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중국과의 관계
고구려와 중국은 과연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가? 삼국사기를 보면 장수왕 때부터 책봉 기사와 조공 기사가 집중적으로 나온다. 중국으로 보면 북위 때부터이고, 계속해서 남북조를 거쳐 수, 당나라때까지이다. 거기에 나오는 책봉 조공 기록이 과연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 당시 고구려와 중국과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일단 시작은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시간을 얼마나 낼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언제 끝날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부족한 글이나마 끝은 내려고 한다)
책봉이라는 기록이 사실인지 알아본다는 것은 다음 두가지를 알아보면 된다. 즉, 형식적 책봉이 있었는가와 실질적 의미의 책봉이 있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다음 두가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1. 형식적 책봉행위가 이루어 졌는가? 1) 중국에서 책봉이 있었는가? ① 책봉의 의사가 있었는가? ② 책봉 행위가 있었는가?(사신파견, 기록)
2) 고구려가 책봉을 인정하고 수용하였는가?
2. 실질적 의미의 책봉이 있었는가?
여기서 실질적 의미의 책봉이란 두 권력간에 주종관계, 중앙과 지방정부 관계가 있었다는 뜻인데, 과연 두나라 간이 주종관계에 있었는지, 아니면 상쟁(相爭), 자주 독립적 관계에 있었는지 중앙과 지방정부 관계에 있었는지 아니면,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에 있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그것은 1) 중국이 주종관계를 설정할만한 능력(국력)과 의사를 갖고 있었는가? 2) 중국의 주종관계를 설정하려는 행동(지시 명령 제어 등)이 있었는가? 3) 고구려의 능력(국력)과 의사(응낙? 불응?) 4) 고구려의 행동은 어떠했는가?(복종? 거절?) 5) 고구려의 군사권 유무와 군사행위 유무 6) 고구려의 외교권 유무와 외교행위 유무 7) 고구려의 국경 유무와 국경 통과권 유무 8) 중국에서 고구려 왕의 임명과 해임, 교체의 행위가 있었는가? 등을 가지고 알아보면 된다.
살펴볼 순서는 그 당시 중국의 최강대국이었던 당나라, 수나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우선 살펴보고, 그 다음 중국의 강대국이었던 북조의 여러나라 즉, 북위와 북위에서 갈라진 동위와 서위 그리고 동위와 서위를 이었던 북제, 북주와 고구려 관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 다음에, 약체였던 동진(東晋)과 고구려의 관계를 살펴본 다음 역시 약체였던 남조의 나머지 여러나라들과 고구려의 관계를 살펴 볼 것이다. 즉 송(유송), 제(남제), 양, 진(陳)과 고구려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 다음, 남북조가 이루어지기 전의 강대국이었던 연나라(전연, 후연, 북연)와의 관계를 알아본 다음, 전한과 후한과의 관계를 알아본 후, 마지막으로 조공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나서 이들을 전부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는 순서로 이야기를 진행 할 것이다.
즉, 글 싣는 차례는 다음과 같다.(순서는 바뀔수 있음)
1.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2.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 3. 고구려와 북위의 관계 4. 고구려와 나머지 북조와의 관계(동위 서위 북제 북주) 5. 고구려와 동진의 관계 6. 고구려와 남조와의 관계(송, 제, 양, 진) 7. 고구려와 연나라(전연, 후연, 북연)의 관계 8. 고구려와 전한, 후한의 관계 9. 조공의 실체 10.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 결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첫째로, 동북공정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하고, 그 논리적 근거의 하나가 고구려가 중국의 조공과 책봉을 받았으므로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는 주종관계이며 나아가 중앙과 지방정부 관계라는 것이며, 따라서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이므로 고구려 역사는 중국역사라고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여기에 대응하는 한국 사학자들이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고 빌빌거리기 때문이다. 병신같은 국사학자라고 하는 것들이 중국인의 시각인 춘추사관과 우리역사를 말살시키려고 한 왜놈들의 식민지 사관에 갖혀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기 때문에 올바른 대응을 못할 수밖에 없어서 나 같은 일반인들이 나선다는 말이다.
참으로 춘추사관과 식민지 사관에 갖혀있는 국사학자라는 작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하고 더 나아가 자살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역사에 무엇을 했는가? 우리역사 연구를 발전시키기는 커녕 여태까지 후퇴만 시켰다. 식민지 사관으로만 확대, 발전, 심화시켰다는 말이다.
바로 이 식민지 사관의 논리가 동북공정의 논리이다. 동북공정의 논리가 바로 식민지 사관을 확대 발전시킨 것이다. 그것은 식민지 사관과 동북공정의 논리를 비교해보면 안다.
그러니 한국의 국사학자들이라는 게 동북공정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동북공정에서 하는 말이 바로 자기 자신들이 한 말을 심화 확대 발전시킨 것이니 거기에 무슨 논박을 할수 있으며, 제대로 된 반박을 할수 있으며, 올바른 대응을 할수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하고 스스로 머리통을 부수고 자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우리역사에 무슨 기여를 했는가? 그들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그들이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누가 우리역사를 이지경까지 만들어놨는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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