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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
[원화] 8년(813) 회골이 화친을 청했는데, 사자 이난주가 회골로 돌아갈 때 삼전에서 연회를 베풀고 은으로 된 그릇과 비단을 내려주었다. 이해에 회골 수천 기가 벽제천에 오자 변경의 군대가 대비를 했다. 12월 2일 귀국하는 회골 마니(摩尼: 마니교도 또는 마니승) 8명에게 연회를 베풀고 그들에게 중서[성]에 가서 재신(宰臣)을 만나게 했다. 이전에도 회골이 화친을 청하면 헌종(憲宗:11대)이 관리들에게 계산해보게 했는데, 예식 비용이 5백만 관이었고 마침 내적으로 토벌할 일이 있어 그 화친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회골이 마니[교]를 신봉하고 있기 때문에 재신들이 그들과 화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조칙을 내려 종정소경 이효성을 회골 사신으로 보내면서 태상박사 은유를 부사로 삼아 그들이 와서 청한 뜻[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구당서 회홀전>
회골이 청혼하자 관리가 드는 비용이 5백만 정도가 든다고 했고, 황제가 바야흐로 안으로 강한 절도사들을 토벌해야만 하기 때문에 종정소경 이[효]성과 태상박사 은유를 보내서 [혼인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당서 회홀전>
당 헌종 원화 8년(813년) 10월, 회골에서 군사를 발동하여 사막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와 유곡 서쪽에서부터 토번을 공격하였다. 임인일(23일), 진무군과 천덕군에서 주문을 올려서 회골의 수천 기병이 백제천에 이르러서 변방의 군대가 엄하게 경계한다고 하였다.<자치통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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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 |
[원화] 13년(818) 10월에 토번이 우리 유주(宥州: 영주성-靈州城)와 봉상을 포위하니, 황상이 사신을 보내 수호(修好)하도록 했다. 같은 달에 영무(의 군대)가 정원성(定遠城: 영하성 영하현 동북)에서 토번 2만 명을 대패하고, 2천 명을 살육했으며, 절도부사 한 명, 판관장행(判官長行) 39명을 포로로 잡고, 양, 말 등을 노획한 것이 매우 많았다. 평량진 알사 학자(郝玼)가 2만여 무리를 격파하고, 원주성을 수복하였고, 양, 말 등을 노획하니 그 수를 알지 못했다. 하주절도 전진이 영무에서 또 3천여 명을 격파했다. 11월에 염주에서 상소하기를, 토번이 하곡으로 들어와, 하주의 군대가 5만 여를 격파했다. 영무의 군대가 장락주의 외성을 격파하고 건물과 장비 등을 불살랐다. 서천절도사 왕파가 아화(사천성 송반현 서남)와 서계(棲雞: 서계성이다. 사천성 면양현 부근)등 성을 공격해 빼앗았다. <구당서 토번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