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청구(靑丘)의 바깥에서 모두 직공(職貢)을 닦고, 벽해(碧海)의 가장자리에서 함께 정삭을 받드는데,
드디어 다시 보물을 빼앗고 왕래하는 길을 막아, 죄없는 사람들에게 잔학함이 미쳤으니, 정성을 바치고도 화를 당하게 되었다.
수레를 탄 사신이 해동에 미치고, 정절(旌節)이 도달하려면, 번국의 경계를 지나야 하는데, 도로를 막고 왕의 사신을 거절하여,
임금을 섬길 마음이 없으니, 어떻게 신하의 예라고 할 수 있느냐?
이래도 참는다면 무엇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냐?
또 법령이 가혹하고 부세가 번거롭고 무거우며, 힘센 신하와 호족이 모두 국정의 기틀을 쥐고,
붕당끼리 결탁하는 것으로 풍속을 이루고, 뇌물을 주고 받음이 물건을 사고 파는 것과 같아서, 억울함이 풀어지지 않는다.
해마다 거듭된 재앙과 흉년으로 집집마다 기근이 닥치고, 전쟁이 쉬지 않아 요역이 기한이 없으니,
군량 운반으로 힘이 다하고 [죽은] 몸뚱아리가 도랑과 구덩이를 메웠다.
백성들이 근심하고 고통스러우니 누구를 따를 것이냐? 경내(境內)가 슬프고 두려워 그 폐해를 견디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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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 오늘의 본문 구절도 이른바 수나라 황제의 고구려 공격 조서로써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를 수나라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1) 또 청구(靑丘)의 바깥에서 모두 직공(職貢)을 닦고, 벽해(碧海)의 가장자리에서 함께 정삭을 받드는데,
드디어 다시 보물을 빼앗고 왕래하는 길을 막아, 죄없는 사람들에게 잔학함이 미쳤으니,
정성을 바치고도 화를 당하게 되었다.
수레를 탄 사신이 해동에 미치고, 정절(旌節)이 도달하려면, 번국의 경계를 지나야 하는데,
도로를 막고 왕의 사신을 거절하여, 임금을 섬길 마음이 없으니,
어떻게 신하의 예라고 할 수 있느냐?
이래도 참는다면 무엇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냐?
⇒ 위 문장을 보면,
청구(靑丘)의 바깥에서 수나라에 조공을 하려고 고구려 (경계)를 지나면 보물을 빼앗고 왕래하는 길을 막아
(그들이 수나라에) 정성을 바치고도 화를 당하게 되었다.
또한, 수나라 사신이 고구려의 경계를 지나려고 하면
지나가지 못하게 막고 수나라 사신을 (마음대로) 거절하는 등,
고구려가 (수나라의) 임금을 섬김 마음이 없다. 라고 수나라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만이 고구려가 수나라를 섬기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수나라도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이것을 인증(人證: 인적증거)이라고 합니다.
즉, 고구려와 수나라는 대등한 나라였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유일 초강대국인 수나라와도 이러한 관계였는데
그 이전 중국 여러나라들에게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따라서 또한번 강조하건대
여태까지 옛 중국 어느 나라가 고구려 임금을 무엇에 삼았다든지
(예,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대장군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으로 삼았다.)
무엇에 봉했다든지(예, 사지절 영동이교위 요동군공 고구려왕으로 봉하였다.)
무엇을 주었다든지(예, 영동장군(寧東將軍)을 주었다.)하는 것은
다 거짓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무슨 조공하였다 라는 말은 터무니 없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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