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송호정의 단군 부정이 틀린 이유

상 상 2023. 8. 4. 13:24

송호정의 단군 부정이 틀린 이유

 

차례

1. 문헌 증거

2. 유물 증거

 

 

1. 문헌 증거

 

송호정은 EBS TV 방송에서 단군은 신화이지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단군조선(단군이 세운 조선)도 신화이지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즉 단군의 탄생과정이 신화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단군은 (신이지) 실존 인물이 아니고 따라서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 이야기를 들고 있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고 역사는 인간들의 이야기인데 거기에는 신들의 이야기만 있고 인간들의 이야기가 없으니 신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송호정의 주장은 거짓이며 사기이다.

왜 그런지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송호정의 주장은 거짓이다.

 

단군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단군에 대한 설화, 즉 단군설화(說話)이다.

그런데 송호정은 단군설화(說話)를 단군신화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즉 인간을 신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왜 그런지는 단군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송호정이 말한 단군 이야기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제1, 고조선(왕검조선)편 중에서 고기(古記)를 인용한 단군 기록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기(古記: 옛 기록)에 이르기를:옛날,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맏아들 이외의 아들) 환웅이 있었는데 자주 하늘 아래(天下)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기를 몹시 바랬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 (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人間)을 이롭게 할만하여(弘益人間),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그들을 다스리도록 보냈다. 환웅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마루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고 하였으니, 이분을 환웅천왕이라고 하였다. 풍백(風伯: 바람의 신)우사(雨師: 비의 신)운사(雲師: 구름의 신)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리며 교화하였다(在世理化).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령님() 환웅에게, 변화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였다. 그때 신령님(: 환웅)은 영험한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가 그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형체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얻어서 먹었는데, 금기한 지 삼칠일(三七日: 21)에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늘 단수(檀樹: 박달나무)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원한다고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임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당고(唐髙: 요임금)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기고, 나라를 1,500년 동안 다스렸다. 주나라 호왕(虎王: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명이 1,908세이다.라고 하였다.(원문: 古記云昔有桓因桓國謂帝釋也庻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遣徃理之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將風伯·雨師·雲師, 而主糓·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時有一熊一虎同穴而居, 常祈, 于神雄願化爲人時神遺霊艾一炷蒜二十枚曰, ‘爾軰食之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熊女者無與爲婚故每於壇樹下呪願有孕雄乃假化而㛰之孕生子號曰壇君王倹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 唐堯即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 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始稱朝鮮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又名弓 一作方忽山又今旀逹御國一千五百年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亰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歳)

 

위 기록에서 보듯이 고기를 인용한 단군 기록은 단군이 탄생하기까지를 쓴 부분과 단군 탄생 이후 단군이 한 일을 쓴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군이 탄생하기까지를 쓴 부분은 처음부터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까지이고, 단군 탄생 이후 단군이 한 일을 쓴 부분은 그 뒷부분부터 끝까지이다.

 

앞부분은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일로 쓰여있고, 뒷부분은 평양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고 하는 등 사람이 한 일(역사)로 쓰여져 있다.

 

송호정은 단군이 탄생하기까지를 쓴 부분을 신화라고 주장하는데 그 부분이 과연 신화인가? 송호정은 신화가 신들의 이야기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두고 말한 것이다. 거기에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송호정은 단군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신화라고 주장하고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라고 하였으므로, 단군이 탄생하기까지 등장하는 환인과 환웅, 곰과 호랑이 그리고 단군은 모두 신이라는 말인데 과연 그런가? 환인(桓因)은 하늘을 다스리는 제왕이고 환웅은 환인의 아들인데 환웅을 신웅(神雄: 신 환웅)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신()이란 서양에서 말하는 신이 아니다. 옛적에 우리 민족이 말하는 신()이란 신령한 분, 즉 신령님이다. 그러므로 신웅(神雄: 신 환웅)이란 신령님 환웅이다. 그러니 환웅은 하늘에서 태백산(太伯山) 마루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온 산신령()님이다. 그리고 곰과 호랑이는 명백히 신이 아니다(동물이다). 단군은 사람이 된 곰과 사람으로 변한 환웅이 낳은 아들이다. 즉 사람이 낳은 아들로써 인간이다. 다시 말해 단군은 사람이지 신이 아니다. 만약 단군이 신이라면 굳이 환웅이 사람으로 변화했다고 할 필요가 없고 그냥 웅녀와 혼인하면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의하면 신이 혼인하면 신을 낳기 때문이다. 사람만이 사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곰이 사람으로 되었다고 한 것이고, 환웅이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인간은 프로메테우스라는 장인의 신이 만든 창조물이지 신이 낳은 것이 아니다. , 단군이 사람이기 때문에 굳이 곰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고, 환웅이 사람으로 변했다고 하여, 그 뒤에, 혼인해서 단군을 낳았다고 한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운명의 세 여신이 예언한 "기간테스의 침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인간 영웅의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말에 제우스()는 사람(알크메네의 남편)으로 변해, 인간 여성 알크메네와 동침하고 인간 영웅 헤라클래스를 낳았다. 헤라클래스가 인간이듯이 단군도 명백히 사람이다. , 단군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에는 서양에서 말하는 신이 없다. 최소한 곰과 호랑이 및 단군은 신이 아니다. 따라서 단군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단군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다.

