연호) 연간에 오랑캐의 조정이 없어지고 어지러워서 가한이 달아났는데 간신(이덕유)에게 위촉하여 일을 담당하게 하였더니 급히 죽여서 없앴다. 근래 항복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방력(방륵)이 지금 가한이 되었고 아직 안서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고 하니, 그가 다시 아장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응당 책명을 덧붙여 주도록 하라.” 10월 을유일(15일)-이후, 황상이 사신을 파견하여 안서에 가서 회골을 누르고 어루만지도록 하니 사자가 영무에 도착하였는데 마침 회골가한이 사자를 파견하여 입공하였으며 11월 신해일(12일)에 올록등리라골몰밀시합구록비가회건가한으로 책배하고 위위소경 왕단장을 사신에 충임하였다.(十一月,辛亥,冊拜為嗢祿登裡羅汩沒密施合俱錄毘伽懷建可汗,以衛尉少卿王端章充使。) <이상 자치통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