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삼교의 정치상 투쟁
고려태조 왕건이 불교로 국교를 삼고 유교와 화랑도 또한 같이 쓰더니(參用-참용 하더니),
그 뒤를 잇는 자식(후사-後嗣)에 이르러 왕왕 중화를 높여 사모하여(尊慕-존모하여)
광종은 중국 남방인 쌍기(雙冀)를 써서 과거를 설립하고(設-설하고) 더욱 유학을 장려할새
만일 유교의 경전을 통달하는 중국인 이러르면 대관을 시켜 후한 봉녹(厚祿-후록: 후한 봉급)을 주며,
또 신하의 좋은(美麗-미려한) 저택을 빼앗아 준 일까지 자주 있었고,
성종(成宗)때에 이르러서는(至하여는) 최승로 등 유학자(儒者-유자) 등을 등용하여
재상을 삼아 낭교도(郎敎徒-화랑교도)나 불교도는 모두 압박하고 오직 유교만을 존중 숭상(尊尙-존상)하기에 이르렀다.
불교는 원래 세상을 벗어난(出世-출세)의 교일 뿐 더러
어느 국토에 수입되는지 매양(늘) 그 나라 풍속 습관과 타협하기를 잘하고 타교를 심히 배척하지 않지만,
유교는 그 의관(衣冠), 예악(禮樂), 윤리, 명분 등으로 그 교의 중심을 삼아
전도되는 곳에는 반드시 표면까지 동화를 요구하며 타교를 배척함이 비상히 격렬하므로,
이때의 유학 장려는 낭파(화랑교도파)와 불파(불교파)를 불평히 여길 뿐 아니라
곧 전국 인민의 좋아하지 않는(不樂-불락하는) 바 이었다.
이런 관계는 대개 공자가 춘추(春秋)의 “기록해야 할 것은 기록하고 삭제할 것은 삭제한다(筆則筆削則削-필즉필삭즉삭)
주의(主義)를 높이 받드는(尊奉-존봉하는) 사가들의 삭제(削除)를 당하여, 상세한 경위(顚末-전말)는 기술할 수 없으나
불명확하고 잘 갖추어지지 않은(不明不備-불명불비한) 사책(史冊) 속에 남아있는(끼친)
한, 두 사실을 미루어 그 전체를 대략(大約-대약) 상상할 수 있다.
고려사와 동국통감을 의거(據-거)하매,
성종 12년에 거란 대장 소손녕(蕭遜寧)이 쳐들어와(入寇하여) 북계(北界)를 공격하며(攻-공하며),
또 격문(檄文)을 보내(移-이 하여) 80만 병(兵)이 장차 계속하여 이르리라 호통을 치니(恫碣-통알하니)
온 조정(擧朝-거조)가 놀라 겁을 먹고(황겁-惶怯하여)
서경 이북을 떼어(할양하여) 화해를 구걸(乞和-걸화)하자는 의론이 일어났는데,
그때 홀로 서희 이지백 양인이 있어 그것은 계책이 아님을(非計-비계임을) 따져(박론하여),
이지백은 아뢰기를(奏-주하기를) 선왕의 연등(燃燈), 팔관(八關), 선랑(仙郞) 등 회(會)를 회복하고
다른 나라(他邦-타방)의 이법(理法: 유교)을 배척하여 국가태평의 기틀(基-기)을 보존하며(保-보하며),
신명(神明: 천지신명)에 고한 연후에 싸우다가(戰-전 하다가) 이기지 못하면(不勝-불승하면)
화의함이(和-화함이) 늦지 않다 하였다.
이는 이지백이 성종의 중화문물만 즐거이 흠모하여(樂慕-낙모하여)
국민 감정에 위반함을(違-위함을) 빗댄(譏-기한) 것이라고 말하였다(云-운 하였다).
이지백이 가리킨 선왕은 고려의 선대요, 선랑회(仙郞會)는 화랑회니,
태조 이래로 대개 신라의 화랑회를 중흥하여 연등 팔관 등 회와 병행하다가,
성종이 유교를 독실하게 믿고(篤信-독신하고) 중국문화와 풍습(화풍-華風)을 숭상하여
낭(화랑), 불(불교) 양가의 회(會)를 폐지(革罷-혁파)하였던 것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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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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