 

그러면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여자(사람)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것을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설화(說話)라고 하며 한문 말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고 한다. 설화를 사전에서 찾아보면「① 어느 민족이나 집단에 예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이다신화(神話), 전설(傳說), 민담(民譚등이 있다. 실제 있었던 일이나 만들어  내용을 재미있게 꾸며서 하는 .이라고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신화는 설화의 한 종류로 신들에 대한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단군이 탄생하기까지를 쓴 부분은 단군 탄생에 대한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이야기로 단군에 대한 설화, 즉 단군설화이다. 이는 시조설화이고 어느 특정인에 대한 설화이며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천강(天降)설화라고도 한다. 신화는 신에 대한 설화이고 시조설화는 시조(인간)에 대한 설화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와같이 시조설화(시조애 대한 설화)는 신화(신에 대한 설화)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시조설화와 신화의 차이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사기 은본기를 보면,

은나라 시조 설의 어머니 간적(簡狄)은 제비 알을 삼키고 설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설의 탄생에 대한 설화이지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가 아니다. 간적(簡狄)은 인간이며 제비는 동물이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나라 시조설화이고 설()설화라고 할 수 있으며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난생설화라고 하였다.

 

사기 주본기에는

주나라 시조 기()의 어머니 강원(姜原)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기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 역시 기()의 탄생에 대한 설화이지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가 아니다. 강원(姜原)은 사람이며, 거인(의 발자국)도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주나라 시조설화이고 기()설화라고 할 수 있다.

 

사기 고조본기 처음 부분에도

한나라를 세운 유방(한 고조)의 어미니 유온이 교룡과 교접하여 한 고조(유방)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 역시 유방(한 고조)의 탄생에 대한 설화이지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가 아니다. 유온은 사람이며 용(교룡)도 상상의 동물이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고조(유방)는 명명백백한 사람이다. 이것 역시 한나라 시조설화이고 한 고조(유방)설화라고 할 수 있어도 한 고조(유방) 신화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신화라고 하는 자는 사람들을 속이는 자이다.

 

이처럼 시조설화는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신화와 설화의 차이는 신과 인간의 차이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군의 탄생까지를 쓴 부분은 고조선 건국 시조설화 또는 단군설화이지 단군신화가 아니다.

 

그런데도 송호정은 단군의 탄생까지를 쓴 부분을 단군신화라고 거짓말하였다. 이는 단군은 신이지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이고, 단군이 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단군은 실존 인물이 아니며, 따라서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즉 고조선 건국 시조설화 또는 단군설화를 단군신화라고 거짓말한 것은 단군과 단군조선을 부정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송호정은 속임수를 썼다.

 

송호정은 단군의 탄생까지를 쓴 부분만 이야기하고 단군 탄생 이후 단군이 한 일을 쓴 부분은 얼버무리며 감추는 방법으로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속였다. 단군의 탄생까지를 쓴 부분은 당연히 단군의 탄생까지만 나와 있고, 단군이 조선을 세운 기록이 없다. 단군이 조선을 세운 기록은 단군 탄생 이후 단군이 한 일을 쓴 부분에 나와 있는데, 그것은 감춘 채, 단군 탄생 이야기는 신화이니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속였다. 즉 단군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속인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기를 인용한 단군 기록은 단군이 탄생하기까지를 쓴 부분과 단군 탄생 이후 단군이 한 일을 쓴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단군이 탄생하기까지를 쓴 부분은 앞서 설명하였으니 이번에는 단군 탄생 이후 단군이 한 일을 쓴 부분을 살펴보자.

 

단군이 한 일을 쓴 부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당고(唐髙: 요임금)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다.이다. 단군이 언제 어디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나라 아름을 무엇이라고 하였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문구이다. 즉 단군이 도읍을 정한 곳은 평양성이고, 그곳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는데, 그때가 당고(唐髙: 요임금)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였다는 명백한 역사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은 설화가 아니다. 즉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아니다. 단군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당고(唐髙: 요임금)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조선초기 우리 조상들은 이때가 서기전 2333년이라고 규정하였음)에 세웠기 때문에 그 뒤로 차츰 중국에 알려져, 사기 주본기 주 무왕의 기록에 조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록에 의하면, 단군은 실존 인물이고 단군이 세운 조선(단군조선)도 존재하였음이 명백하다.

 

다시 말해서 송호정은 단군이 당고(唐髙: 요임금)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나라 아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다라는 역사 기록은 감추고, 삼국유사에는 단군의 탄생까지를 기술한 부분만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단군 탄생 이야기는 신화이니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속였다. EBS TV 방송을 통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셋째, 송호정의 논리와 주장 자체가 거짓이다.

 

송호정이 감춘 것은 빼버리고 송호정이 말한 논리와 주장만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자.

송호정은 단군의 탄생과정이 신화이니 단군은 신이지 실존 인물이 아니고 따라서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리와 주장은 맞는가?

그러나 이것 역시 거짓이다.

 

그 증거로 중국 정사를 보자(이 부분은 앞서 간략하게 언급된 것임).

