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10대 산상왕 본기- 5

상 상 2011. 12. 9. 18:24

12 년 (AD 208) : 돼지를 쫓다 주통촌에서 여인을 만났다.

[번역문]

12년(208) 겨울 11월에 교제(郊祭)에 쓸 돼지가 달아나서 담당자가 쫓아가서 주통촌(酒桶村)에 이르렀으나 머뭇거리다가

잡지 못하였는데, 20세 쯤 되는 아름답고 요염한 한 여자가 웃으면서 앞으로 가서 잡으니 그 후에야 쫓아가던 사람이 잡을 수 있었다.

 

왕은 그것을 듣고 이상하게 여겨, 그 여자를 보려고 밤에 몰래 여자의 집으로 가서, 시종을 시켜 말하게 하였다.

그 집에서는 왕이 온 것을 알고 감히 거절하지 못하였다.

 

왕은 방으로 들어가 여자를 불러서 관계하려 하자, 여자가 고하였다.

“대왕의 명을 감히 피할 수 없으나, 만약 관계하여 아들을 낳으면 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왕은 그것을 허락하였다. 자정이 되어 왕은 일어나 궁으로 돌아왔다.

 

13 년 (AD 209) : 왕후는 왕과 관계한 여자를 죽이려고 하였다.

[번역문]

13년(209) 봄 3월에 왕후는 왕이 주통촌 여자와 관계한 것을 알고 질투하여, 몰래 군사를 보내 죽이려고 하였다.

그 여자가 듣고 알게 되어 남자 옷을 입고 도주하니 [군사들이] 쫓아가 해치려고 하였다.

 

그 여자가 물었다. “너희들이 지금 와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 왕의 명령이냐 왕후의 명령이냐?

지금 내 뱃속에 아들이 있는데 진실로 왕이 남긴 몸이다. 내 몸을 죽이는 것은 가하나, 왕자까지도 죽일 수 있겠느냐?”

군사들이 감히 해치지 못하고 와서 여자가 말한 대로 고하니, 왕후가 노하여 기필코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여자의 집으로 가서 “네가 지금 임신하였는데 누구의 아들이냐?”고 물었다.

 

[여자가] 대답하였다.

“첩은 평생 형제와도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감히 성이 다른 남자와 가까이 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뱃속에 있는 아들은 정녕 대왕이 남긴 몸입니다.”

 

왕은 위로하고 선물을 매우 후하게 주고 돌아와서는 왕후에게 말하니, [왕후가] 결국 감히 해치지 못하였다.

가을 9월에 주통[촌]의 여자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왕은 기뻐하며 “이것은 하늘이 뒤 이을 아들을 나에게 준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교제(郊祭)에 쓸 돼지의 일에서 시작되어 그 어미를 침석에 들게 하였으므로, 그 아들의 이름을 교체(郊彘)라 하고,

그 어미를 소후로 세웠다.

 

이전에 소후의 어머니가 아이를 배어 낳기 전에 무당이 점쳐 말하기를 “반드시 왕후를 낳을 것이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기뻐하고 낳은 후 이름을 후녀(后女)라고 하였다.

 

겨울 10월에 왕은 환도로 도읍을 옮겼다.

 

17 년 (AD 213) : 봄 정월에 교체를 왕태자로 삼았다.

[번역문]

17년(213) 봄 정월에 교체(郊彘)를 세워 왕태자로 삼았다.

 

21 년 (AD 217) : 한나라 사람 하요가 백성을 데리고 투항

[번역문]

21년(217) 가을 8월에 한나라의 평주(平州) 사람 하요(夏瑤)가 백성 1천여 가(家)를 데리고 투항해 오자,

왕은 그들을 받아들이고 책성(柵城)에 안치하였다.

겨울 10월에 천둥과 지진이 있었고, 동북쪽에 살별[星孛]이 나타났다.

 

23 년 (AD 219) : 봄 2월 그믐 임자에 일식이 있었다.

