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18, 당나라때-42 (11. 신당서 태종본기①)

상 상 2014. 3. 31. 17:18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18, 당나라때-42 (11. 신당서 태종본기①)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상)

4. 구당서 태종본기(하)

5. 구당서 고종본기(상)

6. 구당서 고종본기(하)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1. 신당서 권2 태종본기①

 

1) 원문 출처: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 원문에 들어가는 방법: 위 홈페이지/ 免費使用/ 史/ 正史/ 新唐書/ 本紀/ 卷二

번 역 문

원 문

598

태종 문무대성대광효 황제의 이름은 세민이며,고조의 둘째 아들이다。어머니는 태목순성황후 두씨이다.

※ 태어난 때: 수나라 개황 18년(598년) 12월 무오일<구당서 권 2 태종본기 >

太宗文武大聖大廣孝皇帝諱世民,高祖次子也。母曰太穆皇后竇氏。

 

태종은 사람이 총명하며 영특하고 용맹스러우며,큰 뜻을 가지고 있어,밑에 있는 벼슬하지 않은 선비들에게도 몸을 잘 굽혔다. 이때 천하는 이미 난리가 나,도적이 일어나니,(태종은) 수나라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재산을 밀어 선비들을 양성하여,호걸들과 한통속이 되었다. 장손순덕、유홍기 등이,다 사건(고구려 침략 때 징집을 피해 도망했음)으로 인해 망명하여,숨었다. 또 진양령 유문정과는 더욱 (친하여),(유)문정이 이밀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혔을 때,태종은 밤에 옥 안으로 가 만나보고,유문정과 함께 대사를 도모하였다. 이때에 백성들이 도적을 피하여 많이 성으로 들어와서,성안에는 수만명이 있었는데,(유)문정이 (진양)령을 오래하여,그중에 호걸을 알고 있어,함께 (임무를) 안배하였다. 계획이 얼마 후 정해지자,배적이 고조에게 알렸다. 고조는 처음에 허락하지 않았으나,얼마 후 허락하였다.

太宗為人聰明英武,有大志,而能屈節下士。時天下已亂,盜賊起,知隋必亡,乃推財養士,結納豪傑。長孫順德、劉弘基等,皆因事亡命,匿之。又與晉陽令劉文靜尤善,文靜坐李密事繫獄,太宗夜就獄中見之,與圖大事。時百姓避賊多入城,城中幾萬人,文靜為令久,知其豪傑,因共部署。計已定,乃因裴寂告高祖。高祖初不許,已而許之。

617

고조가 얼마 후 군대를 일으키고,대장군부를 세웠다。태종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하(군)를 돌아,그 군승(郡丞: 군내 속리 및 각종 사무를 관장한 관리) 고덕유를 목 베어 죽였다. 당나라 병사들이 서쪽으로 향해,장차 곽읍에 도착하려 하는데,때마침 비가 오래 내리고,군량 또한 다 떨어져,고조가 병사들을 태원으로 돌리려고 모의하였다. 태종이 간(諫)하여 말하기를:「의로운 군사는 천하를 위해 일어난 것이니,마땅히 곧바로 함양으로 들어가,천하를 호령해야 합니다. 지금 돌아가 성 하나를 지킨다면,이것이 바로 당신께서 도적이 되시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고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종이 군문(軍門)에서 소리내어 우니,고조가 놀래서,불러 물으니,대답하여 말하기를:「돌아가면 무리가 앞에서 흩어지고,적(敵)은 뒤에서 틈을 탈 것이니,죽고 망하는 것이 순식간이니,그래서 아버님이 슬퍼(웁니다).」고조가 깨닫고,말하기를:「일을 일으킨 사람도 너이고,성공이나 실패하는 것도 오로지 너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좌군(左軍)은 이미 먼저 되돌아 갔음으로,즉시 농서공 (이)건성과 함께 나누어 추격하였다. 깊은 밤,태종이 산 계곡에 들어가 길을 잃어버려,그 말을 버리고,그 병사와 함께 걸어서,모두와 함께 돌아왔다. 고조는 이에 (군사를)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가,날이 밝아올 즈음 곽읍에 이르렀다. 송로생이 나오지 아니하니,태종이 몇 명의 기병을 따라 그 성에 이르러,채찍을 들어 지휘하는 것이,마치 장차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하였다. (송)로생이 화가나,나와,성을 등에 지고 진을 쳤다. 고조가 (이)건성을 거느리고 그 동쪽에 있고,태종과 시소(태종의 매부)가 그 남쪽에 있었다. (송)로생 병사들이 동쪽 진영에 접근할 때,건성은 말에서 떨어졌고,(송)로생은 (말을) 타서,고조의 군대는 퇴각하였다. 태종이 남원에서 달려 언덕을 내려가,병사를 나누어 그(송노생) 군대를 쪼개 둘이 되게하고,그(송노생) 진(陣)의 배후로 나아가니,(송)로생의 병사들이 패하여 달아나,마침내 (송노생의 목을) 베었다。 진격하여 다음으로 경양에 가서,오랑캐 도적 유요자를 쳐서,깨드렸다. 당나라 병사들이 장안을 공격하여,태종은 금성방에 주둔해서,그 서북을 공격하여,마침내 이겼다. 의녕원년(617년),설거가 부풍을 공격하니,태종이 쳐서 패배시키고,머리 만여급을 베었으며,마침내 땅을 빼앗아 농우에 이르렀다. (의녕)2년(618년),병사 10만을 거느리고 동도(낙양)을 공격하였으나,이기지 못하고 돌아외,삼왕릉에 삼복을 설치하여,수나라 장수 단달의 병사 만명을 패배시켰다.

高祖已起兵,建大將軍府。太宗率兵徇西河,斬其郡丞高德儒。唐兵西,將至霍邑,會天久雨,糧且盡,高祖謀欲還兵太原。太宗諫曰:「義師為天下起也,宜直入咸陽,號令天下。今還守一城,是為賊爾。」高祖不納。太宗哭于軍門,高祖驚,召問之,對曰:「還則眾散於前,而敵乘於後,死亡須臾,所以悲爾。」高祖寤,曰:「起事者汝也,成敗惟汝。」時左軍已先返,即與隴西公建成分追之。夜半,太宗失道入山谷,棄其馬,步而及其兵,與俱還。高祖乃將而前,遲明至霍邑。宋老生不出,太宗從數騎傅其城,舉鞭指麾,若將圍之者。老生怒,出,背城陣。高祖率建成居其東,太宗及柴紹居其南。老生兵薄東陣,建成墜馬,老生乘之,高祖軍却。太宗自南原馳下坂,分兵斷其軍為二,而出其陣後,老生兵敗走,遂斬之。進次涇陽,擊胡賊劉鷂子,破之。唐兵攻長安,太宗屯金城坊,攻其西北,遂克之。義寧元年,薛舉攻扶風,太宗擊敗之,斬首萬餘級,遂略地至隴右。二年,率兵十萬攻東都,不克而還,設三伏于三王陵,敗隋將段達兵萬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