 

1) 사기 은본기

사기 은본기 처음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시조) ()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으로 유융씨(有娀氏)의 딸이며 제곡의 둘째 비()이다. 세 사람이 목욕을 갔다가 현조(玄鳥, 제비)가 그 알을 떨어뜨린 것을 보고, 간적이 그것을 집어서 삼켰는데 그로 인하여 임신해서 설을 낳았다.원문: 殷契母曰簡狄有娀氏之女為帝嚳次妃三人行浴見玄鳥墮其卵簡狄取吞之因孕生契。」

 

이러한 이야기는 송호정이 말하는 신화이다. 간적(簡狄)이 제비의 알을 삼키고 설()을 낳았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송호정의 논리대로라면 설의 탄생이 신화이니 설은 신이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설의 후손이 세운 은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역사에서 은나라(상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그런 말은 역사를 모르는 사람을 속이려는 사기일 뿐이다. 은나라(상나라)는 중국 역사상 문헌과 유물로 증명되는, 명백히 존재하였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호정의 논리인 설의 탄생이 신화이니 설은 신이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설의 후손이 세운 은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거짓이다.

 

어디서부터 거짓인가?

 

이러한 이야기를 신화라고 하는 논리부터가 거짓이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신이 없다. 간적(簡狄)은 인간이고 제비는 동물인데 그것이 어떻게 신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인가?. 이것은 신화가 아니다. 간적이 제비알을 삼켜 은나라 시조 설(사람)을 낳았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이야기인 설화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은나라 시조설화인 동시에 설()이라는 사람 개인의 설화이다.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은나라 시조 설의 탄생을 설화로 기술한 것뿐이다. 그것은 은나라 시조 설을 훌륭한 사람으로 숭상해(원인) 그의 탄생을 불가사의한 이야기로 꾸며 기술한 것(결과)뿐이다.

 

실존 인물의 탄생을 설화로 꾸며 기술하였다고 해서, 실존 인물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그의 후손이 세운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묘한 말장난이고 명백한 거짓이다. 그 거짓은 그러한 이이기가 나온 원인(나라의 시조를 훌륭한 사람으로 숭상)과 결과(시조의 탄생을 설화로 꾸며 기술)도 모르면서 말한 것이다.

 

그런 주제에 결과(시조의 탄생을 설화로 꾸며 기술)를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라고 거짓말한 다음,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니 그 나라의 시조는 신이지 사람이 아니므로 시조의 후손이 세운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과 교묘한 말장난을 동원해서 사람을 속이려는 사기일 뿐이다.

 

따라서 단군의 탄생과정이 신화이니 단군은 신이지 실존 인물이 아니고 따라서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송호정의 논리와 주장은 거짓이다.

 

 

2) 사기 주본기

사기 주본기 처음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시조) 후직(后稷)은 이름이 기()이다. 그의 어머니는 유태씨(有邰氏) 여자로 강원(姜原)이라 하였다. 강원은 제곡(帝嚳)의 원비(元妃)이다. 강원이 들에 나가 거인의 발자국을 보고는 마음이 환하게 기뻐지면서 그것을 밟고 싶어져 밟았더니 임신을 한 듯 몸이 움직였다. 기한이 되어 아들을 낳았으나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겨 좁은 골목에 버렸다. 지나가던 말과 소가 모두 밟지 않고 피해갔다. 숲속에 갖다 놓았으나 때마침 산 속에 사람이 많이 몰려 옮겨서 시내 얼음 위에 버렸더니 날짐승이 날개로 덮어 주었다. 강원이 신기하게 여겨 드디어 데려와 길렀다. 처음에 아이를 버리려 했기 때문에 라는 이름으로 불렀다.원문: 周后稷名弃其母有邰氏女曰姜原姜原為帝嚳元妃姜原出野見巨人跡心忻然說欲踐之踐之而身動如孕者居期而生子以為不祥弃之隘巷馬牛過者皆辟不踐徙置之林中適會山林多人遷之而弃渠中冰上飛鳥以其翼覆薦之姜原以為神遂收養長之初欲弃之因名曰弃。」

 

이러한 이야기 역시 송호정이 말하는 신화이다. 강원(姜原)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기()를 낳았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이것도 송호정의 논리대로라면 기의 탄생이 신화이니 기는 신이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기의 후손이 세운 주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중국 역사에서 주나라가 없었다? 그게 말이 되는가? 주나라는 문헌상으로나 유물증거로나 명백히 존재하였던 나라이다. 그런 주장은 한마디로 거짓이고 역사를 모르는 사람을 속이려는 사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기()의 탄생이 신화이니 기()는 신이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기의 후손이 세운 주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송호정의 논리와 주장은 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거짓이다.

 

어디서부터 거짓일까? ()의 탄생이 신화라고 하는 논리부터 거짓이다. 강원(姜原)은 사람이며, 거인(의 발자국)도 신이 아닌데,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인가?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이야기는 개인에 대한 설화라고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주나라 시조설화이고 기()라는 사람 개인의 설화이다. 강원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주나라 시조 기()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주나라 시조 기의 탄생을 설화로 기술한 것뿐이다. 주나라 시조 기를 훌륭한 사람으로 숭상한 나머지 그의 탄생을 설화로 꾸며 기술한 것뿐이라는 말이다.

