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

상 상 2011. 10. 14. 08:14

삼국사기를 올리는 글월

 

신 김부식은 아뢰나이다.

 

옛날 여러 나라들은 제각기 사관을 두어 기록했으니,

맹자께서도 “진의 『사승』과 초의 『도올』과 노의 『춘추』가 모두 한가지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하옵건데 우리 해동의 삼국은 나라를 세워 지나온 자취가 장구하와,

마땅히 그 사실들이 서책에 드러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폐하께서는 늙은 저에게 편집을 하명 하셨사옵니다.

그러나 신이 스스로를 헤아려보매 모자랄 뿐인지라, 어찌 할 바를 모르겠더이다.

 

엎드려 헤아려 보건대, 성상폐하께서는 당요의 문사를 타고나시고 하우의 근검을 체득하시어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정사를 돌보시는 사이에도 널리 옛일을 섭렵하여, 신에게 이르셨나이다.

 

“오늘날 학사들과 대부들이 오경이나 제자의 서책과 진, 한시대 이래의 역대 중국 사서에는 간혹 넓게 통달해

자세히 말하는 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일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망연해져서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매우 한탄할 일이다.”

 

하물며 저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는 나라를 열고 솥의 세 발처럼 서서 예로서 중국과 교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범엽의 『한서』와 송기의 『당서』에는 모두 삼국의 열전을 두었는데,

중국의 일은 자세히 하고 외국의 일은 간략히 하여 삼국의 사실이 다 갖추어 실지 않았고,

 

또『고기』는 문자가 거칠고 졸렬하며 사적이 빠지고 없어져서,

임금의 선악과 신하의 충사와 나라의 안위와 인민의 치란을 다 드러내어 권계로 남기지 못하였으니,

이제 마땅히 삼장(재주, 학문, 식견)의 뛰어난 재사를 얻어 일가의 역사를 이루어 만세에 전해 해와 별처럼 밝게 할 일입니다.

 

신과 같은 이는 본래 뛰어난 재사가 아니옵고 더구나 깊은 식견도 없사오며, 나이를 먹어감에 정신은 날로 더욱 혼몽해져서

글 읽기는 비록 부지런히 하나 덮으면 곧 잊어버리고, 붓을 잡은 손에 힘이 없어 원고를 대해 써 내려가기가 힘드옵니다.

 

신의 학술이 굼뜨고 얕기가 이와 같은데 지난 성현들의 말씀과 옛일들은 깊고 아득한 것이 저러 하오니,

이 때문에 정력을 다해 겨우 책을 이루게 되었으나 마침내 볼 만한 것이 없어 다만 스스로 부끄러워할 따름입니다.

 

엎드려 바라옵나니

성상폐하께서는 멋대로 추려 재단한 점을 용서해 주시고, 함부로 지은 죄를 용서하시어,

비록 명산에 비장할 만한 것은 아니오나 깨진 항아리에 바르는 일은 없기를 바라나이다.

 

제 구구한 망언을 하늘의 해가 비추고 있나이다.

 

삼가 본기 28권, 연표 3권, 지 9권, 열전 10권을 찬술하여, 표와 함께 아뢰어, 위로 천람을 더럽히나이다.

 

 

(원문)

 

