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모두 1,133,800명이었는데 200만이라 일컬었으며,
군량을 나르는 자는 그 배가 되었다.
남쪽의 상건수(桑乾水) 가에서 사제(社祭)를 지내고, 임삭궁(臨朔宮) 남쪽에서 상제(上帝)에 제사지내고,
계성(薊城) 북쪽에서 마조성(馬祖星)에 제사지냈다.
황제가 친히 조절하여 군대마다 상장(上將)과 아장(亞將)을 각각 1명씩 두고,
기병은 40대(隊)로 하고, 각 대는 100명, 10대가 1단(團)이 되게 하였으며,
보병은 80대로 하고 나누어 4단으로 하였으며, 단마다 각각 편장(偏將) 1명을 두었다.
그 갑옷, 투구, 갓끈, 인장끈, 깃발은 단마다 색깔을 다르게 하였다.
매일 1군씩을 보내 서로 40리 떨어지게 하고 진영을 연이어 점차로 나아가니, 40일만에야 발진이 다 끝났다.
앞과 뒤가 서로 이어지고 북과 나팔소리가 서로 들리고 깃발이 960리에 뻗쳤다.
어영(御營) 안에 12위(衛)·3대(臺)·5성(省)·9시(寺)를 합쳐서 나누어 소속시키고,
내외 전후 좌우(內外前後左右) 6군을 뒤에 출발시켜
또 80리나 뻗쳤으니, 근고에 군대 출동의 성대함이 이와 같은 것이 없었다.
[원문]
凡一百十三萬三千八百人, 號二百萬. 其餽輸者倍之.
宜杜 於南桑乾水上, 類上帝於臨朔宮南, 祭馬祖於薊城北.
帝親授節度, 每軍上將․亞將各一人,
騎兵四十隊. 隊百人, 十隊爲團.
步卒八十隊, 分爲四團, 團各有偏將一人,
其鎧冑․纓拂․旗旛, 每團異色.
日遣一軍, 相去四十里, 連營漸進, 終四十日發,
乃盡. 首尾相繼, 鼓角相聞,
旌旗亘九百六十里.
御營內, 合十二衛․三臺․五省․九寺, 分隸 內外․前後․左右六軍, 次後發, 又亘八十里.
近古出師之盛, 未之有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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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113만 대군이나 200만 대군이라고 일컬었다!
군량을 나르는 자는 그 배가 되었다고 하니
고구려 공격에 동원된 군사가 300만 이상입니다.
(군량을 나르는 사람들도 사실 그 사람들도 군인, 군속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수송병이고, 군수 사령부 소속인 군인이니, 군인입니다.)
따라서 고구려 공격에 동원된 군사가 300만 이상이니 역사상 이런 초대규모의 전쟁은 없었습니다.
2) 또, 순수한 군사 113만을 200만이라 일컬었다고 하는 것은 중국역사에서 보통 나오는 수법입니다.
두배 부풀리는 것은 보통입니다.
200만 대군이 쳐들어간다! 고 허풍을 치고 상대방을 놀라게 해서 전의를 상실케하는 수법은 흔히쓰는 중국사람들의 수법입니다.
3) 군대 24군 113만을 출발 시키는데만 40일이 걸렸고
앞과 뒤가 서로 이어져 960리에 뻗쳤다 고 하니 엄청난 규모입니다.
게다가 어영군사 80리를 합하면 군대 길이가 천리가 넘는데 이런 규모는 역사상 처음있는 규모입니다.
이렇게 황제라는 사람이 직접 전쟁에 나서는 것(친정)도 드믄 일입니다
따라서 삼국사기(수서)에서도‘근고에 군대 출동의 성대함이 이와 같은 것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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