 

주나라 시조 기를 훌륭한 사람으로 숭상해서(원인) 기의 탄생을 설화로 꾸며 기술했더니(결과), 기의 탄생이 설화가 아닌 신화로 꾸며 기술했으니(원인) 기는 신이지 사람이 아니라고(결과)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는 주제에, 원인과 결과를 멋대로 뒤바꾸어, 결과를 원인이라고 강변하면서 제멋대로 그에 대한 엉터리 결론을 내린, 거짓 주장으로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3) 사기 고조본기

사기 고조본기 처음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고조(高祖)는 패현 풍읍 중양리 사람으로 성은 유씨(劉氏)이고 자는 계()이다. 아버지는 태공(太公)이라고 하고 어머니는 유온이라고 하였다. 그에 앞서 유온은 일찍이 큰 연못가에서 휴식하다가 꿈에 신을 만났다. 이때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하늘이 캄캄해졌다. 태공이 가서보니 그(유온) 몸 위에 있는 교룡을 보았다. 그리고는 임신이 되어 마침내 고조를 낳았다.원문: 高祖沛豐邑中陽里人姓劉氏字季父曰太公母曰劉媼其先劉媼嘗息大澤之陂夢與神遇是時雷電晦冥太公往視則見蛟龍於其上已而有身遂產高祖。」

 

이러한 이야기도 송호정이 말하는 신화이다. 유온이 용과 교접하여 고조(高祖: 한 고조 유방) 낳았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호정의 논리대로라면 한 고조(유방)의 탄생이 신화이니 한 고조는 신이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한 고조가 세운 한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가? 중국 역사에서 한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거짓이고 역사를 모르는 사람을 속이려는 사기일 뿐이다.

 

어디서부터 거짓일까? 이러한 이야기를 신화라고 하는 논리부터가 거짓이다. 이 이야기는 한 고조(유방)의 탄생에 대한 설화이지 신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온은 사람이고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 신이 아닌데 이것이 어떻게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인가? 더구나 한 고조(유방은) 패현 풍읍 중양리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한나라 시조설화이고, 한 고조(유방) 개인에 대한 설화이다. 신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유온이 교룡과 교접하여 고조(高祖: 한 고조 유방)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한나라 시조 유방의 탄생을 설화로 기술한 것뿐이다. 한나라 시조 유방을 훌륭한 사람으로 숭상하여 그의 탄생을 설화로 꾸며 기술한 것뿐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사례는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서 삼국사기를 보자

 

4) 삼국사기 신라본기

삼국사기 신라본기 앞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시조의 성은 박씨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년 4월 병진일에 즉위하였는데, (왕의 호징을) 거서간이라고 불렀다. 이때 나아는 13살이었고 나라 이름은 서라벌이라고 하였다. 이에 앞서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에 나뉘어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첫째는 알천의 양산촌이고, 둘째는 돌산의 고허촌이며, 셋째는 취산의 진지촌이고, 넷째는 무산의 대수촌이며, 다섯째는 금산의 가리촌이고, 여섯째는 명활산의 고야촌인데 이것이 진한 6부이다. 고허촌의 촌장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蘿井) 옆의 숲 사이에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곧장 가서 보니 홀연히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커다란 알이 있었다. 그것을 쪼개니 (속에서) 어린아이가 나왔기에 거두어 길렀다.원문: 始祖 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 五鳳元年 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卽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國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高墟村 三曰觜山珍支村[或云干珍村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是爲辰韓六部 高墟村長蘇伐公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則往觀之 忽不見馬 只有大卵 剖之 有嬰兒出焉 則收而養之 

 

이런 이야기도 송호정이 말하는 신화이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송호정의 논리대로라면 박혁거세의 탄생이 신화이니 박혁거세는 신이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박혁거세가 세운 신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게 말이 되는가? 신라는 천년이나 존속했던 나라이다. 그러므로 송호정의 논리와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이고 역사를 모르는 사람을 속이려는 사기이다. 거짓말도 어느 정도 해야 통하지 너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면 통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신라 시조설화이고 박혁거세 설화이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을 설화로 기술한 것뿐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를 훌륭한 사람으로 숭상하여 그의 탄생을 설화로 꾸며 기술한 것뿐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사례는 고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상당히 가까운 시대(근대)에 속하는 청나라의 예를 살펴보자.

 

 

5) 만주원류고 欽定滿洲源流考

청나라 시조의 탄생을 기록한 만주원류고를 보자.

 

만주원류고는 권1(卷一)에서부터 권7(卷七)까지 자기네 부족을 설명하고 있는데, 1(卷一)에서는 만주(滿洲), 숙신(肅愼), 부여(夫餘)의 순서로 설명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제일 먼저 소개하고 있는 만주에서 청나라 시조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만주

헤아려보건대 만주는 본래 부족 이름이다. 공손히 발상세기(發祥世紀)를 고찰해 보면, 장백산의 동쪽에 포고리산(布庫哩山)이 있고 그 아래에 연못이 있으니 포륵호리(布勒瑚哩)라고 하였다. 대대로 서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3명의 선녀(天女)가 그 연못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신령스러운 까치가 붉은 과일을 물어다 막내 선녀의 옷에 두었다. 막내 선녀가 (그 과일을) 입 안에 넣자 홀연히 뱃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임신하였다. 얼마  되어 사내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태어나자 말을 할 줄 알았고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였다. (아이가) 자라자, 선녀는 붉은 과일을 삼킨 일을 알려주고, 이로 인하여 그에게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과 포고리옹순(布庫哩雍順)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선녀는) 그에게 작은 거룻배를 주고, 또 말하기를 하늘이 너를 낳은 것은 어지러운 나라를 안정시키려 함이니 가서 다스려라고 하였다. 선녀는 마침내 하늘 높이 올라갔다.원문: 滿洲:滿洲本部族名恭考發祥世紀, 長白山之東, 有布庫哩山, 其下有池, 曰布勒瑚哩相傳三天女浴於池, 有神鵲銜朱果置季女衣, 季女含口中, 忽已入腹, 遂有身尋産一男, 生而能言, 體貌奇異及長, 天女告以呑朱果之故, 因錫之姓曰愛新覺羅, 名之曰布庫哩雍順與之小舠, 且曰: “天生汝以定亂國, 其往治之天女遂凌空去。」