進三國史記表

臣某言。古之列國。亦各置史官以記事。故孟子曰。晉之乘,楚之擣扤,魯之春秋。一也。

惟此海東三國。歷年長久。宜其事實。著在方策。乃命老臣。俾之編集。自顧缺爾。不知所爲。中謝。

伏惟聖上陛下。性唐堯之文思。體夏禹之勤儉。宵旰餘閒。博覽前古。

以謂今之學士大夫。其於五經諸子之書。秦漢歷代之史。或有淹通而詳說之者。

至於吾邦之事。却茫然不知其始末。甚可歎也。况惟新羅氏高句麗氏百濟氏。開基鼎峙。

能以禮通於中國。故范曄漢書,宋祁唐書。皆有列傳。而詳內略外。不以具載。

又其古記文字蕪拙。事迹闕亡。是以君后之善惡。臣子之忠邪。邦業之安危。人民之理亂。

皆不得發露。以垂勸戒。宜得三長之才。克成一家之史。貽之萬世。炳若日星。

如臣者本匪長才。又無奧識。洎至遟暮。日益昏蒙。讀書雖勤。掩卷卽忘。操筆無力。

臨紙難下。臣之學術蹇淺如此。而前言往事幽昧如彼。是故疲精竭力。僅得成編。訖無可觀。祗自媿耳。

伏望聖上陛下。諒狂簡之裁。赦妄作之罪。雖不足藏之名山。庶無使墁之醬瓿。

區區妄意。天日照臨。

-----------------------------------------------------

* 위 번역문은 몇년 전인지 기억이 않나는데 삼국사기표를 가장 잘 번역한 글이라고 생각하여

   인터넷에서 내려 받은 것인데 지금 어느 분이 번역한 것이지를 찾아 출처를 밝히려 하였으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수 없어 출처를 밝히지 못하였음.

 

1) 삼국사기표는 삼국사기를 다 짓고 임금님께, ‘삼국사기를 올리는 글월’ 이다.

진삼국사기표에서 제일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창작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본문에서 “편집(編集)을 하명 하셨사옵니다.”라는 문장을 보면 국왕이 편집(編集)을 명령하셨음을 알수 있고,

 

“추려 재단(簡之裁)”했다는 문장을 보면, 그러한 왕의 명령에 따라 삼국사기는 기존 사료를 가지고

그것을 ‘추려 재단’(簡之裁)한 것임을 알수 있다.

 

즉 『기존 사료(史料)를 간추려서 오려붙였다』고 삼국사기를 제작한 방법을 아뢰고 있다.

즉 김부식이 자신이 자기가 마음대로 쓴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다시말해 「창작」과는 거리가 거리가 먼것임을 알 수 있다.

 

 2)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삼국사기를 쓴 원인을 말하고 있는 점이다.

 

“역대 중국 사서에는 간혹 넓게 통달해 자세히 말하는 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일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망연해져서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매우 한탄할 일이다.”

 

이 말씀은 삼국사기를 쓸 당시의 임금인 고려 인종의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인용한 까닭이 바로 삼국사기를 쓰게 된 원인이다.

 

 그 당시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외국역사에는 통달한 이가 있지만

정작 알아야 할 우리역사에는 깜깜한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이와같은 실정은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도리어 외국인이 우리역사를 더 잘 아는 해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왜인이 우리역사를 폄하해도 그런 줄 알고, 중국인이 우리역사를 왜곡해도 화만 낼줄 알지 논리적으로 반박을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역사를 전부 읽어보고 깊이 연구해 봤으며, 관련된 사료를 폭넓고 체계적으로 연구해 놓고는,

거두절미(去頭截尾)한 이상한 글을 증거라고 내놓으며 우리역사를 비웃는 소동을 벌린다.

 

그러면 그것이라도 배운 우리 역사학자라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외국인과 같이 우리역사를 비하하는 통탄할 일을 벌린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만드는 것과 같이

 

똑같은 문장을 가지고도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듯이,

 

똑같은 사서의 똑같은 문장을 가지고도

우리역사를 이상한 역사로 만들기는 손바닥 뒤집기와도 같이 쉬운 일이다.

 

우리가 우리역사 전부를 모르니 이와같은 장난이 통하는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현상을 곳곳에서 보았거니와 지금이라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우리역사에 관심을 갖고

깊고 폭넓게 전체를 알아야 할 것이다.

 

3) 여기에서 또 주목할 점은 폐하(陛下)라는 말이다.

폐하는 황제에게 쓰는 용어인 점을 생각하면 삼국사기를 쓸 당시인 고려 인종때까지도

고려시대에는 우리 임금님을 황제라고 불러왔음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