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외국의 침략(入寇-입구)를 당하여 같이 높은 존중의 예우(崇重의 禮待-숭중의 예대)를 받던
유교의 여러 신하(諸臣-제신)들이 외적(外寇-외구)를 물리칠 계책은 추호만큼도 연구해 제출(案出-안출)치 못하고
도리어 땅을 떼어주고 나라를 팔아먹자는 거론으로(割地賣國의 擧로-할지매국의 거로) 국왕을 권하는 고로,
이지백의 이 아룀(此奏-차주)은
제1로 유학하는 신하(儒臣-유신)의 나약(懦弱)을 크게 꾸짓고(熱罵-열매),
제2로 낭 불 양가를 위하여 원통함(寃-원)을 소리내고(鳴-명하고),
제3으로 국풍파를 대표하여 중화숭배자를 질타함이니,
여기에서 낭 불 양가의 국풍파들이 유교도에 대한 불평을
마음속에 품고 있음(醞釀-온양)이 이미 오래 되었음(已久-이구함)을 볼 수 있다.
이 뒤로부터 조정에서 논의하는 자(朝臣의 廷論者-조신의 정론자)가 드디어 양파로 나뉘었으니(分-분하였으니),
낭가는 매양(늘) 국체상(國體上: 국가형태상)에는 독립 자주 칭제건원(稱帝 建元: 황제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을 주장하며,
정책상에는 병사를 일으켜 북벌하여((興兵北伐-흥병북벌)
압록 이북의 옛 강토(舊疆-구강)를 회복함을 힘주어 외치었고(力倡-역창하고),
유가는 반드시 존화주의(尊華主義-중국 숭상주의)의 견지에서 국체(國體: 국가형태)는 중화의 속국됨을 주장하고,
따라서 그 정책은 비굴한 언사와 후하게 물건을 받침(卑辭厚幣-비사후폐)으로 대국을 섬겨(事-사하여)
평화로 1국을 보전(保-보)함을 힘주어 외치어(力倡-역창하여) 피차 반대의 지위에 서서 항쟁하였었다.
예를 들면 현종 말년에 발해의 중흥을 보조하여 거란을 쳐서 옛 강토(舊疆-구강)를 회복하자는 곽원(郭元)이 있는 반면에
본토를 삼가 지켜(謹守-근수하여) 백성(生民-생민)을 보전(保-보)하자는 최사위 등이 있으며,
덕종 초년에 압록강 다리(橋-교)를 부수어 치워버리고(毁撤-훼철)
구류된 우리나라 사신(我邦使臣-아방사신)의 회환을 거란에게 요구하다가
듣지 않으면(不聽-불청하거든) 외교를 단절(絶交-절교)하자는 왕가도(王可道) 등이 있는 반면에
외교를 근신(謹愼-조심)히 하여 전쟁으로 인한 재앙(兵禍-병화)이 없도록 하자는 황보유의(皇甫兪義) 등이 있으며,
기타 고려조(麗朝-여조) 역대 외교에 매양(늘) 자존의 경론을 발표한(發-발) 자는
거의 낭파나 혹 간접으로 낭파의 사상을 받은 자(者)요,
비굴한 언사(卑辭-비사)와 후하게 물건을 바침(厚幣-후폐)의 사대론(事大論)을 지킨(執-집) 자(者)는 대개 유교도들이었고,
불교는 자체의 성질상 정치문제에 관하여 낭가와 같이 격렬히 계통적 주장을 가지지는 아니하였으나
대개는 낭가와 접근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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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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