 

이런 이야기 역시 송호정이 말하는 신화이다. 막내 선녀가 까치가 물어놓은 붉은 과일을 먹고 포고리옹순을 낳았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송호정의 논리대로라면 청나라의 시조 포고리옹순의 탄생이 신화이니 포고리옹순은 신이지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포고리옹순의 후손이 세운 청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청나라는 근세까지 존재했던 나라이니 그런 논리와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고, 역사를 모르는 사람을 속이려는 사기일 뿐이다. 청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논리에 이르면 이는 거짓과 사기를 넘어 제정신이 아니다.

 

선녀는 신이 아니고 까치는 동물이지 신이 아니며 붉은 과일도 식물이지 신이 아닌데, 이것이 어떻게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인가? 이것은 청나라 시조설화이고 포고리옹순이라는 사람의 설화이다.

 

막내 선녀가 까치가 내려놓은 붉은 과일을 먹고 포고리옹순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청나라 시조 포고리옹순의 탄생을 설화로 기술한 것뿐이다. 청나라 시조 포고리옹순을 훌륭한 사람으로 숭상한 나머지 그의 탄생을 신화로 꾸며 기술한 것뿐이라는 말이다.

 

이와같이, 나라의 시조 탄생을 설화로 쓰는 것은 고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에서는 보편적인 일이었다. 무슨 특별한 일도 아니고 특출난 것도 아닌 통상적인 일이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국가 시조의 탄생을 설화로 기술한 것을 신화라고 거짓말을 한 뒤에, 그러므로 그 시조는 신이지 사람이 아니며 따라서 그 시조나 시조의 후손이 세운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송호정의 논리와 주장은 명백히 거짓이고 사기이다.

 

나라의 시조를 훌륭한 사람으로 숭상해서(원인) 시조의 탄생을 설화로 꾸며 기술했더니(결과), 시조의 탄생이 설화로 꾸며 기술했으니(원인) 그것은 신화이므로 시조는 신이지 사람이 아니라고(결과)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는 주제에 제멋대로 엉터리 주장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알면서도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어 결과를 원인이라고 강변하면서, 그에 대한 엉터리 주장을 한 경우이다.

 

단군의 탄생 기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단군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반항하지 말고 복종하며 따르라는 말이다. 다른 것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다. 환인과 환웅 그리고 곰과 호랑이가 바로 단군은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또는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구체적으로 단군의 할아버지는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이고 단군의 아버지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환웅인데, 땅에서 가장 강한 곰과 호랑이 가운데 곰을 맞이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말이다. 즉 단군은 하늘이 내린 사람으로서 하늘의 왕자와 지상의 여왕이 부모라는 말이다. 그러니 단군에게 반항하지 말고 복종하며 따르라는 말이다.

 

이것이 단군의 탄생 기록이 말하고 있는 바이다. 이러한 것은 단군설화만이 아니고 각국의 시조설화가 다 같다. 여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는 고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최근세까지도 있었던 일로 보편적이며 통상적인 이야기였다.

 

송호정도 단군의 탄생 기록에 대해(이것은) 단군이 나는 하늘의 기운을 받고 환웅의 대리자로서 역사를 열었다는 것이고, 자기의 권위를 내세운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단군의 탄생 기록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단군이 한 일에 대한 기록은 감추고서(이는) 건국 신화로 만들어진 것이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이것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실재한 역사라기보다 국가 출현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실 기록 감추기와 교묘한 말장난을 섞어 사람들을 속였다. 단군의 탄생 기록만 이야기해 놓고, 어떻게이것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실재한 역사라기보다 국가 출현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국가 출현 과정은 단군 탄생 이후 단군이 한 일에 대한 기록에 있는데 그것은 감추어 놓고, 단군의 탄생 기록만 가지고 그것이 국가 출현 과정을 설명한 것이라니 그게 무슨 황당한 괴변인가? 단군 탄생 이후 단군이 한 일에 대한 기록을 소개하면 자기의 거짓 주장이 드러날 것이므로 그것을 감추며 교묘한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속인 것이다.

 

이렇게 송호정은 단군의 탄생 기록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면서도 단군의 탄생 기록만을 가지고 단군은 실존 인물이 아니고 단군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였다. 그럼으로써 우리 역사를 단축시켜서, 우리 역사를 축소 왜곡하였다.

