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35)

상 상 2012. 4. 10. 18:16

사론(史論):

 

처음에 태종이 요동에서 사변을 일으킬 때 간하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었다.

또 안시[성]에서 군대를 돌이킨 후에는 스스로 성공하지 못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위징(魏徵)이 있었다면 내가 이번 걸음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하였다.

 

그가 다시 정벌하려 할 때에 사공(司空) 방현령(房玄齡)이 병중에서 상소하여 간하였다.

 

“노자(老子)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폐하는 위명과 공덕은 이미 만족하다고 할 수 있으며, 토지를 개척하고 강토를 넓혔으니 역시 그칠 만합니다.

또 폐하께서 매양 한 명의 중죄인을 판결할 때에도 반드시 세 번 되풀이하고 다섯 번 아뢰게 하며,

간소한 반찬을 올리게 하고 음악을 그치게 한 것은 인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죄없는 사졸들을 몰아 칼날 밑에 맡겨두어서 비참하게 죽게 하니, 그들만은 불쌍히 여길 만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예전에 고구려가 신하의 절개를 어겼다면 죽이는 것이 마땅하고,

백성을 억압하고 못살게 했다면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며,

후일 중국의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면 없애버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지금 이 세 가지 죄목이 없는데, 앉아서 중국을 번거롭게 하여,

안으로 앞 시대의 부끄러움을 씻고 밖으로 신라를 위해 복수한다고 하니,

어찌 보존되는 것은 작고 잃는 것은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라건대 폐하는 고구려가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착하게 되도록 허락하시고,

파도 가운데의 배를 불사르고 모집에 응한 군사를 돌려보내면,

자연히 화이(華夷)가 기뻐하여 의지할 것이며 먼 곳에서는 삼가고 가까운 곳에서는 편안하게 될 것입니다.”

 

양공(梁公)이 죽을 때 한 말이 간곡하기가 이와 같았으나,

황제가 따르지 않고 동쪽 지역을 폐허로 만들어

스스로 통쾌하게 여기려 하다가 죽은 후에야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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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이 사론은 당태종의 죽음에 대한 사론입니다.

 

2) 이 사론은 당태종의 죽음에 이르러 당태종이 얼마나 큰 후회를 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중국이 입었는지, 고구려 침공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한마디로 되지도 않을 짓을 하다가 죽음에 이른 당태종에 대한 비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