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48, 구당서 돌궐전-11) 끝.

상 상 2015. 2. 16. 17:33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48, 구당서 돌궐전-11) .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홀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구당서 돌궐전 출처:

1) 번역문: 동북아 역사넷/ 도서/ 중국정사 외국전/ 舊唐書 卷194돌궐열전(突厥列) 144

2) 원문: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免費使用//正史/舊唐書/ 列傳/ 卷一百九十四 上

번 역 문

원 문

10. 등리라는 것은중국 말로 과보(인과응보의 결과?)와 같다.

등리가 나이가 어려서 등리가한의 어머니,즉 돈욕곡의 딸이 그 소신(小臣) 어사달간과 간통하고 국정에 간여하게 되자 돌궐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았다. 등리는 종숙부(從叔父) 두 사람에게 병마를 나누어 맡게 했는데, 동쪽에 있는 자를 좌살(左殺), 서쪽에 있는 자를 우살(右殺)이라 불렀고, 그의 정예(精銳)가 모두 두 살()의 휘하에 나뉘어져 있었다. 개원 28(740)에 황제는 우금오[]장군 이질에게 새서를 가지고 가서 등리를 가한으로 책립하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등리[가한]과 그의 어머니가 서살(西殺)을 유인해 베고 그의 백성을 모두 병합하자 좌살이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해 군대를 보내 등리[가한]을 공격해 죽이고 [자신이] 자립해 오소미시가한이라 불렀다. [하지만] 좌살 또한 국인들이 따르지 않고 발실밀 부락이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자 좌살이 크게 패해 몸만 빠져 나와 달아나서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지게 되었다. 서살의 처자와 묵철의 손자인 발덕지 특근, 비가가한의 딸인 대락공주, 이연가한의 소처(小妻)인 여새복, 등리가한의 딸인 여촉공주, 아포사힐리발 등이 모두 그 부락 백성들을 이끌고 차례대로 와서 항복했다. 천보 원년(742) 8월에 항복한 돌궐 사람들이 서울(장안)에 오자 황제가 먼저 [그들을] 태묘(太廟)에 고하게 한 다음에 전정(殿庭)에서 만났고 화악루에 행차해 잔치를 열어주며 황제가 부()와 시()를 지어 그 일을 기록하게 했다.

登利者猶華言果報也登利年幼其母即暾欲谷之女與其小臣飫斯達干姦通干預國政不為蕃人所伏登利從叔父二人分掌兵馬在東者號為左殺在西者號為右殺其精銳皆分在兩殺之下二十八年上遣右金吾將軍李質齎璽書冊立登利為可汗俄而登利與其母誘斬西殺盡併其眾而左殺懼禍及己勒兵攻登利殺之自立號烏蘇米施可汗左殺又不為國人所附拔悉密部落起兵擊之左殺大敗脫身遁走國中大亂西殺妻子及默啜之孫勃德支特勤毗伽可汗女大洛公主伊然可汗小妻余塞匐登利可汗女余燭公主及阿布思頡利發等並率其部眾相次來降天寶元年八月降虜至京師上令先謁太廟仍於殿庭引見御華萼樓以宴之上賦詩以紀其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