 

 

 

 

2. 유물 증거

 

송호정은 EBS TV 방송에서 고조선의 건국연대에 대해삼국유사에 與髙同時(여고동시) 즉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 이렇게 되어 있으나 그 연대기에 우리가 연연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면서 비파형동검이라든지 청동거울이라든지 다양한 청동 무기나 장신구들을 썼던 시기는 기원전 7세기, 8세기 이렇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대개 동아시아에서 청동기 문명이 번성하고 발전하던 시대 이후에 그 어느 지역에서 고조선도 국가를 형성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갖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까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문헌자료 중에는 전국시대 때 쓰여진 관자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요, 제나라 환공하고 관중이 대화를 하는 내용인데, 거기에 고조선에 점무늬 박힌에 호랑이 가죽이 있고 이걸 조공으로 받으면 괜찮다 이런 내용이 나와요. 근데 그게 어느 때 상황인가 하면, 춘추시대 상황이에요. 대개 기원전 7세기 이쯤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했고, 호랑이 가죽이 특산물로 생산됐다는 이런 기록들을 확인할 수 있어요. 대체적으로 이쯤이 인제 고조선이 중국인들이나 그 주변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알리던 시대였고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이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원전 2세기. 그래서 고조선은 대체적으로 기원전 천년부터 어때요? 올려보면 기원전 천년이에요. 기원전 2세기까지 7백년에서 8백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역사상 첫 국가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관자 이야기는 유물증거가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쓴 것이고 핵심적인 것은 고조선은 유물 증거로 보았을 때 시작점이 기원전 7세기 8세기이고, (인심을 써서) 기껏 올려봐야 그 상한 연대가 기원전 천년이라는 말이다. 즉 기원전 10세기라는 말이다.

 

, 유물증거를 볼 때 고조선의 상한 연대가 서기전(기원전) 10세기이므로, 단군조선이 세워졌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은 하상주 단대공정이라는 것을 하면서 주나라의 건국 시기를 서기전 1046(서기전 11세기)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서기전 10세기는 기자 이후가 되어 단군조선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래서 송호정이 단군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이야기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 역시 거짓이다.

 

그 증거가 중국에서 2018211일 발표한 중국 요녕성 심양 신민시 북외 유적지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이다. 송호정이 EBS TV 방송에서 이런 주장을 하기 1년여 전에 발표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이 비파형동검의 연대는 상한 연대가 서기전(기원전) 18세기이고 하한 연대가 서기전(기원전) 10세기이다. 서기전(기원전) 10세기가 상한 연대가 아니라 하한 연대라는 말이다.

 

따라서, 유물 증거를 볼 때 고조선의 상한 연대가 기원전 10세기이므로 단군조선이 세워졌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또한 고조선이 7백년에서 8백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앞으로 유물이 더 발견됨에 따라 고조선의 상한 연대를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음을 생각할 때 단군조선의 건국이 서기전 2333년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중국 요녕성 심양 신민시 북외 유적지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에 대한 중국의 보도자료를 보면서 이야기해 보자.

 

 

< 북외 유적지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 >

 

1) 중국고고망(中国考古网)에 발표된 보도 자료

출처: http://kaogu.cssn.cn/zwb/xccz/201802/t20180211_4257175.shtml

 

 

(1) 번역문

요녕 북외 유적지에서 현재 동북지역의 연대가 가장 빠른 청동검 출토

발표시간: 2018-02-11, 문장출처: 중국신문망, 글쓴이: 주명우, 조회수: 1565

  

10일 심양시 문물고고연구소에서 정보를 얻은 것에 따르면, 그 연구소의 고고학자는 심양 신민시 경내에서 북외 청동기 시대 유적지를 발견하였는데, 지금까지 동북지방에서 연대가 가장 빠른 청동 단검이 출토되었다. 심양시 문물고고연구소의 관계 책임자 소개에 의하면, 20175월부터 북외 청동기시대 유적지의 고고학적 발굴을 벌리기 시작하였다, 그 유적지의 면적은 약 10만 평방미터인데, 이미 청동기시대 주거지(집터) 2기와 38개의 재 구덩이, 2개의 수혈식 토갱묘 및 5곳의 옹관묘가 발견되었으며, 대량의 협사토기 파편과 언(: 시루), (: 세발 솥), (: . 항아리), 돌도끼, 돌화살촉 등의 용구가 출토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집터(주거지)의 외측(外侧: 바깥쪽)에서 청동 단검 한 자루를 발견했는데, 감정 연대는 서주시대에 속한다.  

北崴遗址鸟瞰图(북외 유적지 조감도 ) 

 

요녕성 문화재보호 전문가 반장 곽대순의 소개에 의하면, 중국 고대 청동검은 날카롭고 정교한 예술적 풍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 제련 기술은 서유럽 대륙을 거의 천년 앞서고 있다. 중국 동북지방의 청동 단검은 칼몸(剑身)과 칼자루(剑柄)가 분리된 개체로 조립된 것이 특징이며, 사냥과 정벌에 사용되는 것 외에, 당시에도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다. 북외 유적지는 청동기시대 신락 상층문화이며, 지금부터 약 3000년에서 3800년 떨어진, 현재 동북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빠른(시기의) 청동검이기도 하다

出土青铜短剑(출토된 청동단검

  

동시에 북외 유적지에서 출토된 부채날 청동도끼 돌거푸집은 당시 이미 대량의 청동기를 주조할 수 있었음을 증명하였고, 심양 지역이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 중 하나였음을 설명하였으며, 요하 문명은 그 역사적 연속성과 지역성, 전형성으로 중화 5천년 문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번 고고학 발굴은 중국 동북지방의 청동기 시대 고고 문화서열에 대해 보완하고, 당시의 민중의 취락 형태와 문화적 내포를 이해하며, 요하 유역의 정치 경제 상황을 탐구하는 것에 모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촬영: 종신)

< 출처: 중국고고망(中国考古网) >

 

(2) 원문

辽宁北崴遗址出土目前东北地区年代最早青铜剑

发布时间2018-02-11    文章出处中国新闻网    作者朱明宇    点击率1578

 