[번역문]

23년(219) 봄 2월 그믐 임자에 일식이 있었다.

 

24 년 (AD 220) : 4월에 이상한 새가 왕궁 뜰에 모여들었다.

[번역문]

24년(220) 여름 4월에 이상한 새가 왕궁 뜰에 모여들었다.

 

28 년 (AD 224) : 왕의 손자 연불(然弗)이 태어났다.

[번역문]

28년(224) 왕의 손자 연불(然弗)이 태어났다.

 

31 년 (AD 227) : 여름 5월에 왕이 죽어 산상릉에 장사지내고

[번역문]

31년(227) 여름 5월에 왕이 죽었다.

산상릉(山上陵)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산상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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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지금 또 교제(郊祭)에 쓸 돼지가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사건은 제 2대 유리왕 때 두 번 일어나 한번은 대신을 죽이는 사건으로 번지고,

또 한번은 서울(수도)를 옮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졸본’에서 ‘국내’로)

 

이번에 또 교제(郊祭)에 쓸 돼지가 달아나 이번에는 아들(교체-郊彘)을 얻는 일이 일어납니다.

 

2) 산상왕은 주통천 여자와 사통하고 교체(교제-郊祭에 쓸 돼지의 일에서 시작되어 아들을 얻었다고 하여 교체-郊彘라고 함)를

낳습니다.(이 일은 역사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되니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3) 다음과 같은 주통천 여자의 말이 또한 중요합니다.

“첩은 평생 형제와도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감히 성(姓)이 다른 남자와 가까이 할 수 있었겠습니까?”

⇒ 이 말로써 삼국시대에는 성(姓: 이씨, 김씨와 같은 성씨)이 없었다는 설이 허구임을 또한번 알수 있습니다.

 

4) 산상왕 2년에 환도성을 쌓고 지금(산상왕 13년) 서울을 옮긴 것입니다.

산상왕이 수도를 옮긴 까닭은 왕위다툼으로 일어난 서울(수도)에서의 난리와 발기가 한나라 군사를 끌고 들어와 전쟁이 난일,

후녀와 교체를 얻은 일 등 때문에 서울을 옮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난 날] 항복했던 호(胡)족[族]도 산상왕을 배반하므로

(근거: 삼국지) 서울(수도)을 환도성으로 옮긴 것입니다.

 

여기서 호족이란 바로 선비족을 말하는 것으로써, 제2대 유리왕 때 고구려에 항복하여 속국이 되어 지내 왔었는데,

이때 고구려가 쇠락하자 속국으로 있던 선비가 고구려를 배반하고 떠납니다.

 

5) 지금까지 고구려 때 서울(수도)을 옮긴 역사를 보면

① 처음 시조 동명성왕(주몽)이 졸본에 도읍을 하였고,(졸본)

② 2대 유리왕 때 국내성으로 천도하였으며(국내성)

③ 이제 10대 산상왕 때 환도성으로 천도 한 것입니다.(환도성)

즉, ‘졸본→국내→환도’ 입니다.

 

6) 산상능에 장사를 지냈다고 하여 왕호를 장사지낸 곳의 이름을 따서 왕호(산상왕)로 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네 번째 나왔습니다.

※ 민중왕(4대), 모본왕(5대), 고국천왕(9대), 산상왕(10대)

 

7) 연우는 동생으로, 형인 발기를 권좌에서 내쫓습니다. 형인 발기는 중국으로 도망하여 중국 군대를 끌고 조국인 고구려에 쳐들어

   옵니다. 이것이 고구려가 멸망한 역사의 원형입니다.

 

동생인 남건과 남산이 형인 남생을 권좌에서 내쫓고, 남생은 중국 당나라에 가서 중국 군대를 끌고 고구려에 쳐들어와

고구려가 멸망한 것이지요...

 

따라서 산상왕은 고구려를 망하게 한 먼 원인을 제공한 원흉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단재선생은 고구려 10대 왕을 왕호인 산상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의 이름을 따서 ‘연우왕’이라고 부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