10日从沈阳市文物考古研究所获悉该所考古人员在沈阳新民市境内发现北崴青铜时代遗址出土了迄今为止东北地区年代最早的青铜短剑据沈阳市文物考古研究所相关负责人介绍20175月开始对北崴青铜时代遗址展开考古发掘该遗址面积约为10万平方米已发现了2座青铜时代房址38个灰坑2个竖穴土坑墓及5处瓮棺墓出土了大量夹砂陶片和甗石斧石镞等器具考古人员在房址外侧发现了1把青铜短剑经鉴定年代属西周时期据辽宁省文物保护专家组组长郭大顺介绍中国古代青铜剑具有锋利且精美的艺术风格其冶炼技术领先西欧大陆近千年中国东北地区青铜短剑的特点是剑身与剑柄分体组装除了用于狩猎和征伐外在当时也是身份和地位的象征北崴遗址为青铜时代新乐上层文化距今约30003800也是目前东北地区发现最早的青铜剑同时北崴遗址出土的扇形铜斧石范证明当时已能大量铸造铜器说明了沈阳地区是当时东北亚最发达的地区之一辽河文明以其历史的连续性地域性典型性对中华五千年文明的发展起着重要作用本次考古发掘对于完善中国东北地区青铜时代考古文化序列了解当时民众的聚落形态文化内涵以及探寻辽河流域政治经济状况均具有重要意义(摄影钟欣

 

2) 보도 자료의 주요 사항.

 

이 기사를 발표한 시간이 2018211일이다.

이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지역은 요녕성 심양시 관내 신민시의 북외유적지이다.

이 유물의 발굴 시작 시점이 20175월이다.

발견된 것은 집터(주거지) 2기와 38개의 재 구덩이, 2개의 수혈식 토갱묘 및 5곳의 옹관묘이다.

출토된 유물은 대량의 협사토기 파편과 언(: 시루), (: 세발 솥), (: . 항아리), 돌도끼, 돌화살촉이다.

비파형동검이 발견된 장소는 집터(주거지)의 외측(外侧: 바깥쪽)이다.

비파형동검의 감정연대는 서주시대이다.(참고: 비파형동검의 연대가 지금부터 약 3000년에서 3800년인데, 상한 연대와 평균 연대는 도외시하고 하한 연대를 감정연대로 잡은 것은 일부러 비파형동검의 연대를 끌어내린 것임)

발견된 동검의 특징은 칼몸(剑身)과 칼자루(剑柄)가 분리된 개체로 조립된 것이다. (참고: 이 동검이 비파형동검임을 설명한 것임).

비파형동검은 사냥과 정벌에 사용

북외 유적지가 속하는 문화층은 청동기시대 신락 상층문화.

발견된 비파형동검의 연대는 지금부터 약 3000년에서 3800년이다.

함께 출토된 유물은 부채꼴 청동도끼(부채모양의 날을 가진 청동도끼) 돌거푸집인데,

이것은 당시 이미 대량의 청동기를 주조할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3) 보도 자료에서 중요한 사항.

 

(1)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연대

추정 연대가 지금부터 약 3000년에서 3800년이라고 하는데 이점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부터 약 3000년에서 3800년이라는 말은 발표 시점인 2018년 기준으로 서기전 1782년에서 서기전 982년을 지칭한 것으로 이 비파형동검의 연대가 서기전 18세기~서기전 10세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파형동검의 연대는 그 상단 연대가 하나라 중기에서부터 그 하단 연대가 서주 초기까지이다. 그런데 중국은 주나라의 건국을 서기전 1046(서기전 11세기)이라고 하므로, 이 비파형동검이 하나라 중기에서부터 은나라 사이에 존재했을 가능성은 92%(736/800)로 매우 크고, 주나라 초기에 존재했을 가능성은 8%(64/800)이다. 이 정도면 이 비파형동검은 기자 이전의 동검으로 볼 수 있어 단군조선의 비파형동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이 비파형돔검의 평균 연대(서기전 14세기)나 상한 연대(서기전 18세기)를 본다면, 이 비파형돔검은 명백한 단군조선의 비파형동검이다. 그렇다면 이 비파형동검은 단군조선이 존재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최소한 이 비파형동검의 상한 연대가 서기전 18세기, 하한 연대가 서기전 10세기로 밝혀짐에 따라 여태까지 비파형동검의 상한 연대를 서기전 10세기로 추정한 것은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탄로 난 것이다. 즉 유물 증거로 볼 때, 고조선의 상한 연대가 기원전 10세기이므로 단군조선이 세워졌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2) 비파형동검이 발견된 곳: 주거지(집터)

요녕성 심양시 관내 북외유적지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이 발견된 곳이 집터(주거지)라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 까닭은 이 비파형동검의 연대가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보다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즉 주거지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연대가 서기전 18세기~10세기로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상한 연대인 서기전 10세기보다 연대가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3) 발표 시점: 2018211.

발표 시점도 중요하다. 그 이유는 전년도인 2017113일부터 4일까지 열린 제41회 한국고고학 전국대회에서 이 기사와 일치하는 비파형동검에 대한 연구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711월에 한국고고학 전국대회에서 초기의 비파형동검은 주거지에서 사용하였고, 그 후에 가서야 무덤에 수장하였다고 추정하였는데, 그 추정과 일치하는 결과가 2018211일에 중국에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 201711월에 한국고고학 전국대회의 비파형동검에 대한 연구발표가 옳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요녕성 심양시 관내 북외유적지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연대가 서기전 18세기~10세기로 여태까지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상한 연대인 서기전 10세기보다 연대가 훨씬 앞서기 때문에 초기의 비파형동검은 주거지에서 사용하였고, 그 후에 가서야 무덤에 수장하였다고 추정한 것이 옳았음이 입증된 것이다.

 

, 비파형동검시대 초기에는 비파형동검을 주거지에서만 사용하고, 무덤에는 수장하지 않았는데, 후기에 가서야 비파형동검을 무덤에 수장하였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은 후기 비파형동검 시대의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초기 비파형동검시대는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을 가지고 초기 및 전기 비파형동검시대를 추정하는 것은 틀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초기 및 전기 비파형동검시대는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시대보다 훨씬 오래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을 가지고 비파형동검시대를 추정하는 것은 후기 비파형동검 시대를 추정한 것뿐이라서, 초기 및 전기 비파형동검시대를 도외시한 것으로써 비파형동검시대 역사를 축소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제 주거지 발굴조사가 진행됨에 따라서 초기 및 전기 비파형동검시대가 얼마든지 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단군조선의 역사는 앞으로 주거지 발굴조사가 진행될수록 얼마든지 상향될 수 있으며, 단군조선의 역사는 현재까지 알려진 무덤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을 가지고 추정한 연대보다 훨씬 올라가며 앞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4)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특성.

북외유적지에서 출토된 동검이 칼몸(剑身)과 칼자루(剑柄)가 분리된 개체로 조립된 것이라는 것은 이 동검이 우리나라 비파형동검이라는 말을 설명한 것이다.

 

 

(5) 함께 출토된 유물(공반 유물)

그 다음, 중요한 점이 함께 출토된 유물(공반 유물)이다. 함께 출토된 유물은 대량의 협사토기 파편과 언(: 시루), (: 세발 솥), (: . 항아리), 돌도끼, 돌화살촉, 부채꼴 청동도끼 돌거푸집 등으로 이 유물들이 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돌화살촉인데 이것은 먼 거리에 있는 적에게 쓰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고조선이 서기전 18세기에서 서기전 10세기 사이에 이미 먼 거리에 있는 적에게는 활과 화살을 썼다는 것이고, 짧은 거리에 있는 적에게는 비파형동검을 썼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가운데 화살촉으로 대변되는 화살은 소모성 무기로써 흔하고 값이 싼 돌을 사용하였고, (비파형동검)은 내구성 무기로써 귀하고 값비싼 청동제품을 사용한 점이다. , 고조선은 서기전 18세기에서 서기전 10세기 사이에 이미 장거리 무기와 단거리 무기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고조선이 서기전 18세기에서 서기전 10세기 사이에 이미 많은 전쟁 경험을 축적하여 장, 단거리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는 활과 화살로 멀리 있는 여러 명의 적들과 전투를 한 다음에는 짧은 병기(兵器: )로 적과 가까이 붙어 전쟁(短兵接戰: 단병접전)을 한 경험이 많았다는 증거로써, 서기전 18세기에서 서기전 10세기 사이에 이미 국가가 탄생했다는 강력한 증거물이 된다.

 

참고로 사기 흉노열전을 보면 흉노도 이러한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기 흉노열전:그들이 먼 거리에 쓰는 무기는 활과 화살이고, 짧은 거리에 쓰는 무기는 칼과 손잡이가 달린 짧은 창이었다.(其長兵則弓矢短兵則刀鋋)>

 

 

(6) 부채꼴 청동도끼 돌 거푸집

그 다음, 중요한 점은 함께 출토된 유물(공반 유물) 가운데 부채꼴 청동도끼(부채모양의 날을 가진 청동도끼) 돌 거푸집이다. 부채꼴 청동도끼는 한문으로 선형동부(扇形銅斧)라고 하는데, 부채꼴 청동도끼나 그것의 돌 거푸집은 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되는 유물(공반 유물) 가운데 아주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유물이다. 그리고 이것의 거푸집이 출토되었다는 것은 부채꼴 청동도끼를 대량으로 생산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즉 고조선은 서기전 18세기에서 서기전 10세기 사이에 이미 청동무기를 대량 생산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돌 거푸집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 선조가 쓴 거푸집은 돌 거푸집이며, 이 돌 거푸집은 우리민족 특유의 거푸집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비파형동검이나 부채꼴 청동도끼, 세형동검, 청동 창, 다뉴세문경 등 우리 선조들이 만든 청동기는 모두 돌 거푸집을 썼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돌 거푸집에 쓴 돌은 다뉴세문경을 재현한 장인에 의하면 곱돌(滑石: 활석)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산에서 흔한 돌을 거푸집의 주요한 재료로 사용한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비파형동검의 상한 연대가 빨라야 서기전 10세기이기 때문에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은 명명백백한 거짓이다.

 

결론적으로 문헌 증거와 유물 증거를 볼 때, 단군의 탄생과정이 신화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단군은 (신이지) 실존 인물이 아니고 따라서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송호정의 논리와 주장은 거짓이다. 이는 거짓과 교묘한 말장난을 동원하여 EBS TV 방송을 통해 국민들을 속인 것이고, 이것은 우리 역사를 단축시켜 우리 역사를 축소 왜곡하려는 역사 범죄이다.